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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10. 2021

[교행일기] #36. 구둣발 소리

구둣발 소리


딱 딱 딱

세 번의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연이는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실장님의 호출이 있을 예정이다. 저 세 번의 소리는 실장님이 연이가 한 업무에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하는 일종의 사인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신호의 패턴을. 하지만 신호를 알아채기 시작한 것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패턴을 분석하려는 일종의 연이의 학교 생존법을 익히면서부터였다.


자, 3초 후면 "연 주사!"가 실장님의 음성으로 나올 것이다. 1초, 2초, 3초.


"연 주사!"

"네. 실장님!"

연이는 실장님에게 가서 연이가 한 업무 중 실장님이 이상하다고 하는 부분을 들었다. 여러 차례 듣다보니 2가지로 귀결이 되었다. 하나는 실장님이 진짜 연이가 한 업무의 잘못을 찾아낸 경우와 다른 하나는 실장님이 알고 있는 업무의 사항과 연이가 알고 있는 업무의 사항이 충돌하는 경우였다. 전자는 연이는 잘 듣고 실장님의 의견을 수용하여 업무에 적극 반영을 해야 할 것들이었다. 이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후자는 실장님이 알고 있는 부분이 연이가 알고 있는 부분과 어떤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나는지를 먼저 파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일단 실장님에게 알아보겠다고 하고 자리에 돌아와서 충돌의 부분을 법리적 검토를 거쳐야 했다.


연이가 하는 업무는 대부분 관련 법령과 근거가 명확해서 그것을 의거해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공무원 시험 중 행정법에 보면 이것을 기속행위라 부르는 것들이다. 무조건 법령에 맞춰서 따라야 하는 것이다. 기속행위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바로 재량행위가 있다.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따를 수 있는 것이다. 담당자의 권한이 있는 행위인 것이다. 실장님과 의견이 갈리는 충돌이 나는 부분이 법령과 근거를 따라야 하는 기속행위인 경우에는 실장님에게 관련 법령을 보여드려서 실장님과의 견해 차이의 간극을 좁혀야 했다. 그리고 재량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실장님의 의견을 따라도 되는 경우이기에 삼석인 연이에게는 일단 그대로 시행을 해보기로 했다.


러시아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의 개 실험(고전적 조건 형성)에서 조건이 형성하기 전에는 종소리는 개에게는 아무런 자극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음식을 줄 때마다 종소리를 들려주면 개는 어느새 침을 흘린다. 종소리가 하나는 자극이 되어버리는 실험이다.


위 실험처럼 실장님의 구둣발 소리가 연이에게 영향을 미쳤다. 구둣발 소리는 처음에는 연이에게 아무런 자극이 되지 못했다. 그저 구둣발의 딱딱딱 소리다. 평소에도 딱 소리가 나지만, 특유의 리듬의 딱 딱 딱 소리가 나면 연이에게는 개의 종소리처럼 긴장을 하게 되었다. 연이를 부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개조차 조건 형성이 되는데 사람인 연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연이는 구둣발 소리를 듣고도 긴장을 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강구를 했다. 조건 형성이 되었다면 다른 쪽으로 조건 형성도 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다. 바로 연이에게 직접 실험을 해서 실장님의 구둣발 소리가 하나의 트라우마로 정착되기 전에 다른 쪽으로 전환을 하려고 했다.


패턴

실장님의 구둣발 소리 딱 딱 딱 → 긴장  → 연이를 부르는 실장  → 꾸중 → 실수 증가 → 실장님의 구둣발 소리 딱 딱 딱


조건 형성

실장님의 구둣발 소리로 긴장을 하게 되고 실수를 증가하고 다시 실장님의 구둣발 소리를 듣는 악순환이 생김


연이의 특약 처방

실장님의 구둣발 소리 딱 딱 딱 → 긴장  → 연이를 부르는 실장  → 꾸중 → 돌아와서 사탕 하나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 심호흡 후 돌아와 실무매뉴얼에 첨부함 → 늘어나는 실무매뉴얼에 더 정교해짐 → 뿌듯함 → 실수 감소


사탕의 달콤함은 연이에게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실장님의 구둣발 소리를 들으면 이제는 연이의 과오를 돌아보게 되고 더 정교해질 생각에 뿌듯함이 몰려온다. 이게 가능하냐고? 조건 형성 자체가 패턴화 된 행동에 대한 조건의 반응이니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이 경우 꾸중을 회피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신다. 연이의 경우에는 마음의 상처를 잘 받아서 그 기억이 오래갔다. 아픈 기억이기에 다시는 아프지 않으려고 했기에 원격으로 새벽 3시까지 일을 하다가 마음이 깨져버려 돌이킬 수 없는 의원면직에 가슴에 품을 정도가 되었던 과거를 벗어나고자 "회피"기법이 아닌 "승화"기법으로 전환하려고 애썼다.


의외로 효과는 좋았다. 100퍼센트 특약 처방대로 되지는 않는다. 꾸중이 큰 날이면 마음에 실금이 가 멍해져서 아무것도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분 승화 기법으로 효과를 보는 비율이 많아지자 조금씩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연이의 실무매뉴얼의 개수는 꾸중을 들은 숫자와 비례한다. 성장하자 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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