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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Sep 01. 2021

어둠이 내려온 그곳이 버려진 이유

[교행일기]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3 #58

어둠이 내려온 그곳이 버려진 이유


연이가 좋아하는 교문에서 행정실로 올라가는 나즈막한 경사가 있는 길과는 전혀 결이 다른 정반대의 장소가 있다. 등나무. 학교는 대로변에 건물의 한쪽 면을 버젓이 드러내고 있고, OO초등학교 이름을 큼지막하게 써 있어서 누구나 알 수 있었지만, 반대편은 언덕에 가려져 있고 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구조였다. 정오가 되어 해가 하늘 가운데 지나 한 3시만 되어도 언덕의 꼭대기에 걸려 넘어가곤 했다. 그래서 등나무는 아침에는 학교 건물에 가려 어두컴컴했고, 낮에 조금 빛을 담아두었다가 몇 시간도 안 되어 산에 가려져 어둠이 내려오는 장소였다.


원래 조성된 목적과 이유는 쉼터였는데,  학교 건물의 끝자락에 있다보니 학생과 사람들이 발길이 뜸하게 되었다. 그렇게 버려진 곳처럼 몇 해가 지났다고 했다. 여기 저기 못 쓰는 화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런 화분들은 여름 내내 비바람을 맞고 겨우내 한기에 얼었다가 녹았다 하며 스스로 깨지기도 해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여름에는 언덕의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굴곡을 만들어 비가 내리면 그 습한 곳을 형성하여 모기와 벌레의 천국이 되었다. 언덕과 가까운 등나무 역시 모기의 은신처가 되었고, 운동장이나 열린 창문으로 그들의 먹이를 찾아 학교로 스며들었다.


여름과 가을에는 두 달에 한 번, 겨울과 봄에는 세 달에 한 번 교내 소독을 해도 없어지지 않는 모기와 벌레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놀라고 귀찮고 짜증나는 개체가 되었고, 간혹 그것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아주 신기한 보물을 찾은 것처럼 벌레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렇게 잡은 벌레를 채집통에 넣고 다니며 전리품처럼 다른 학생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다.


연이가 근무하는 행정실에도 배 부분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 검정색 산모기가 들어와 배회하는 날이면 뿌리는 모기약을 들고 잡으러 다녀야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물리는 날에는 물린 곳이 동전 크기만큼 불어나고 그 가려움에 몇날며칠은 각오해야 했다. 학생들이 모기에 물려서 보건실을 찾는 빈도가 많아지고 학부모님의 민원이 들끓을 때면 소독을 더 자주 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했다.


운동장 차양막 쪽 화단에서 열기가 이제는 많이 식은 햇빛을 쬐다 등나무 아래를 보면 연이는 암울했던 5월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멋지게 조성해 놓은 쉼터가 끝내 발길이 닿지 못하고 방치되어 애물단지가 된 것처럼 그 당시 어둡고 씁쓸한 감정들이 연이의 마음 속 깊이 한쪽에 자리잡지 않게 하려 했지만, 마음의 상처가 컸던지라 흔적이 남았다. 그 흔적들이 애물단지 같은 등나무가 되지 않고 그 흔적들을 보면서 힘들 때마다 이제 제법 마음이 단단해진 지금의 연이가 있음을 기억하고 싶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부터 최근까지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에 초점을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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