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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희숙 Aug 02. 2021

애벌레똥소리를 추억하며

똑 또르르르’

이명이 있을만큼 고요한 방 안에서 아주 이따금 작고 딱딱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신경을 모으다가 짐작을 할 수 없어 포기한다.

‘똑 또르르르르’ 한참 만에 다시 들린다. 어제 밤 이 시간쯤에 서너번 듣고 그리 큰 물체가 아닐 것 같아서 그냥 잤더니 오늘도 들린다. 


소리를 곰곰히 분석해보니 크기는 녹두알만하거나 조금 작을 듯하고 떨어지는 곳은 1미터 높이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두렵고 의아한 맘으로 소리가 나던 곳으로 돌아보니 이른 봄에 산수유 가지를 꽂아둔 나무 절구통이 있는 쪽이다. 언뜻 짚히는 생각이 있어 조심조심 다가가서 살펴보니 통통하게 살이 오른 벌레가 한 마리 붙어있다. 검지만한 연두색의 애벌레가 얼마나 실하던지 징그럽기도 하고 탐스럽기도 했다. 바닥에 쌀알 반쪽만한 너댓개의 검푸른 물체가 떨어져 있다. 그 소리는 예상대로 애벌레의 똥이 떨어지는 소리였던 것이다.


벌레가 몇 마리 더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정체를 알게 된 이상 계속 살펴볼 것도 없이 밖으로 들어내버렸다. 처음 들여놓았을 때 나무에는 잎이 거의 없었으니 어딘가에 알로 붙어 들어와 자랐던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몰랐지만 벌레는 낯선 환경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경계했을 걸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작년 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마당 한 귀퉁이에 겨울 찬거리로 씨를 뿌렸다가 다 못 먹고 남은 유채가 꽃이 피었다. 한아름 꺾어 방안 절구통에다 꽂아두었다. 어느 날 나비가 한 마리 방안에서 날아다녔다. 역시 짐작되는 바가 있어 조심조심 살펴보았다. 

한지창살 작은 칸에도, 침대 커버 자락에도 , 수 십마리의 번데기가 붙어있었다. 다양한 크기와 색상으로 번데기가 된 차례를 매길 수 있을 것처럼 구분이 되었다. 아직 덜 자란 번데기는 투명에 가까운 연녹색껍질로 애벌레가 보이고, 제법 자란 것은 갈색껍질, 곧 등껍질을 가르고 날아나올 번데기는 회갈색이었다. 살아있다고 믿어지지 않는 형태로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 후 한나절 동안 30여 마리의 나비가 우화하는 장면을 흥분으로 지켜보았다. 동영상을 찍을량으로 가까이서 지켜 서있으면 나비도 진행을 멈추고 가만히 있어 쉽지가 않았다. 곤충학자나 되는 것처럼 숨죽여 따라다녔다. 여섯 살 손자를 불러 그 신비한 장면을 같이 보고 싶었다. 나비가 한자리에서 가만히 있으면 스틸컷도 찍었다가, 움직이면 동영상도 찍었다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나비를 촬영하느라 흥분을 삼켰다.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는 금방 날아오르는 줄 알았더니 날개를 접은 채로 더디게 걷는다. 길게는 몇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나비는 우화가 끝나고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날개를 펼 수 있는 체액이 나온다. 이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이다. 잘못하여 떨어지면 날개가 펴지지 않고 그대로 굳어서 죽는다. 보기에도 초미의 집중력으로 조심하는 것 같았다. 나비는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 다시 나비로 세 번 탈바꿈을 하는 완전변태의 표본이다.

모든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은 극도로 예민하고도 고통스럽다. 산모를 도우는 산파처럼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황홀에 가까운 신비로운 순간을 훔쳐보면서 천기누설같은 죄책감도 있었다.


 밖에 내다버린 벌레는 어디론가 풀섶으로 다시 기어갔을 것이고, 언젠가는 나비가 되어 마당을 날고 있기를 꿈꾸면서 적막을 깨던 그 경쾌한 에벌레 똥소리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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