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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희숙 Aug 13. 2021

도란도란 시골살이

도랑치고 가재잡고

간밤 비바람에 잠을 설치고 늦게 일어났다.

이웃 친구 전화가 왔다.

“집에 있으면 대문에 나와보소”

‘밤새 살구가 많이 떨어져 주워 가지고 왔나?’

자기들은 잘 안먹는다면서 어제도 많이 얻어왔는데...

나가보니 빈손으로 서 있다.

“이리로 와보소.” 담장 아래로 손짓하며 앞서 선다.


한달 쯤전에 잘라놓은 누런 아이비 가지 더미를 가리키며,

“이거 오늘 해가 좋을 때 널었다가, 마르면 우리집 바깥솥에 갖다 때뿌소”.

눈에 뜨일 때는 처리해야지 하다가 들어오면 잊어버리기를 반복한 것이 한달쯤 되었다.

“그라고 여기다가 이거 심고 물을 폭 주놓으소”

벌써 방아모종도 한줌 갖다 놓았다. 

동네 골목을 같이 지나다가 작년 방아씨가 떨어져 소복하게 올라온 것을 둘이서 뽑아온 적이 있다. 

어느날 친구집에 갔더니 텃밭에 자라고있는 방아를 보며 “그 집에도 잘 크고 있능교?” 한다. “뭐?” “전에 내캉 서동댁 며느리집 앞에서 방아 안 뽑아왔능교? 어데 심었능교?” 전혀 기억이 없다.  한두번이 아니다.

그 후에 어떻게 했는지는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난다고 했더니 새로 뽑아 갖다둔 것이다.

 담밑 손바닥만한 공터가 늘 깨끗하지 못해 동네 사람들 눈치가 보였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뒷말들을 하니까 나서서 방도를 알려주는 듯했다. 

게으르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고, 처리 방책이 마땅치도 않아서 여태 그 자리에서 한달쯤 방치되어 있었다. 

이웃 사람들이 보기에 애가 쓰이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집건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주택에 사는 어설픈 동민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늘 챙겨주는 친구가 고맙기도 하고 따로 불려가서 개인지도 받는 부진아 꼴이라 웃음이 피식 나왔다. 


하는 일없이 늘 쫓기듯 산다. 그 날은 약속이 있어 건드릴 시간이 없었다. 다음날도 약속이 있었다. 어제 눈앞에서 콕 집어 손바닥에 올려준 숙제를 또 미루면 안될 것 같아서 약속시간을 한시간 미루고도 30분이 늦었다. 

그렇게라도 억지로 처리하지 않았으면 아직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늘 눈이 가던 쓰레기를 치우고 파릇한 방아 모종이 살음을 한 담귀퉁이가 말금하다.

자기집에 갖다 때라던 마른가지들은 지시(?)를 어기고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기온이 올라가고 비가 잦은 우기가 시작되니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잡초가 문제다. 건조한 봄에는 말린 잡초를 태우기가 조심스럽더니 이제는 모깃불을 핑계로 산불감시원이 퇴근한 해거름부터 맘놓고 연기를 피울수가 있다. 

누군가 방문 예정이 있는 무렵에는 일부러 모아두었다가 모깃불로 함께 태우면서 잊혀진 유년시절 여름 정취를 새삼 즐기기도 한다.

저녁에 지인들과 약속이 있어 비에 흠뻑 젖은 아이비를 널지 않고 일부러 모아두었다. 마르면 불이 활활 붙어 위험할뿐 아니라 연기가 나지 않아서 모깃불용으로 적당하지 않다. 오히려 물을 뿌려가며 태워야한다. 

잠깐동안 수북하던 풀이 없어지고 온 집안에 매캐한 연기가 감돌아 모기들이 한풀 꺾인다. 

친구의 친절한 숙제제시로 눈에 거슬리던 쓰레기도 처리하고 모깃불감도 마련하고 내가 좋아하는 방아도 키울 수 있어 도랑치고 잡은 가재가 몇 마리나 되엇다. 

노동의 댓가는 늘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들이 고된 육체노동을 견디는 힘인지 모른다. 가시적인 결과에 뿌듯하여 육체적 피로를 잊읗 것 같다. 


보름이 가까워지는 달빛이 매캐한 연기에 가려지고 일부러 던져넣은 박하 한줄기가 서서히 향을 내뿜기 시작한다. 활활 타는 불빛도 황홀하지만 꺼져가는 화톳블은 더 빛난다. ‘탁 탁 타닥’ 단단한 줄기가 뒤늦게 타는 소리가 의외로 맵다. 달구어진 열기를 안고 찬란하게 사그러지는 마지막 줄기의 불빛이 섬세하여 애잔하다. 개구리 소리도 잦아들었다. 나도 들어가야겠다. 


매인데 없이 사는 일이 어느 한 계절 어느 하루도 아름답지 않은 때가 없다.



 때뿌소 - 아궁이에 넣고 태워없애라는 뜻

방아 -  남부지방에서 즐겨먹는 향채로 보라색꽃이 핀다. 된장 추어탕에 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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