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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13. 2021

[교행일기] #39. 칭찬, 그 달콤한 힘

보통의 날


오늘은 여느 보통의 날 중에 하루였다. 공문 마감일이라는 것 빼고는 그냥 여느 날과 다름없는 그런 보통의 날이었다. 급여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익숙해져야 하는 보통의 날이기에 바쁨은 연이에게는 항상 존재했다. 연이는 이렇게라도 급여 관련 인건비 공문을 작성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고 싶었다. 17명의 교육감소속 근로자의 개개인의 인건비를 이제까지 내려온 인건비와 앞으로 필요한 인건비를 비교하여 부족하면 더 신청하고 남아 있으면 그 남은 인건비를 제외하고 신청하는 형태였다. 말로는 간단했지만, 실제로 엑셀시트를 보면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근로자마다 개개인의 급여에 대해 모든 것을 꿰고 있어야 작성이 가능한 일이라 인건비 공문은 신규에게는 가장 힘들고 부담감에 어깨가 땅을 뚫고 들어갈 정도였다.


그렇게 작성을 어느 정도 마치고 시트 2의 전체 인건비 쪽으로 넘어갔다. 시트1의 개개인의 인건비가 시트2의 직종별 인건비의 합과 맞추는 단계에서 뭔가 계속 오류가 났다. TRUE가 나와야 하는데 자꾸 FALSE가 나왔다. 사실 연이는 엑셀을 학교 발령받고 처음 사용했다. 한글이라면 자신 있었지만, 엑셀은 사실 쓸모가 없었다. 적어도 연이에게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잘 모르는 엑셀의 구조 때문인지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다행인 것은 연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그리 크지 않기에 필요하면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엑셀에 기초적인 것부터 함수까지 모든 궁금한 것은 네이버와 유튜브에 넘쳐나게 친절한 선생님들이 많았다.


머리가 터질 정도로 엑셀과 씨름을 하다가 잠시 밖으로 나갔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알면 금방 풀릴 것도 같은데, 엑셀 꼬꼬마 연이에게는 넘기 힘든 벽처럼 끙끙대고 있었다. 화장실을 갔다가 잠시 운동장 차양막 아래 계단에 앉았다. 태양의 열기는 차양막 안쪽까지 그대로 이글거리며 뚫고 들어왔다. 그 열기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여름이구나. 이글대는 여름. 잠시 운동장 오른편에 자리잡은 낮은 언덕의 열대우림처럼 자란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 입장에서 연이는 어떤 존재처럼 보일까 궁금했다. 연이가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나 나무가 연이를 바라보는 것이나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연이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는지 행정실로 뛰어들어갔다.




칭찬, 그 달콤한 힘


일단 개개인의 근로자의 인건비 시트를 1명씩 본봉, 각종수당, 연차수당, 퇴직금까지 차근차근 집어가며 틀린 부분이 없나 살폈다. 17명이 모두 마치고 나니 틀린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내려온 인건비와 앞으로 필요한 인건비를 비교하는 시트2에 문제가 생긴 것이니 그것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엑셀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단순한 산수문제가 틀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야 틀린 부분이 보였다. 


엑셀시트의 복잡함에 머리가 어지럽고, 17명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심장이 두근거렸고, 엑셀 시트2의 FALSE를 보는 순간 연이가 엑셀을 못한다는 열등감에 인건비 공문에 대한 진짜 목적을 잊었다. 복잡하고 잘 못하는 엑셀에 마감까지 있는 공문,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연이의 정신을 흔들었다. 


겨우 완성한 공문을 실장님에게 상신하자, 실장님이 연이를 불렀다.

"연 주사!"

실장님의 딱딱딱 구둣발 소리도 없이 연이를 불렀다. 네 하고 실장님 자리로 갔다.

"야, 이것을 다 해내고, 대단하네. 연 주사이니까 이것 하지 나는 못한다."

실장님의 칭찬에 연이가 이제까지 인건비 공문작성하면서 힘들었던 게 모두 보상받는 것 같았다. 알아준다는 게 이런 느낌이고, 칭찬이라는 게 이렇게 강력하고 달콤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연이는 자리를 돌아오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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