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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12. 2021

[교행일기] #38. 후회된다는 말의 의미

동기였던 B


연이가 첫 발령을 받고 학교 행정실을 근무한 지도 벌써 7개월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무표정으로 집중할 때 미간 사이의 찡그린 골이 패인 내 천 자는 마음의 불안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5개월의 흔들리던 업무의 불안도 차차 안정권 안에 돌입했는지 연이는 아직도 서툴고 실수를 하지만, 마음의 아주 작은 여유가 생겼다. 가끔은 웃고 가끔은 슬프고 가끔은 놀랐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야 견딜 수 있었던 행정실이 아닌 다른 감정의 소중함을 아는 연이가 되었다.


익숙해지는 것이 많을수록 주변의 것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의 작은 부분이 아닌 행정실의 주변이 보였고, 시간이 흘러감이 보였다. 어느새 쨍쨍 내려쬐는 햇빛의 강렬함에 사람들은 건물로 숨어들어 에어컨 밑에 옹기종기 모여 그 강렬함이 수그러들기 바라는 계절이 왔다. 조금만 나가서 움직여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은 기본이고 이내 땀이 턱과 목의 뒷부분을 타고 흘렀다. 그런 태양의 강렬함은 나무들의 잎을 더 활짝 펴게 만들어 열심히 그 빛을 받아들여 자신의 양분을 삼아 더욱 잎이 푸르르게 바뀌고 있었다.


어느덧 몇몇 일찍 깨어난 매미들이 날개 옆 진동막을 비벼 울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지~~~~~이이잉'하는 말매미가 행정실의 창문 틈으로 흘러들어왔다. 작년 이맘때 도서관에서 매미 이 녀석들은 해가 다 넘어간 저녁까지 열공 중인 도서관 수험생들을 경쟁적으로 괴롭혔다. 자신들도 자신의 종족보존을 위해 저리 경쟁을 하는구나 생각하니 더욱 열을 올려 공부를 했던 생각이 났다.


7개월 행정실에 근무하면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들이 섞여 교행직 주무관 연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한 통의 카톡을 받게 되었다. 다름 아닌 마지막 의원면직했던 동기 B였다. 마지막 인사하러 왔다던 그날의 B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날 그의 얼굴은 핏기도 하나 없는 생기가 빠져 버린 미라 같은 얼굴이었고, 최선을 다해 뭔가 버티고 있는 느낌의 그였다. 그런 그가 톡에서 한 말은 연이에게 한참을 생각하게 했다.


연이님, 잘 계신가요?
학교는 여전히 바쁘지요?
제가 조금만 더 견딜 걸 하는 생각이 요즘 문득 문득 들어요.
공기업을 목표로 했던 제가 맞지도 않는 회계업무를 하는 교행직에 덜컥 붙어버려 근무를 했지만,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너무 쉽게 포기를 했나 하는 생각을요. 후회가 되네요.


후회다는 말의 의미


'후회가 된다'는 글자에 연이의 시선이 고정이 되었다. 왜? 왜지?

B에게는 이미 전의를 상실했던 눈이었고, 더이상 버틸 힘이 몸에 남아 있지 않았다. 더 버티다간 학교에서 큰일이 벌어진 것 같은 B였다. 그랬던 동기 B가 현재의 상황에서 그날의 일을 후회를 한다고 했다. 현재가 잘 안 풀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단정지을 수 있겠지만, 그 역시 녹록치 않은 취업현장으로 다시 내몰린 상황이니 불안하고 힘듦이 있지만, 그 당시의 판단이 어쩌면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연이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연이 역시 의원면직을 가슴에 품은 적이 있기에 그의 마음을 이해했기도 했고, 지금 상황을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쉽사리 그에게 답을 하기에는 힘든 게 지금의 연이의 상황이었다. 오랜 구전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지 않은가? 3일, 3개월, 3년이 되는 시점이 가장 힘드니, 이 기간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그 기간을 견디지 못한 동기들은 직장인들의 자연도태의 예시가 되어버렸다.


매미는 땅속에 있는 기간까지 7년, 13년, 17년을 산다고 한다. 모두 수학에서 말하는 '1보다 큰 자연수 중 1과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가지는 수' 즉, 소수 해를 자신의 삶의 길이로 정했다. 모두 천적을 피하기 위한 그들의 전략이다. 땅속에서 나와 한 달간 살고 수컷은 짝짓기를 하고 죽고, 암컷은 나무에 구멍을 파고 알을 낳고 죽는다. 그 알이 애벌레가 되어 나무뿌리로 내려와 40cm 땅을 파고 들어가 나무 수액으로 그 오랜 기간 살아간다. 일정온도가 올라가기 전까지 울지 못한다. 비가 와서 주변의 온도가 내려가면 매미는 기온이 오르기를 기다린다.


매미조차 일정한 온도가 되기 전까지 우렁찬 울음을 내지 못한다. 후회한다는 동기 B의 말과 연이가 불과 몇 개월 전에 내리려고 했던 어리석음이 교차되어 매미 울음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연이야, 너도 동기 B처럼 후회한다는 말을 할 뻔했다. 얼마나 교육행정직 공무원을 했고, 얼마나 학교 행정실에 근무했다고 섣부른 판단을 하려고 한 거니? 최선을 다한 동기 B조차도 후회한다는 말을 하는데, 과연 너는 최선을 다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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