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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Apr 26. 2022

행복을 살 수 있는 곳 - 힐즈가든


나는 꽃을 좋아했다. 꽃을 사기 위해서 KTX를 타고 세 시간쯤은, 아름다운 꽃을 사기 위해서 그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꽃을 좋아한다. 자신의 것은 무엇 하나 좋은 것을 들이지 않는 엄마의 꽃 취향은 사치스럽다. 부드러운 컬러의 흐드러지는 꽃은 엄마의 유일한 사치품목이었다. 내 생에 처음 번 돈으로 할아버지에게 벨트를, 할머니에게는 가방을, 엄마에게는 연한 핑크색 장미 300송이를 선물했었다. 지금까지 어디서도 그날만큼 아름다운 꽃다발을 보지 못했다. 꽃에는 늘 관심이 많았지만 식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선은 벌레를 너무나 무서워하고, 견딜 수 없이 공포스러워하기 때문에 화분을 들이면 어쩔 수 없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작은 생명체들에 대한 관대함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관심도 없었거니와 들일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 예쁜 입구의 식물 가게를 발견했다. 나는 괴팍하고 맹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게으르지만 여유롭지 못하고, 털털하지만 관대하지 못하다. 보통 지나다니며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이 드물다. 이상하게 그날은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관심도 없는 식물 집에, 평소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가게였다.

아름다운 식물이 가득한 힐즈가든


힐즈가든은 해운대 중동 메트로 하이츠 상가에 위치한 식물 가게이다. 젊은 부부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으로 가녀린 여자 사장님과 키가 크고 묵묵하신 남자 사장님이 그림처럼 꼭 닮아있다. 하얀 가게 외관의 둥근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면 잘 정돈된 공간에 그들을 선택한 사람의 취향과 분위기를 닮아 조용하고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다. 날이 좋은 날은 가게 앞에 다양한 식물들이 햇볕을 쬐고 있는데 밖에서 구경만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풍경이다. 다양한 식물들이 어쩜 그리도 딱 어울리는 화분에 심어져있는지, 수형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벌레고, 생명체고, 식물에 문외한이고를 모두 잊고 홀린 듯이 내 손에 들려져 나왔다. 취향의 대척점에 있던 무언가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전문가의 염력이 얼마나 대단해야 하는가. 풀에는 일절 관심도 없던 나의 집은 힐즈가든의 식물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염력은 물체에 손을 대지 아니하고 그 물체의 위치를 옮기는 힘 따위로 나와있다. 참으로 절묘하다.)


식물을 구매하면 식물의 이름과 보살피는 방법을 정성스럽게 써 주신다

힐즈가든의 식물의 매력은 어디에나 있을법한 흔한 식물이 마치 상표가 붙은 마냥 브랜드화되어 보인다는 것이다. 힐즈가든을 방문하면 모든 식물들이 제각각의 개성을 뽐내지만 고심해서 고르셨을 분위기 있는 수형의 식물들이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할 화분과 절묘하게 어울려 희한하게도 고무나무는 고무나무, 올리브는 올리브,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힐즈가든의 고무나무, 힐즈가든의 올리브로 보인다. 아마도 그 이유는 식물을 선택할 때, 그리고 그 식물을 식재할 때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구경하다 보면 휴무일은 농장에 가 계시는 때가 많고 빠르게 공장처럼 식물들이 심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식재하신 후 잘 적응하는지 확인 단계를 거쳐 내게 전해진다. 구매한 식물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검색해 보면 유독 내가 가져온 식물의 수형이 예뻐 보이고 간혹 같은 식물인지도 모르게 다르게 보일 때도 많다. 물론 내 것이 되었기 때문에 애착이 있어서도 있겠지만 같은 종류의 나무라도 그 생김새가 천차만별이라 그 식물이 내는 분위기 또한 다르다. 힐즈가든의 식물을 구매하면 그 식물을 보살피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해 보는데 같은 종류의 식물인지 알아보기 힘든 적도 많았다. 힐즈가든 에서는 식물 고유의 매력이 잘 살아있으면서도 브랜드로서 추구하는 방향성이 느껴지고 집안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살아있는 오브제가 되어줄 식물을 구입할 수 있다. 식물들은 한국에서, 특히 부산에서는 정말 보기 힘들게 가게의 시그니처 컬러의 티슈페이퍼로 곱게 포장되어 식물의 이름과 보살피는 방법이 쓰인 택과 함께 아이보리 빛의 봉투에 예쁘게 담겨 나온다. 아무리 가게가 바빠도 포장을 하는 사장님의 손길에는 정성이 가득하고 선물을 받는 듯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오면 새 식구가 생기는 것이다.힐즈가든 식물들은 정적이고 아름답다. 여성스러운 선이 살아있는 식물들은 공간의 분위기를 더해 줄 것이다. 식물의 분위기는 물론 포장에도 정성이 가득하니 선물하기에도 그만이다. 

