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끝에 퇴사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왜 그만두냐는 질문에, 나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라는 남편의 강한 의지와 나의 애매모호함으로 답해야 했다. 그래. 박완서 작가도 마흔 넘어서 등단했다고 했다. 찬장에 “애 키우고 반드시 나가겠다”라고 메모를 붙여놨다는 작가처럼, 나도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어느 직장이든 구해서 사회에 복귀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 다짐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닫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신생아 때 이후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놓고 나면 집안일 몇 가지를 마치기도 전에 12시가 되어 다시 학교 앞으로 가야 했다. 그리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지켜보다가, 학원 셔틀에 태워 보냈다. 잠시 장을 보고 저녁거리를 준비하면 아이가 돌아오고, 숙제나 놀이하는 것을 돕다 보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이 일과를 반복하며 미취학과 초등 엄마로 17년을 살았다. 그사이 작은 번역일이나 남편의 업무를 돕는 재택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온전한 ‘나’로서의 경력이 아닌, 아이들과 남편의 일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아르바이트에 불과했다.
아이들이 곤히 잠든 저녁이면 자기 상실감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동네 학부모를 만나서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열등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잘 나가는 입사 동기들, 힘들지만 여전히 커리어를 이어가는 다른 학부모들 앞에서 내 모습이 너무도 초라했다.
학창 시절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아이가 어릴 때 독서에서 손을 떼다시피 했다. 채 5분의 집중 시간을 아이들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책을 다시 잡은 건, 처음엔 단순히 무력감을 떨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상하리만큼 10분조차도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며 한 시간 이상 읽게 되었을 때, 나는 달라지고 있었다. 책 속의 이야기가 나를 숨 쉬고 신나게 했고, 엄마로서의 나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노트북 앞에 앉아 한두 줄의 감상평을 쓰며, 나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 책은 학군지의 엄마로서 함께 아이를 키운 아이 친구 엄마들과 나눈 많은 고민에서 출발했다. 육아라는 과업을 함께하는 엄마들과의 대화는 내가 직장 동료들과 나눴던 동기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뇌와 감동이 있었고, 때로는 무릎을 치는 통찰력 또한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엄마로 사는 삶도 다른 사람의 인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배웠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도 답을 찾지 못할 때, 혹은 입에서만 맴도는 어떤 이야기를 말로 꺼내지 못했을 때, 책은 내게 답을 주었다. 그리고 답은 다른 책을 내게 가져와 읽게 했다. 이 책은 부모, 그리고 학부모로서 던지는 질문에, 책과 그 작가들이 건넨 답을 엮어낸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