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 파울 루벤스
바야흐로 일타강사의 세상이다.
인강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들을 이제는 예능과 뉴스에서도 만날 수 있다.
첫째(중1)의 첫 시험이 끝나고 얼마지 않은 어느 날,
같이 병원에 가는 차 안에서 유*브 알고리즘이 재생해 준 영상을 듣다가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나도 한때 56점
아니, 저 숫자가 왜 저기에!
공교롭게도 그것은 우리 집 첫째의 첫 수학 성적이었고, 일타강사의 그 한 때는 하필 중1 시절이던 것이다.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여기저기에 속보처럼 소식을 전달하던 아이지만, 본인에게도 매우 놀라운 점수이긴 했던 것 같다.
탕탕!
정신 차려!
이게 지금 너의 등급이야!!
인정머리 없는 두 자리 숫자가 가차 없이 아이의 현실을 선고했지만, 다행히도 미래는 아직 모를 일이라고 유예를 받은 셈이다.
사춘기 아이에게 엄마의 섣부른 조언만큼 별로인 게 없을 텐데,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알고리즘과 일타강사의 수줍은 고백 덕분에 함께 마음 놓고 크게 웃었다.
중학교에 가서 훌륭한 수학 선생님을 만나 학교 공부에 충실했던 아이의 56점에 대해 잠시 해명(?)을 해야겠다.
아직 사교육 없이 가.볍.게. 공부하고 있는지라 점수가 그리 황망스럽지는 않았지만, 다만 신기했던 건 이번 시험기간을 통틀어 제일 재밌어했던 공부가 수학이었다는 점이다.
평소엔 참으로 공사다망한 아이인데 수학 문제를 풀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했었고, 고민하고 생각해서 정답이 딱 들어맞을 때는 희열마저 느끼던 아이였다.
하지만 실전에서 풀어야 하는 수학 시험은 매우 다른 종류의 기술을 필요로 했다.
정해진 시간에 유형에 맞는 풀이 방법을 빨리 떠올려 틀리지 않게 푸는 기술.
56점.
잘못된 공부방법은 아니었을지언정,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효율적인 공부 방법이 필요한 지점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숫자였다.
그래도 “앞으로 네 수학 성적은 오를 일 밖에 없어서 좋겠다.”는 농담에 히죽거릴 정도로 주눅은 들지 않아서 다행이다.
숫자는 그리 많은 것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돈으로 경험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자본주의 시대라지만, 공부만큼은 등산처럼 누구나 공평하게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야만 이룰 수 있는 성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질 좋은 등산화와 스틱, 훌륭한 페이스 메이커를 옆에 두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탄탄대로를 달려 목적지까지 안착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예술계에서는 생전에 성공을 이룬 화가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화가들의 세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일타강사 같은 화가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파울루 루벤스.
그는 모든 것을 가진 화가였다.
언변과 외국어에 능통했고, 사업적 수완이 뛰어났으며, 그림실력까지 탁월했다. 화가를 하면서 외교관을 겸직했으며 가정까지 다복했다.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그는 철저히 분업화된 그림 공방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림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그의 그림은 더욱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그는 매우 정직하게도 중요한 작품들은 직접 그렸고, 분업 정도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받았다고 한다.)
만화영화 <플란더스의 개>에서 네로가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어 하던 그림이 바로 루벤스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성당의 커튼 뒤에 감춰져 있어 금화 한 닢이 있어야만 볼 수 있었다. 가난한 네로에게는 그야말로 평생 동경의 대상, 허락되지 않는 금단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네로가 죽기 직전, 성당을 지키는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드디어 이 그림을 영접하게 된다.
내려오는 하나님과 하늘로 올라가는 네로의 모습이 눈부시게 대비되던 만화 속 한 장면.
루벤스가 탁월한 화가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네로의 간절함과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동경이
루벤스의 작품을 최고로 만든 게 아닐까?
루브르에 있는 그의 <마리 드 메디치 연작>을 보면, 재능 있는 화가가 한 명의 권력자를 위해 얼마나 화려한 거짓말을 연출할 수 있는지 놀라곤 한다.
(훗날 마리 여왕은 궁에서 쫓겨나고, 그림만 남았다.)
사업천재 루벤스마저 지금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을 목도했다면 그 놀라운 분업화에 입을 다물지 못했을 거다.
국어만 해도 내신준비학원은 기본이고 문해력 학원, 비문학 학원, 논술 학원, 독서 토의토론 학원, 수능 대비 학원까지… 왠지 모르게 꼭 필요할 것만 같은 학원들이 줄을 서 있다.
이 엄청난 사교육 시장에서 누가 일타강사를 만드는지, 누가 더 탁월한지를 따지다 보면 아마 날밤을 세워도 정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아이가 좋은 선생님을 찾아 헤매는 ‘소비자’가 되기 전에, 좋은 선생님을 구매하고 싶을 정도의 ’간절함‘이 먼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네로를 생각하니 ‘간절함’이란 표현은 과한 것 같다.
그냥 ‘뭔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두자.
어쨌든 그런 마음의 학생이라면, 어떤 선생님을 만나도 나름의 이유로 일타강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때 56점의 그 일타강사는 인성마저 훌륭한 사람이었다..
“저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아니라 생선님이라고 하라고 해요. 진짜 선생님은 수학여행 못 가는 아이 걱정하고,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선생님들이죠.”
돈 받은 만큼 성적 올려주는 본인은 선생님이라 불릴 자격이 없으니 생선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아… 순간 뜨거워지는 가슴. 그러나 그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교사들의 지갑.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에게서 “우리 학교 선생님이 참 좋아!”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감사한 것이다.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생선님보다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
충분히 배움에 열정을 쏟고
집에 돌아와서는
마음 놓고 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점점 교육계의 과대망상증 환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