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에게 덧씌워진 오해의 프레임
학교는 늘 소란스럽다.
그 속에서 보건교사는 아이들의 통증을 듣고, 위기의 순간에 판단하며, 보건실이라는 작고 단단한 공간을 지켜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세상은 그 자리를 ‘수업을 하지 않는 자리’로만 바라본다.
“보건교사는 수업을 하기 싫어한다.”
이 말은 오래된 오해이자, 학교의 본질을 잊은 교직 사회가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학교에는 단 한 명의 의료인이 있다.
그는 교사이면서도 동시에 의료 면허를 가진 전문가다.
법적으로 응급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학생의 건강 이상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그에 따라 즉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존재인 보건교사.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보다
‘교사’라는 단어에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보건교사도 교사니까 수업을 해야지.”
그 말은 어쩌면,
‘교육’과 ‘수업’을 구분하지 못하는 교직 사회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1. ‘교육’과 ‘수업’ 같지 않은 두 단어
학교는 교육의 공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수업’을 같은 말로 착각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교육들은 단지 ‘지식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삶을 배우고, 몸과 마음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일. 그 모든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수업’은 그중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교실에서 교과서를 펼치고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 이 수업이라는 고유명사의 뜻이다.
‘교육’은 이러한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실 밖에서도 이어진다.
보건교사는 바로 그 일반 교실 밖, 보건실이라는 학교의 특별교실 중에 하나인 공간에서 ‘삶의 교육’을 맡는다.
‘수업’은 지식을 전하는 방식이다.
‘교육’은 삶을 배우고, 본인의 몸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도록 자가역량을 증진시키는 일이다.
보건교사가 보건실에서 하는 '보건교육'의 역할은 후자에 속한다.
우리는 학생들이 건강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위급한 순간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매일의 보건실에서 ‘삶의 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아플 때, 다칠 때, 몸의 언어로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고 대응하는 일 그건 교과서로 가르칠 수 없는,
보건교사가 학교의 유일한 의료인으로서 진행하는 ‘보건 교육’이다.
2. 병원에서는 원무과가 진료하지 않는다
병원을 생각해 보자.
의료인이 없는 병원이라면, 원무과나 행정 직원이 환자를 대신 진료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행정직원은 최초 발견자로서의 응급처치는 할 수 있지만,
의료적 판단이 필요한 ‘의료행위’는 할 수 없다.
병원에 의료인이 없다면,
그 병원은 문을 닫고 다른 의료기관으로 안내하는 것이 환자에게는 가장 안전한 조치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보건실이라는 공간은 보건교사인 의료인이 의료적 판단을 하는 곳이고, 보건실 이용자인 학생들은 그런 의료적 판단을 기대하고 오는 장소이다.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는 응급의료의 첫 판단자가 사라진 공간이다.
이런 보건실의 공백을 증가시키는 것이 과연 학생들의 건강권과 안전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일까?
3. “교실 수업을 맡지 않으면 업무를 피한다”는 오해
보건교사가 교실 수업을 맡지 않으면
“업무를 피한다”는 프레임이 덧씌워진다.
하지만 그건 ‘일의 본질’을 보지 못한 교직 사회의 오해다.
하지만 정작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교실 수업을 들어가는 시간 동안, 보건실은 누가 지키고 있는지를.
대체교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그들은 의료 면허가 없는 일반교사다. 그들은 학생이 다양한 건강문제를 호소할 때, 그 건강문제에 대한 의료적 판단을 내릴 법적 권한이 없다. (이 '의료행위'는 누구나 해야 하는 최초발견자의 응급처치와는 구분되는 의미이다.)
그 시간 동안 학교는 ‘의료공백 상태’가 된다.
학교 안의 유일한 의료인인 보건교사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법이 허용하는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의학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상황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그래도 수업은 돌아가야 하니까”라며 넘길 뿐이다.
학교는 의료기관이 아니다.
그렇기에 학교 안에서 의료인이 할 수 있는 응급의료행위는
보건교사에게만 법적으로 허락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에 보건교사가 있다는 건,
학교가 ‘완벽한 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생명을 지킬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최소한이 빠져버리면, 학교의 ‘응급’은 그저 ‘운’에 맡겨진 일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수업을 피하는 게 아니라, 그 ‘최소’를 지키려 하는 것이다.
보건'수업'으로 학생들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교육을 한다고 중요시 여기면서, 정작 보건'수업'으로 인해, 학생들이 교과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시간대에 보건실 공백 시간이 증가되는 것이 과연 학생들의 진정한 건강권을 지키는 방향이 맞을까?
우리가 지키려는 건 ‘근무 편의’가 아니다.
‘교사로서의 역할 회피’도 아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건 오직 하나, 아이들의 건강권과 생명안전의 '최소선'이다.
수업은 멈춰도 다시 할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이 멈추면, 다시 시작할 수 없다.
그 단순하고 명료한 사실이, 언제쯤이면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