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순간들에 깃든 회복의 징후
아침에 학교에 출근하려 보건실 문을 여는 순간, 보건실에는 특유의 공기가 있다.
간밤의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듯한 조용함, 새하얀 천 위에 아직 아무도 누워보지 않은 침대의 팽팽함, 그리고 내가 오늘도 누군가의 아픔을 받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약간은 떨리는 마음. 어떠한 다양한 사건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 그리고 밀려있는 행정업무들에 대한 고민.
그러한 고민들을 깊게 할 틈도 없이 학생들은 문을 열고 나를 필요로 한다.
“선생님, 그냥… 배가 좀…”
말끝이 흐릿한 그 표정을 보고, 언제 어떻게 아팠는지, 통증강도와 통증양상들을 질문하며 학생이 아프다는 부분에 집중하여 증상을 파악한다.
체온을 측정하고, 체온은 괜찮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아침을 먹고 오지 않았으니 따뜻한 물을 건네줘 본다. 그리고 물을 먹고 나서도 배가 아프다면 다시 보건실에 올 수 있도록 설명도 해본다.
학생들의 불편감을 회복시키는 것이, 사실은 나를 회복시키는 첫 순간이라는 걸..
나는 보건실에서 오래 일하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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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는 뛰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진 아이가 온다.
소독약을 뿌리면 따끔하다고 난리를 치지만
정작 눈물이 터지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친구들이 놀고 있는데, 나만 빼고 놀았어요. 같이 놀자고 했는데 친구들이 도망갔어요. 그래서 같이 놀자고 달려가다가 넘어졌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문득 내가 초등학교 교과교사들 사이에 포함되고, 같이 어울리고 싶었던 비교과교사인 보건교사였던 나 자신이 생각났다. 무엇인지 모를 교대문화 속에서 소외되는 비교과교사인 보건교사로서 있는 나 자신, 조직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 애썼던 지난 시간이 겹쳐져
조용히 숨을 들이켠다.
상처를 소독하며 나는 학생에게 말한다.
“굳이 같이 놀아달라고 뛰어가지 않아도 괜찮아. 천천히 00의 속도대로 걸어가서 친구들이 있는 곳에 가면 돼. 그래야 안 다치지. 천천히 다가가서 같이 놀고 싶다고 이야기해 봐.”
그 말을 하는 내 목소리가
사실은 나 자신에게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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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즈음, 보건실은 내가 ‘다시 발견되는’ 공간이 된다.
점심을 먹으러 급실실에 가고 싶지만,
점심시간이 쉬는 시간인 학생들은 점심시간에 몰려온다.
아이들이 한두 명씩 들어오며 내 식사 시간은 미뤄지고, 짧아진다. 심각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점심을 건너뛰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피곤하기만 했는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한 학생이 말한다.
“선생님은 왜 항상 여기 있어요? 안 힘들어요?”
“응, 선생님도 힘들 때도 있지. 그런데 내가 보건실에 있으니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보람찬 것 같아.”
그 대답을 학생에게 던지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에게도 대답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보건실은 종종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사라지지 않았어. 네 자리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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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하나둘 돌아가고
보건실은 다시 아침처럼 고요해진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의 교사이자,
한 사람의 근로자로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누구도 평가하지 않고,
누구도 줄 세우지 않고,
누구도 내 마음을 흔들어놓지 않는 공간.
그저 내가 나로서 쓸모 있는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만
남겨주는 공간.
그 공간에서 나는 깨닫는다.
보건실은 학생들의 건강한 학교생활을 위해 지원해 주는 곳이지만, 그보다 먼저 나를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곳이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보건실 이용 학생들의 다양한 호소와 울음들 속에서 흩어졌던 나를 주워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이며
나는 조금씩, 조금씩 평범한 보건교사로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