제일 먼저 우리 집으로 온 켄트마이조. 그다음 날 둘이 더 왔고 그다음 또 하나가 연달아 왔다


자전거로 데려온 미니 황칠나무와 피쉬본

식물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절대로 과습을 하지 말고, 절대로 통풍을 소홀히 하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없이 식물을 키울 수 있다. 그렇게 겁을 내고 수백 번의 질문(돌이켜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다. 뭐라고 생각하셨을까.. 벌레 백 마리도 때려잡을 덩치인데 말이다.)에도 친절히 안내해 주신 덕분에 큰 두려움 없이 식물을 들였고 집 1,2층을 식물로 가득 채우면서도 한 여름이나, 한 겨울에도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네이버에서 수분 측정계를 하나 구입했고, 부지런히 살펴 물을 주어야 할 때를 체크해서 주었고 물 주기는 정해놓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은 환기를 꼭 시켰고 공기청정기도 잘 틀어주었다. 따로 서큘레이터는 주변에 틀어주지 않았는데 자연 환기가 가장 좋은 것 같다. 봄이 오면 열흘에 한번 물을 주어도 끄떡없던 식물들이 2,3일 만에 바짝 말라있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물을 잘 주고 바람을 잘 맞게 해 주면 귀여운 새싹이 여기저기서 올라온다. 한 가지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식물은 물건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라 내가 구매할 때의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쑥쑥 크는 것도 있으니 그것에 대한 인지는 있어야 한다. 예쁘게 잘 자라준 아이비는 물꽂이를 해 두었는데 참 마음에 든다. 집안 곳곳에 식물을 두었는데 아직도 늘 새로운 식물을 들이고 싶다. 계절마다 아름다운 식물이 가득해 경계를 풀 새가 없으니 큰일이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송 오브 인디아, 조용하고 무던한 참 순한 식물이다
버려둔 공간을 살려준 힐즈가든의 아이비
엄마에게 선물한 보라싸리, 선이 아름답다
선반에 분위기를 더해준 빈카, 너무 잘 자라 키가 180이 넘어버렸다
가장 최근에 집으로 온 아스파라거스 메이리

