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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희숙 Aug 05. 2021

터무늬있는 미술관

경주 솔거 미술관

내가 경주에서 제일 자랑스러워하는 곳은 사실 솔거미술관이다.

생긴 지가 6년이 지났지만 경주사람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엑스포공원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눈에 띄지는 않지만 언덕위로 올라가보면 한적하고 운치있어 미술관을 품을만한 곳임을 알 수 있다.


미술관 건물을 지은 건축가는 지문(地紋, 터무늬)의 아름다움을 우선하는 승효상이다. '빈자의 미학'으로 알려진 그의 인문학적 사유가 담긴 건축물에 관심을 가졌던터라 미술관이 더욱 자랑스러워진다.


나는 시골 골목길과 오래된 누옥을 병적으로  좋아한다. 그 미스터리같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름의 결과는 공간과 시간에 사람의 개입이 적었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도구들이 없었을 때 삽, 괭이, 호미 등의 원시적 도구로는 땅의 원형을 크게 바꿀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원래 땅의 모습이 남고 거기에 시간이 오롯이 저장되어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이자 정겨움이라 여겼다.


건축장비가 대형화되고 전동화되어 터닦기 집짓기가 편리해지면서 자연지형을 허물고 평평하고 너른터를 만들어 큰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시골풍경은 조화를 잃어갔다. 건물은 자연을 무시하고 자연은 건물을 감싸주지 않는 부조화가 어디서나 시야를 거북하게 했다. 지문(地紋)이 훼손당하면서 시간도 인적도 허물어졌다.

 기초부터  터무니(地紋, 터무늬)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술관은  낮고 다소곳해서 자연에게 오만하지 않다.  땅에게 양해를 받고 살짝 심은 듯 도드라지지 않는다.터무니(地紋)가 살아있다.  언덕에 연이어 있던 작은 저수지는 건물에 유리벽을 만들어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런 배려로 신라시대에 천명의 군사가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아평지는 살아있는 그림이 되어 사시사철 포토스팟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솔거미술관은 소산 박대성선생을 위한 전용미술관으로 지어진 경북공립미술관이다.

그는 세상의 소리에 묵묵하게 보인다. 6.25, 다섯 살 그때 바깥소리에 귀닫았는지 모른다. 부모를 데려간 하늘이 무너진 총성과 왼팔을 잃은 괴로운 놀림 소리에 세상을 닫고 예술세계로 들어갔는지 모른다.  그의 그림처럼 장부같은 기골이 한 그루 낙락장송같은 모습이다. 북풍한설에도 의연할 평온과 강건함이 있다, 그의 그림이 압도하는 바로 그 기운이다.


그의 그림은 대체로 대작이다. 가로 세로 10미터가 넘는 크기의 화폭에 먹으로 그린 수묵화가 주는 여백과 힘은 압도적이다. 그림 앞에 서면 갑자기 현기증이 나도록 무력해지는 이유이다.

눈이 하얗게 쌓인 불국사의 설경도 먹으로만 그렸다.  붓으로 1도 그리지않은 흰눈이 사진처럼 사실적이다. 화강암 돌담에 얹힌 눈송이들이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봐도 만져질 듯 폭삭하다. 먹붓질을 세심하게 비켜가며 그린 그리지않은 그림이다. 검은색의 역설로 흰색을 그린 것이다. 그야말로 여백(餘白)이다.

먹이 그리지않은  '구룡폭포' 역시 쏟아지는 흰물줄기의 우뢰같은 소리가 들린다.

'일묵다색’ 먹은 모든 색이란 그의 말에 설악산추경이 울긋불긋  불붙는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장 뒷배경에 걸린 ‘장백폭포’ 그림이 소산선생의 작품이라고하니 잠시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터무니있는 미술관 언덕은 바구니에 담아온 간식을  늘어놓고 한나절을 뒹굴어도 아무도 간섭할 사람이 없다. 잔디밭 정자를 건너가는 바람을 독점하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이나 작가를 몰라도 바람에 그네를 타는 수양버들가지와 맞그네를 타거나, 억새숲 원두막 그늘에 앉아 떠가는 구름을 손짓하여 부를 수 있으면 이미 예술가의 마음인 것이다. 


미술관 언덕 벚나무숲에는 어젯밤에도 수백 마리의 매미가 허물을 벗어두고  날아갔을 것이다

햇매미들의 요란한 여름 찬미가 귀에 쟁쟁하다. 오늘은 불볕에도 올라가봐야겠다


경주에는 터무니 있는 솔거 미술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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