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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06. 2021

[교행일기] #35. 일상을 기록, 적고 또 적고

제출기한, 마감일자


연이는 동기들이 교직원 전용 메신저 아이스톡 대화창에서 하는 얘기를 유심히 보면서 업무적인 얘기는 반드시 이면지에 적어놓고, 일상적인 얘기 중 나름의 노하우에 해당하는 얘기는 따로 모아 적었다. 그중 하나가 이런 얘기가 오갔다.


동기님들, 제가 공부할 때는 안 그랬는데,
자꾸 까먹어서 일을 놓칠 때가 많아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딱 연이 얘기다. 행정실 천정을 둘러보며 CCTV가 있나 살폈다. 어떻게 알고 저런 얘기가 나오나 싶었다. 동기들도 똑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했다. 업무적인 부분이 마감이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지만, 대부분 마감날짜가 있고 그것을 어기면 당연히 쪼임을 당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는 교육지원청으로 자료를 보내고 그걸 취합해서 다시 교육지원청은 교육청으로 보내 최종 교육청에서 자료를 모으게 되는 구조라 학교에서 늦어지면 교육청에서는 그 시간이 한없이 늘어나기에 항상 '제출기한'이 있다.


업무적인 문제라면 두 가지 중에 하나 때문에 저런 문제가 생긴다. 하나는 업무 마감일자 또는 제출기한을 몰랐을 경우고 다른 하나는 알았으나 업무를 끝내지 못한 경우다.


업무 마감일자 또는 제출기한을 몰랐을 경우

달력이나 해야 할 일(To do lists)을 A4를 가로 한 번 접고 세로 한 번 접어 자른 이면지나 그 만한 사이즈의 짧은 메모장에 잘 적어 보이는 곳에 놔두고 처리를 하면 줄을 긁는 방식으로 처리하면 된다.


업무 마감일자 또는 제출기한을 알았으나 업무를 끝내지 못한 경우

이것은 순전히 마감일까지 업무배분을 못한 경우나 아예 작성 방법을 몰라서 헤매고 있는 경우다. 전자의 업무배분 문제라면 다른 업무에 치여서 하지 못한다면 초과근무를 하여 시간을 확보를 하면 금방 해결이 되지만, 후자의 작성 방법을 몰라서 헤매는 경우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최악의 상황인 경우다. 이럴 경우에는 3년 치 문서등록대장을 검색하여 작성해 놓은 것을 보고 역으로 작성방법을 유추하거나 동기들에게 물어 힌트를 받아서 작성방법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




일상을 기록하자


연이가 하는 업무의 TO DO LISTS 외에 연이가 듣고 본 일상을 모두 기록하기 시작했다. 실장님과 김 주무관님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학교 관련 정보들을 이면지에 적어 기록을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처럼 처음에는 들리는 대로 적어놓았다.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니 아주 조금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이 생겼고 이전에 적은 일상 메모 중에서도 이해가 되는 단어들이 눈에 보였다. 신기한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속담이 눈앞에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연이의 일상 메모를 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단순하게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 번은 연이가 무슨 일을 했는데, 그게 진짜 연이가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연이가 했겠지만, 기억이라는 게 한계가 있기에 그것을 한 기억을 잊었다. 아니 기억할 수 없게 많은 일들이 몰려서 일어났다. 새로운 업무와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면 모든 것을 다 기억하기란 절대 절대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예시로 드는 게 어제 점심에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늘 얘기하지만, 그것은 사실 결이 다른 예시인 것 같다. 어제 점심을 뭘 먹었는지 모르는 것은 늘 점심은 있고 그게 반복이 되어서 어제 먹은 점심메뉴가 그제 먹은 점심메뉴와 헷갈리기도 하고 관심을 두지 않기에 기억을 못 하는 경우이다. 운전은 하는 사람들이 겪는 주차한 내 차가 지하 1층에 있는지 2층에 있는지가 헷갈리는 경우와 같은 예이다.


하지만 연이에게 일어나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같은 시간 대에 일어난 새로운 일, 즉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 그걸 완벽하게 기억하는 문제였다. 전화받으면서 업무를 보는 정도가 아니라 거기에 학교의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로 행정실에 선생님이 와서 처리를 부탁하는 일 더하기 다른 전화기로 냉난방기의 고장을 알려와 수리가 필요한 문제까지 발생한다면 과연 첫 번째 전화의 내용과 연이 업무를 하다 만 곳, 행정실에 찾아온 선생님이 부탁한 일의 내용, 냉난방기 수리 요청한 학급의 위치를 모두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사실 5년 후 지금의 연이라면 가능하기도 하다. 스킬을 사용하면 된다. 첫 번째 전화의 내용은 전화 메모 양식을 통해 업무의 내용, 송신자의 성함 등으로 마무리하면 되고, 연이가 업무를 하다만 곳의 위치는 간단히 4B연필로 그 위치를 빗금을 쳐놓으면 된다. 선생님이 부탁한 일의 내용은 이면지를 4등분한 메모지에 적어서 파티션 자석으로 한쪽에 붙여놓고, 냉난방기 수리 요청한 학급은 선생님이 자신의 성함을 밝히는 게 아니라 몇 학년 몇 반이라도 말하기에 4등분 이면지에 'O-O 냉 수리' 단축 문자로 써놓고 실장님이나 김 주무관님에게 전달할 때는 몇 학년 몇 반의 선생님 성함까지 찾아서 전달을 하면 된다. 하지만, 5년 후의 연이도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 정신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 당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을 가능하게, 아주 조금이라도 가능하게 만드는 게 일상 메모의 주목적이었다. 그렇게 연이 나름의 방법으로 학교에 적응해나갔다. 일상 메모를 처음에는 이면지에 쓰다가 파티션에 붙여놓은 것조차 많아지니 떨어지고 잃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메모는 부피가 차지할 뿐만 아니라 일일이 넘겨가며 봐야 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취지가 좋으나 활용도가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아 연이는 다른 대체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무엇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일상 메모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잃어버리는 문제, 부피를 차지하는 문제, 일일이 넘겨봐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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