작년 아주 우연히(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첫 자전거를 사주었다. 내 키가 자랄 때마다 할아버지는 네 발 자전거를 세발자전거로, 세발자전거를 두발자전거로 바꿔주었다. 내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처음 두발자전거를 탈 때 할아버지는 경비실 옆 의자에 앉아 자전거를 타는 나를 바라보았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전거 뒤에서 나를 잡아주고 내가 마침내 스스로 넘어지지 않을 때 멀리서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어주는, 그런 기억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내게 그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 흔한 뽀뽀 한번, 소리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새벽에 일어나 아침 등산을 하고 아침이면 병원으로 출근을 하고, 7시 전에 퇴근해 거실 가장 왼쪽 1인용 소파에서 앉아 tv를 보다 9시면 내게 인사하고 잠에 들었다. 금요일은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할아버지의 스테이크를 빼앗아 먹고, 토요일은 할아버지와 둘이서 아침 일찍 설렁탕을, 일요일은 복국을 먹으러 갔다. 퇴직 이후에는 피아노를 치는 엄마의 손이 건반을 위한 것이 되도록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우리 집에 와 분리수거를 하고 우리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필요한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채워주는 것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내게 의심할 필요가 없는, 그 어떤 의문도 들지 않는 유일한 '예측 가능한 어른' 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기분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없었고 내가 어른의 기분을 파악해서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절대로 나를 재단하거나 비난하거나 혼자 두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돌보고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거둔 날 나는 이 세상에 공짜란 없음을 처절하게 느꼈다. 그동안 노력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부질없었다. 나는 어디서나 보기 드문 좋은 손녀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받은 사랑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공짜인 줄 알고 받은 사랑이 칼보다 날카로워 베인 상처가 가득한 것처럼 긴 시간 동안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차가운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싶어 했던 할아버지에게 폐렴이 올까 결국 끝까지 우유 한 팩을 사주지 못했던 날 나는 병원 비상계단에서 목이 끊어져라 울었다. 아직도 나는 벚꽃이 피는 계절이 힘들다. 할아버지가 나를 데려다준 등굣길에 가득했던 벚꽃이 피어있는 모습에는 할아버지가 남아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봄에 더 이상 거동이 불가능해진 할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벚꽃 구경을 했다. 마지막일까 봐 두려워서 할아버지를 데리고 나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까 봐 엄마에게 말을 하기도, 할아버지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도 괴로웠다. 차 안에서 할아버지의 뒷자리에서 나는 쓸쓸하다는 것이 그렇게 쓴맛인지 처음 깨달았다. 모든 생활이 무너지고 닫혀있던 마음을 더 닫고 기계처럼 일만 하면서 지냈다. 나이가 들면서 겪어야 하는 일들은 생각보다 너무 처절했다.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미성숙하고 예민했던 나는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슬픔을 꾹꾹 누르고 지냈다. 다시 자전거를 타는 일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몸의 기억은 내 머리보다 나았다. 금방 다시 자전거가 익숙해졌고 피부에 닿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내가 실실 웃고 있었고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온 팔에 시계 자국과 장갑 자국을 남긴 봄의 한 가운데 힐즈 가든에서 첫 화분을 들였다. 식물은 조용하고 따뜻하다. 물을 주고 보살펴주면 건강한 새 잎을 내고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다. 스무 개가 넘는 알람을 겨우 끄고 좀비처럼 일어나 화분에 수분 측정계를 꾹꾹 꽂아보면서 물이 필요한 화분들을 샤워시켜주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문을 활짝 열고 햇빛을 받게 한다. 죽어있던 공간에 생명이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위로가 된다. 여전히 꽃도 좋아한다. 가장 화려하게 아름다운 순간을 빛내주는 꽃도 좋지만 이제는 조금 더 내 곁에 머무르는 식물이 더 좋다. 자전거를 타고,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취미가 무엇인지, 취미라는 것이 한 사람이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취미를 가진다는 것,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걸치고 누리는 것과는 다른 충만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우리 집을 가득 채운 힐즈가든의 식물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가 준 애정과 관심에 보답하듯 계절이 바뀌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나를 위로해 준다. 힐즈가든에 놀러 갔다가 사장님께서 벚꽃 가지 하나를 선물해 주셨다. 벚꽃이 피기 전부터 차갑고 뜨겁게 아프던 내 마음이 올해 봄에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주말 오후 난장판이 된 테이블과 통풍 중이었던 식물들 가운데 우리 집의 센터피스 송오브자메카, 식물과 함께하는 집은 외롭지 않다.


포스팅에 올릴 사진을 고심하고, 또 고심했지만 단 몇 장의 사진으로 소개하기 아까운 곳 이라

식물이 주는 행복을 느껴보고 싶은 모든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힐즈가든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순환로8번길 78 메트로하이츠 상가 12호

매주 월요일 휴무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100mzzang

http://www.instagram.com/hillsgarde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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