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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Sep 11. 2021

[교행일기] #61. 삶의 가치

삶의 가치


연이는 공문을 3분의 1을 작성하다가 머리가 아파왔다. 업무를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예상 시간만 한 10시간이 걸릴 것 같은 공문이었다. 다른 업무도 병행을 하면서 이것을 해내야 했다.


'역시 머리가 맑아야지 술술 적고 더할 텐데, 지금은 오후네.'

커피가 당기는 시간이다. 학교 근무하기 전에는 커피도 못 마시던 몸인데, 이제는 제법 커피를 마셔도 예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려서 밤을 꼴딱 새우는 일이 없다. 몸이 적응을 한 건지 아니면 업무 강도에 몸이 맞춰져서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 건지 모르지만, 오후 한 3시가 되면 커피가 당기는 시간이 되었다.


연이는 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에 다들 커피를 하나 둘 타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다. 아이들 교육 얘기, 주식 얘기, 집값 얘기 등 여러 주제의 이야기가 오가다가 TV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 연이도 본 적 있는 TV 프로그램에서 진짜 멋있는 전원주택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다들 그런 집에서 살아봤으면 한다며 그 집에 사는 상상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미소를 지었다. 연이도 그런 집에 살아봤으면 한다고 했다.


다른 부분에서 살아봤으면 한다고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 프로그램에서 보면 그 멋들어진 전원주택에서 바라보는 해가 산에 뉘엿뉘엿 걸려서 그림자가 길어지면 하늘의 색깔을 파랑부터 빨강까지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하는 낭만을 그런 집에서는 매일 같이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하기에 그런 집에 살아봤으면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보다 어떤 연유로 도시에 있다가 그곳으로 흘러들어 가 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의 온유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차 한 잔을 하고 있는 표정 그 자체가 부러웠는지 모른다.


언젠가 한 번 아주 철학적인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의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요?'


아,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간혹 이런 질문을 들으면 연이는 살짝 당황을 한다. 연이의 삶의 가치를 솔직히 얘기해도 될지 아니면 질문자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지 고민을 한다. 연이는 본래 삶의 가치는 '행복'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행복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은가? 행복하다란 감정은 '무엇이 있어서 행복하다'라는 등식이 나올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그럼 이 '무엇'에 해당하는 것이 어떤 게 있을까?


돈, 명예, 권력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저 질문을 한 사람의 의도는 과연 세속적인 답변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진심을 듣고 싶은 것일까 하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연이는 질문자에게는 본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것이기에 미소만 지을 뿐이다.


사실

연이는

'사계절', '따뜻한 햇살', '큰나무 옆 벤치'

'하늘빛', '나무 냄새', '풀향기'

'아이들 웃음소리', '뽀드득 눈 밟는 소리'

'사각사각 단풍잎 밟는 소리',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이런 것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일은 이런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사람과 옆에서 같이 보고 듣고 맡고 느끼며 하루 종일 따뜻한 햇살을 받는 일이다.


아주 잠시 일터에서 느끼는 커피 한 잔의 여유로 잊고 있었던 행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마음이 통통 튀었다.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그분의 표정을 머리에 떠올리며 연이도 식어버렸지만 따스하게 남은 커피를 마셨다. 오늘도 따스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소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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