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Aug 06. 2021

[교행일기] #33. 봉숭아, 특별한 의미

봉숭아, 특별한 의미


6월 달이 중반으로 드니 화단에는 봉숭아꽃이 몽우리가 졌다. 이제 한낮에는 약간 덥기까지 한 게 조만간 여름이 성큼 다가올 것 같다. 아이들은 오늘도 신나게 운동장에서 뛰어다닌다. 저만한 때는 노는 게 공부이고 체력이 기르는 것도 학습이다.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몽우리 진 봉숭아꽃의 가능성도 아직 모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는 장미꽃은 모두 장미꽃이고 봉숭아꽃은 모두 봉숭아꽃이다. 특별히 이것과 저것을 구분할 수 없다. 이걸 생각하고 하니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나온 다음 시구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의 일부


봉숭아는 세상 모든 이들의 봉숭아였고 그 움직임은 특별한 것이 없다. 연이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을 때 봉숭아는 그 자리에서 의미 있는 봉숭아가 된다. 연이라는 사람의 의미가 아주 높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의미가 강하다.


연이는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도 어린왕자가 장미꽃을 만나는 한 구절이 생각났다.

어린 왕자는 장미꽃들을 바라보았다. 전부 어린왕자의 꽃과 꼭 닮아 있었다.(중략) 전에 어린왕자의 꽃은 그에게 자기와 같은 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정원 하나에 똑같은 꽃이 오천 송이나 있지 않은가!

- 생텍쥐베리 '어린왕자'의 일부

그래 맞다. 오천 송이나 있는 장미꽃과 같은 종류의 꽃이 어린왕자의 꽃이지. 하지만, 어린왕자가 사는 그와 말을 나누고 함께 한 장미꽃과 같지는 않다.


봉숭아가 피기 전부터 이 화단을 지나 저 벤치에 앉아 연이는 업무로 힘듦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 자주 지나다니던 화단이지만 특별한 의미가 그때는 없었다. 그리고 빈 공터처럼 아무것도 없는 그런 화단이었다. 봉숭아가 심어지고 화단에 심어진 수많은 봉숭아 중에 제일 작은 봉숭아가 눈에 들어왔다. 키 작은 봉숭아. 다른 봉숭아의 키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봉숭아.


그런 봉숭아가 눈에 밟힌 연이는 매일 그 봉숭아에게 애정을 쏟았다. 그 봉숭아에게 업무 고민도 털어놓고 속상한 마음도 얘기했다. 부모님에게 하면 걱정이 될 것이고,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좋은 직장에서 하는 푸념밖에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릴 것이고, 행정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도 없는 사소하고 미묘한 감정의 씨앗들을 봉숭아에게 전해주며 특별한 봉숭아가 되었다.


다른 봉숭아가 활짝 꽃이 필 때도 연이는 특별한 연이만의 봉숭아만 보였고, 특별한 의미의 봉숭아가 꽃이 피었을 때는 연이의 마음도 활짝 따스한 마음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는 그런 존재. 참 좋다.

이전 02화 [교행일기] #32. 통제 가능한 것은 무엇?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