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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Sep 02. 2021

[교행일기] #59. 알파조

알파조


연이는 지원청 사회복무요원 담당자로부터 쪽지 한 통을 받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사회복무요원 W의 복무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쪽지의 내용은 이랬다. W의 후임을 W의 남은 복무기간 내에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연이는 쪽지를 출력하여 황급히 실장님에게 뛰어갔다.


"실장님! 사회복무요원을 줄 수 없대요."

실장님은 바로 지원청 담당 주무관님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 사정 얘기를 한참을 얘기했다. 실장님은 전화를 끊고는 며칠 기다려 보자고 했다. 사회복무요원의 배치가 원활하지 않아서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후에 갑자기 사회복무요원 W의 후임 사회복무요원이 왔다. 까까머리를 한 청년이 행정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민원인가 싶어 솔이 주무관님하고 연이가 벌떡 일어나 맞으려고 하니 OO초등학교로 배치받았다고 했다. 곧이어 지원청 담당자가 연이에게 쪽지가 보내왔다. 쪽지의 요지는 OO초등학교 인근에 사는 사회복무요원이 있어 그쪽으로 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잠시 시설을 보러 나갔다가 들어온 실장님은 후임 사회복무요원의 인사를 받았다. 다음날부터 W와 후임은 인수인계를 하기 시작했다. 사회복무요원 W는 연이보다 학교에 오래 있어서 그런 건지 언제나 유쾌했다. 싱글싱글 잘 웃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들어온 덕분에 그는 학교에서도 잘 적응한 케이스였다고 했다. 그런 반면 후임 사회복무요원은 아직까지 군대의 반듯함과 딱딱함이 묻어있는 말투에 여느 남자들의 단답형 말투가 혼합되어 사뭇 로봇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임 사회복무요원에게 일을 시켰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해내는 것을 보고 그 당시 인공지능 알파고가 거론이 되던 시점이라 사회복무요원의 별칭을 알파조라 했다.


알파조는 능력이 대단했다. 정확성과 신속성이 탁월했으면 가끔 학교 일을 해봤는가 의심이 될 정도로 척척 해냈다. 그런 그가 온 지 며칠이 안 된 시점에서 점심을 먹고 와서는 행정실에 도서대에 꽂힌 책 한 권을 들고 보고 있었다. '근로기준법'. 연이와 솔이 주무관, 김 주무관님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솔이 주무관님, 저기 봐봐요. 근로기준법을 읽고 있잖아요. 우리 알파조는 저기 높은 곳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니까요?"

연이가 솔이 주무관님에게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정작 급여담당자인 연이도 그 법은 어려운 법이었다. 1960년대 전태일 열사가 외치던 근로기준법이 법령으로 제정되어 어느덧 2016년 OO초등학교 도서대에 꽂혀 있지만, 급여 법령 중 가장 상위법이라 연이는 취업규칙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감정이 그에게는 없었다. 되도록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아예 감정이 없는 듯 딱딱한 말투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가족 같은 행정실 분위기에 한동안 따로 노는 물 위에 기름처럼 둥둥 떠돌았다. 하지만, 알파조 역시 조금씩 행정실 분위기에 적응하더니 화기애애함이 스며들었다. 감정을 갖게 된 알파조는 가끔은 실수도 하고 가끔은 버벅거리게 되었다.


알파조는 퇴근하고 가끔 모이는 모임에도 잘 어울렸고, 남자 선생님들의 모임인 남친회에도 실장님과 함께 자주 참석했다. 연이는 한 달에 한 번 사회복무요원을 교육하고 올리는 교육일지나 분기마다 복무상황을 점검하고 고충을 듣고 올리는 관찰일지에도 연이의 기대와 생각을 뛰어넘게 아주 우수하여 칭찬일색일 수밖에 없었다.


연이와 근무하게 될 두 번째 사회복무요원 알파조 덕분에 OO초등학교의 기억은 '아주 화창한 맑음'이었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부터 최근까지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에 초점을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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