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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15. 2021

[교행일기] #41. 변화의 시작

변화의 시작


급여도 끝나고 인건비 공문도 끝났는데, 연이의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한가득이다. L자 형태의 책상 모서리에는 급여 관련 서류, 중간에는 메모할 수 이면지, 언제 출력을 했는지 모를 급여 관련 교재, 교직원의 4대보험 EDI 출력물, 그리고 실무매뉴얼을 작성하고 있는 이면지가 널려 있었다. 바람이 후~ 불면 뒤섞여 한 동안 그것을 주워 정렬하느라 진땀을 뺄지도 모를 정도로 위험천만하게 서류들이 책상을 점령했다. 


연이에게도 이에 대한 항변이 있다. 


한 작업 필요한 서류들이 한 곳에 모아져 있지 않고 이곳에 조금, 저곳에 조금 이런 식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이 서류 저 서류가 모두 필요한 상황이었다. 간단히 외울 만한 부분이 많지만, 연이에게는 그것조차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아주 자주 볼 수 있는 장소에 올려놓고 보고 있는 중이다. 연이의 책상을 남들이 보기에는 대혼란의 중심, 카오스 그 자체처럼 보였을 것이다. 


카오스는 헤시오도스에 비롯된 그리스 신화에서 최초 생긴 '텅 빈 공간'을 말한다. 카오스는 무(無) 또는 절대공간으로, 카오스 외에 처음으로 무언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출처: 위키백과)
혼돈: 마구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 또는 그런 상태.(출처: 네이버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의 의미)


위키백과와 표준국어대사전의 '카오스'의 뜻만 보면 뭔가 시작되기 전의 의미를 뜻한다. 


텅 빈 공간 속 무언가 나타나기 이전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


연이의 머릿속 자체가 카오스 상태일 것이다. 수많은 정보가 연이의 머릿속의 기억의 방 어디쯤에 차곡차곡이 아니라 마구 집어넣어져 있어 머릿속에 들어간 정보는 좀처럼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은 상태, 어쩌면 이게 카오스가 아닐까 한다. 그러다 보니 기억을 대체할 서류들이 늘어났다. 기억이란 오류가 많이 발생해서 정확도는 새로운 것에 대한 기억일수록 아주 낮다. 


다행인 것은 이 복잡함 때문에 업무의 실수가 발생하거나 일의 진행속도가 늦어진다면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변화의 감지는 일을 하면서 잠깐 더뎌지는 구간을 만날 때면 항상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변화는 시간이 걸린다. 뭔가 특별한 사건이 없지 않으면 기존의 구성과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다른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일을 하면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연이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밖에서 뿜어져 들어오는 열기 덕에 행정실 온도는 정신이 몽롱할 정도였다. 점심을 먹고 난 이후라 더욱 나른하여 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놓을 곳이 없어서 서류 무더기의 한 곳에 자리를 내어 그곳에 놓았다. 한 모금 마신 커피는 연이가 다시 일에 빠져 컴퓨터와 서류를 번갈아 보느라 잊혔다. 선생님 한 분이 내려오셔서 급여에 대해 궁금했는지 이것저것 물어봤다. 연이는 방금 이 서류 어디쯤에서 선생님에게 답해줄 근거법령이 있었다. 서류를 뒤적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류 더미를 들추면서 연이의 눈은 빠르게 움직였다. 책상 중앙의 서류가 들추는 바람에 살짝 서류가 미끄러져 들어가더니 뭔가 갈색 물이 들기 시작했다. 


"뭐지? 아이고, 어떻게."


연이가 당황하자 선생님은 찾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고는 행정실 문을 나섰다. 그 사이에 연이의 서류를 적신 갈색 물의 정체를 알았다. 아까 한 모금 마신 커피였다. 정성스레 필기한 급여 관련 정보와 일부 인쇄물이 그대로 축축해졌다. 급여 관련 출력 교재에도 갈색 물이 일부 들었다. 재빨리 휴지로 닦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커피의 흔적은 그대로 교재에 상처처럼 남아버렸다.


'그래. 이렇게 일을 하다가는 남아나는 서류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야.'

그동안 연이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나 보다.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위해 잠시 이 책상의 복잡한 서류들을 나름의 분류대로 진행문서파일에 각각 담았다. 이렇게 담아 놓으니 좋기는 한데, 서류를 꺼내보기가 불편했다. 캐비닛에 있던 3단 서류함을 꺼내 그 서류함에 분류별로 담아보았다. 꺼내보기 쉽기도 하고 그대로 캐비닛에 넣어도 되고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깔끔해진 책상에 연이도 나름 뿌듯했다.


연이는 여전히 불편한 점이 남아 있지만, 책상 위에 펼쳐진 카오스 상태보다는 나아진 것이라 일단 다른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이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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