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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16. 2021

[교행일기] #42. 최종병기2, 업무일지

최종병기2, 업무일지


연이는 파랑버스에서 내려 살짝 언덕처럼 있는 2층인데 1층 같은 행정실을 숨가쁘게 올라오고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나왔는데, 버스가 연착되고 앞선 차량들의 교통사고로 통행가능한 길이 좁아지자 더욱 차가 막혀 예정시간보다 늦게 행정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빠르게 행정실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고 행정실 문을 활짝 열어 습기 머금은 축축하고 꿉꿉한 공기를 밖으로 빼냈다.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 전원을 누르면서 책상 위에 꽂힌 급여 교재의 쭈글쭈글해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책 모서리부터 중앙까지 번져 들어간 진한 커피물이 만들어낸 쭈글이를 버리고 다시 출력하여 책처럼 만들 수 있는데, 그대로 둔 이유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그저 현실에 안주하면서 불만만 가졌던 연이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른 생각이 같이 끌려올라왔다. 일상메모를 하면서 느꼈던 불편함. 바꾸고자 했던 마음이 연이에게 노크를 했다.


'무엇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일상 메모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잃어버리는 문제, 부피를 차지하는 문제, 일일이 넘겨봐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 맞다. 저 문제 때문에 뭔가가 필요했었다. 빠르게 머리가 굴러갔다. 잃어버리지 않고 부피를 차지하지 않고, 검색이 가능하게 만든다라... 그래 그거다. 만화처럼 머릿속 전구가 반짝 불이 들어왔다.


일상메모를 컴퓨터로 타이핑하여 저장해놓으면 언제 무엇이 발생했는지 알 수 있고 지난 일상메모를 검색하기도 용이했다. 부피문제, 분실문제도 말끔히 해결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오늘의 할일까지 첨부를 하여 대강 이면지에 스케치를 했다. 업무유형, 업무내용, 일상메모 형태로 이루어진 표 형식의 일지형태로 여러 시안 중 고민하면서 최종시안으로 정하고 한글로 작업해서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한 것이 '업무일지'였다. 그날 그날 있었던 업무과 알게 모르게 주워들은 업무 관련 사실과 지식, 그밖에 알게 된 학교 관련 소식들을 여기에 모두 기록하여 분류하면 되었다. 이렇게 최종병기 1인 실무매뉴얼과 최종병기 2인 업무일지까지 만들어졌다.


커피 한 잔이 만들어낸 '업무일지'는 강력했다. 뭔가 매일 같이 타이핑 하는 것을 본 동료들은 뭘 이렇게까지 하느냐 했지만, 연이만의 오늘을 이렇게 적어내려가니 오늘 할 업무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내일 할 일도 알 수 있어서 업무의 실수도 줄었다. 더욱이 실무매뉴얼 만들기도 한층 쉬워졌고, 업무파악하기는 더 쉬워졌다. 일상메모까지 쓰기에 가끔 이것이 빛을 발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강당 키가 사라져서 수업을 못하고 있는 학년이 있었다. 5학년 4반에서 가져갔고, 다시 행정실로 돌아오지 않은 것을 업무일지로 확인했다. 이를 알려주고 수소문을 하니 5학년 4반에서 6학년으로 갔다는 것을 알았다. 금방 찾을 수 있어서 다행히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가끔은 귀찮고, 가끔은 빼먹고, 가끔은 아주 정신없고 바빠서 업무일지를 쓰지 못하기도 하지만, 저녁에 집에 돌아가 그날을 복기하면서 채워넣었다. 연이는 이 강력함을 언젠가 또 빛을 발휘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오늘도 업무일지를 쓴다.


연이만의 업무일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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