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Sep 17. 2021

[교행일기] #63. 딱딱한 행정실 분위기를 바꾼 그것

딱딱한 행정실 분위기를 바꾼 그것


이제 제법 날씨가 서늘에서 쌀쌀로 넘어가는 12월이 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바람에 칼을 든 한기가 연이의 귀를 제대로 노리고 들어왔다. 점퍼의 손목 부분을 손가락으로 잡고 손을 안으로 집어넣고는 양 귀에 하나씩 끼고 바람을 등지고 섰다.  시계를 보며 발을 동동 거리고 있었다. 3분 뒤에 버스도착 알림이 전광판에 떴다. 한기 가득한 바람에 사람들의 어깨는 점퍼 안으로 접어 몸을 움츠리게 하고 움직임은 둔해졌다. 연이는 버스가 오는지 살짝살짝씩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는 바로 바람에 등졌다. 버스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가 났다. 차창에 햇살이 비치고 의자 밑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니 잠이 쏟아졌다. 며칠 째 고생하며 이번 해의 마지막 급여 작업을 완성하고 교장선생님까지 결재를 맡았다. 드디어 12번의 급여를 끝냈다. 중간에 고비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아직 연이는 여기 있다.


출장이 잡혔다. '새내기 지방공무원 직무 워크숍'이 교육지원청 4층 대회의실에서 있었다. 강당이 아닌 대회의실은 과학실에서 실험할 때 쓰는 직사각형 책상이 여러 개 있고 둘러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새내기'라고 하니 조금은 쑥스러워질 시간이었다. 이제는 시보를 뗀 6개월도 훨씬 지났다. 그래도 1년은 지나지 않은지라 동기들도 만날 겸 워크숍 참석을 위해 전날 부지런히 다음날 예정된 일까지 마쳤다.


하루 종일 교육이라 학교 밖을 넘어 잠시 마음의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교육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교육지원청 근처에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준비해 주고 커피믹스이지만 커피까지 제공하는 교육이라 이 정도면 아주 극히 드문 좋은 교육이었다. 오전 듣는 교육과 달리 오후에 발표 토론을 하는 자리가 마련이 되었다.


주제는 '근무환경을 개선을 위한 노력'이란 주제였다. 다들 쭈뼛거리며 발표하기를 꺼려했다. 테이블 당 1명씩 발표를 하게 했는데, 하~~~ 당연히 이 느낌이 싫었다. 항상 이런 경우 연이가 하게 되는 뭐랄까 머피의 법칙에 걸린 인형이랄까 그런 저주가 연이에게는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이가 가장 나이가 많은 탓도 있고, 어차피 다들 꺼리고 뭐를 해도 연이가 해야 한다면 그냥 연이가 하겠다고 하면 모양새도 좋을 것 같았다. 연이는 당연히 쫄보라 얘기가 있더라도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얘기를 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3번째 테이블이었던 연이는 두 명의 1분 30초 내의 짧은 형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연이는 그들이 발표를 하는 동안 머리를 짜내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하다가 솔이 주무관님이 생각이 났다. 연이가 노력한 것은 아니지만, 솔이 주무관님이 온 이후로 행정실은 처음과 다른 행정실이 되었다.


솔이 주무관님은 입이 심심하다며 곰 젤리 한 통을 가지고 왔다. 소량 포장이 된 것이 통에는 족히 100개도 넘게 담겨 있었다. 그것을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이 넘는 거리를 품에 꼭 들고 왔다는 것도 대단했다. 사실 솔이 주무관님은 그것을 자신의 입으로 가지고 가기보다는 처음에는 행정실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다가 행정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조금씩 행정실의 분위기를 바꿔주고 있었다. 질긴 곰 젤리는 처음에는 고무 씹는 듯했지만, 씹을수록 달달한 맛이 났고 씹으면서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딱딱했던 행정실 분위기가 부드럽게 변했다. 솔이 주무관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며 행정실에 원래 있던 직원처럼 스며들었다.


곰 젤리 한 봉지의 개수와 가격은 얼마 되지 않지만, 거기에 담긴 따스함은 조금씩 퍼져 나가 행정실의 분위기는 물론 행정실을 찾는 이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솔이 주무관님의 얘기를 마친 연이는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사회자가 직접 준비한 발표자를 위한 선물을 연이에게 건넸다. 칫솔치약세트 선물이지만 그저 고마움이 생각났고 그것을 얘기한 것뿐인데, 사람들이 좋은 주무관님하고 일한다며 좋겠다는 소리를 너도나도 했고 부럽다고 했다. 그랬다. 그들이 있어서 연이는 의원면직의 고비를 두 번이나 이겨냈고, 12번의 급여를 돌렸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소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매거진의 이전글 [교행일기] #62. 쉽게만 생각했던 기록물 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