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결되기까지의 조심스러운 걸음

사람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을 배우다

by 평범한 보건교사

1. 관계가 가장 무서웠던 시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한참을 헤맨 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다시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보건교사라는 직업은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그들의 호흡과 표정을 읽어야 한다.

그 역할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나는 무서웠다.

마치 손끝만 스쳐도
부서져 버릴 것 같았던 그 시절,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도,
내 마음을 다시 열 용기도 없었다.




2. 그러나 보건실의 문은 어느 날엔가 저절로 열려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계는 내가 준비됐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아침,
문이 열리고 아이가 들어오며 말했다.

“선생님, 오늘은 안 아파요 지나가다가 인사하려고 왔어요!”

그 말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무 자연스럽게 건네졌기 때문에
내 마음이 느슨하게 풀렸다.

나는 준비되지 않았지만
보건실 문은 늘 열려 있었고,
누군가는 그 문을 열고
나와 소통하려 하고 있었다.

그 단순한 사실이
관계의 첫걸음을 다시 내딛게 했다.




3. ‘대답해야 한다’는 부담 대신,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보기

예전의 나는
아이들의 고민이나 질문에
완벽한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생각했다.

“내가 답이 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나는 경청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아픈 이유가 불분명한 아이도,
말끝이 흔들리는 학생도,
괜히 와서 서성이던 아이도—

나는 그저
의자 하나를 밀어내어 앉히고
“말해볼래?” 하고 천천히 귀 기울였다.

놀랍게도
관계는 그곳에서 다시 자라났다.
내가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낼 수 있는
작은 그릇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4.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세상과의 골이 조금씩 메워졌다

보건교사로서의 삶도,
한 사람으로서의 삶도,
내게는 여전히 미완성이었지만

보건실에서 하루하루 쌓여가는
작은 만남들이 어느새 나를 다시 세상과 잇고 있었다.

학생의 장난스러운 인사,
동료 교사의 가벼운 농담,
아침 햇살 아래 보건실을 스치는 먼지까지도
내 일상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전엔 관계가 나를 침식시키는 것 같아 두려웠지만
지금은 관계가 나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다.




5. 다시 연결된다는 것은 누군가를 붙잡는 일이 아니다

나는 이제 안다.

다시 연결된다는 것은
누군가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이 다시 누군가를 향해 열린다는 뜻이라는 걸.

세상과의 연결은
커다란 다리를 놓는 게 아니었다.
다만, 매일 보건실 문을 열고
작게, 부드럽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다시 연결되기 시작한 나는
언젠가 또 불안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이 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사람은 아니다.

내 안에 다시 사람을 향해 열린 작은 문이
하나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 문 앞에 서서 나는 천천히 생각한다.

살아간다는 건 사람 사이에 조용히 서 있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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