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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희숙 Aug 06. 2021

꽃다즐 모가불

- 꽃은 다 함께 즐겨야 합니다. 모종을 가져가면 불법입니다 -

첨성대 주변 광장에 울긋불긋 꽃이 피었다. 자동차로 지나다니며 흘깃거릴 뿐 별 관심이 없다. 

첨성대 일원 꽃밭은 일 년에 몇 차례씩 꽃을 바꾸어 심는다. 갖가지 여름꽃이 전시장처럼 다양하게 피어있디. 특별한 의도가 없다면 몇 가지 종류를 군락으로 미니멀하게 구성했으면 더 세련되어 보이겠다.  다소 산만하다. 


건너편 계림숲을 걸을 셈으로 꽃밭을 통과한다. 

가운데쯤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꽃모종 무단채취 불법 고발조치” 흰색 바탕에 붉은 글씨로 써져있다. 첫눈에 거슬린다. 아직도 저런 고압적인 행정편의의 문구를 쓰다니! 

계림 쪽으로 걸어가면서 나와 상관없는데 기분이 왜 나빠지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일단 아무런 사심이 없는 다수가 불신을 받는다는데 불쾌감이 닿아있는 것 같다. 극소수의 몰지각한 시민이 있어 경고는 필요했겠지만 저렇게 무지막지한 협박성 한자어를 아직도 쓰다니!  저런 위압적인 문장은 흔히 일제의 잔재라고 말한다. 한국인들에게 부정적 자아를 갖게 하는 일본의 정신적 식민정책이었다. 한국인의 자존감을 약화시키려는 술책으로 저런 부정적 어감을 바탕으로한 문구들이 많았다. 어려운 한자어가 가진 권위를 은근히 이용하면서. 


최근에는 언어순화에 대한 새로운 시도들이 활발해지고 많이 좋아졌다. 행정당국이 부드럽고 쉬운 문장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시청 홈페이지에 건의를 할까 하다가 ‘어떻게 고치는 것이 좋을까?’ 대안을 찾는다. 

안물 안궁, 누가 물어보지도 않는데 혼자 궁리를 한다. 


“모두를 위한 꽃밭입니다. 모종을 가져가지 마십시오” - 관리공단

“꽃모종을 몰래 가져가면 부끄러워요”  - 경주 사람들 

“친구들과 함께 여기서 살래요” -  꽃모종

특별히 맘에 드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산책을 하는 내내 생각해본다.

요즘 많이 쓰는 줄임말을 써보면 시선을 끌고 재미있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두세 단어를 앞글자만 따서 만든 은어가 일상어가 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말이 생겨나서 의사소통이 어렵다. 일일이 묻기에도 대화의 맥이 끊겨 민망하다. 이미 통용어가 된 줄임말도 많다.

취준생 남친 여친 소확행 강추 혼밥 심쿵 맛점...처럼 누구나 알고 쓰는 단어는 사전에도 등재된다.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생선 순삭 안물안궁 갑분싸 낄끼빠빠 빼박캔트 먹튀 워라벨 등은 쓰는 사람이 많다. 재밌는 일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통용되는 말이 다르다. 유쳔(유치원) 샵지 (시아버지) 조동(산후 조리원 동기)  키카(키즈카페) 엔젤계수(육아에 드는 비용) 얼집 (어린이집) 등은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재밌기도 하고 우려가 되기도 한다. 생각을 싫어하는 젊은 세대들이 사고만 아니라 언어까지 줄여 감각적으로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속도를 원한다. 지리멸렬을 매우 싫어하는 증거다. 

이렇게 세상은 변해가는데 행정은 걸음이 느려 속도를 못 맞춘다.

'출입금지' '절대 엄금' '통제구역' '고발조치' '엄벌' '불법'...이런 언어는 보기만해도 맘이 불편해진다, 한자어는 짧아서 쓰기 좋을지 몰라도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다.


그래서 고쳐본 것이 “꽃다즐모가불‘ (은 함께 겨야합니다. 종을 져가면 법입니다) 

신조어를 만들어보았다. 혼자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시청에 건의를 해보겠다는 의지는 점점 허약해가지만 시류를 타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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