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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희숙 Aug 10. 2021

담쟁이 빗장

박태기꽃 빗장

며칠 집을 비웠더니 대문에 빗장이 새로 생겨있다. 손톱만한 담쟁이잎이 대문을 덮고있다. 여러 가닥의 녹색 빗장 앞에서 잠시 망설여진다.  주인이 없는 집을 지키려는 목적인지 집을 자주 비우는 주인을 거부하는 것인지 너무 이쁜 빗장이다. 그냥 밀고 들어가기에는 조심스럽고 사랑스럽다. 협상이라도 할 수 있는 언어가 아쉽다. 담쟁이가 하는 말을 내가 못 알아듣는 것이 확실하다. 귀엽고 앙증맞은 담쟁이의 마음이 설마 거부일리는 없을테고 ‘이렇게 예쁜 빗장을 만들었어요. 주인님’으로 해석하며 몸을 비켜 들어간다.


대문 안쪽에 자라던 담쟁이 줄기 하나가 대문틈에 살짝 손가락을 내밀더니 바깥으로 온몸을 걸치고 자란다.  옆집 할머니의 돌돌돌 유모차 소리며, 맞은편 파란 대문집 아저씨의 헛기침 소리가 친숙해진 이웃이다. 심심찮은 골목 구경을 하며 가만가만 뻗어간다.

여러개의 가녀린 줄기들이 앞서기는 대장 따르듯이 올망졸망 뒤따르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다정한 손짓들이 보이는 듯하다. 대문 안쪽보다 햇볕도 잘 들고 골목에 볼 것도 많아 신이 난것 같다.

‘저렇게 자라다보면 문짝에 빨판 뿌리가 붙어 흔적이 남을텐데’,

 ‘대문을 통째로 담쟁이에게 내어줄 맘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곁을 주지 말아야하는데’...

하지만 고 작은 별같은 담쟁이잎의 애교에 이미 빠져버렸다. 대문짝이 새파란담쟁이 숲이 된다해도 올 한해는 두고 보리라. 


긴장마 동안 줄기수가 엄청 늘어난다. 

 한쪽 문을 통과하여 옆문을 덮었다. 

여러줄기가 양쪽 문짝에 걸쳐있는 깜찍한 친환경 빗장이다. 한줄기씩 일일이 풀어야한다면 최고로 안전한 빗장이 되겠다.

주인이 자주 집을 비우니 걱정이 돼서 힘을 모았나보다.






집을 거의 비워두는 산골 오두막이 있다. 봄에 작년에 웃자란 나뭇가지들을 정리했다. 박태기나무는 유난히 잔가지가 많아 잘린 가지가 아까왔다. 빨간 쌀알같은 꽃을 달고 있는 구불하고도 단단한 가지가 쓸만했다. 며칠 거기서 머무는 동안 커다란 독에 가득 꽂아두고 즐겼다, 봄에는 꽃들의 물오르기가 활발해서  오래 간다. 내려오는 날은 두고 오기가 아까와서 박태기 꽃가지로 대문에 빗장을 만들어두고 왔다. 빈집이 소문나서 가끔 구경하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마루에 앉았다가기도 하고 닫힌 문을 열어보기도 한 흔적이 있어 신경쓰인다. 아무리 대문이 허술한 빈집이라도 사적인 공간은 지켜져야 하는데 그런 의식이 아직 부족하다. 

꽃빗장을 젖히고 들어갈 무례한은 없을거라 믿으며, 봄철에 어울리는 대문이라 스스로 흐뭇해하며 몇 번이나 돌아보고 내려왔다.



‘담쟁이 빗장’, ‘박태기꽃 빗장’ 은유와 낭만이 있다. 

내 마음에도 얼마나 많은 담쟁이 줄기같은 빗장이 있는지 내가 잘 안다.

 자라는 줄도 몰랐던 인연 줄기들, 키우지도 자르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마음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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