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은 Feb 12. 2024

웃음의 미학

프란츠 할스와 렘브란트

세상에는 웃음을 표현하는 수많은 낱말들이 존재한다.

"미소, 박장대소, 헛웃음, 비웃음..."

" 하하, 호호, 히히, 깔깔, 큭큭, 까르르..."


말이 아닌 이미지로 표현된 웃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sns에서는 하루에도 수백만 장의 웃는 사진들이 업로드된다.


하지만 미술사에서 웃음을 그린 회화 작품을 만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 웃음을 캔버스에 옮겨 그리려면 작가는 찰나의 표정 중 의미를 부여할만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포착하여 그것을 솜씨 좋은 손으로 재빨리 그려내야만 했다.


천부적 감각과 뛰어난 손재주, 둘 다를 가져야만 그릴 수 있었던 ‘웃는 그림'은 그래서인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미술사 서적 중에는 베개로 사용하기 딱 좋은 유명한 벽돌책이 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가 등장하게 전까지는 완독을 향해 가는 여정에 영 속도가 나질 않는다.

엄.근.진 그림들의 향연과 곰브리치의 흥분과 나의 하품이 계속되던 중

“와! 드디어 사람이 웃었다! “

박수칠 뻔한 그림이 있었다.


프란츠 할스, 피터 반 덴 브루케 초상(1633년 경)


지금 따라 해도 촌스럽지 않을 자연스러운 자세와 웃는 표정, 불과 17세기에 빛나는 웃음을 화폭에 담은 천재 작가의 이름은 프란츠 할스(1580~1666)

솔직히 말하자면 작가가 내뿜는 치명적인 매력에 매우 사적인 호기심이 생겼다. (난생처음 화가 덕질을 시작했음을 부끄럽게 밝히는 바이나, 네덜란드 여행을 꿈꾸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음.)


그가 그린 또 다른 웃음을 보자.  


프란츠 할스 <Le Cavalier riant> (1624년)

젊고 잘생긴 한 남자가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다. 살짝 올라간 콧수염과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선, 그의 거만함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그의 천재적인 능력은 특히 의뢰받지 않은 초상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거리의 사람들을 그릴 때는 밑그림도 없이 슥슥 이미지를 그려냈다. 그의 일필휘지에 담긴 술집 여인의 미소에는 자본주의스러운 친절함과 집시 여인의 순박함이 동시에 들어있는 듯 오묘하다.

프란스 할스 <집시 여인> (1628-30)


프란츠 할스가 그린 웃음과 비슷한, 그러나 조금 더 시건방진 포즈로 웃고 있는 남자가 여기 있다.

 

작품 속 호탕하게 웃고 있는 돌아온 탕아는 젊은 시절 렘브란트 (1606~1669)의 모습이다.


프란츠 할스와 렘브란트, 비슷한 것은 네덜란드라는 국적과 두 사람이 그린 웃음뿐만이 아니었다.

전재산을 탕진하고 가진 것 없이 그림만 그리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말년의 운명도 두 사람은 닮아있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가 승승장구했던 초기 작품임을 감안해 보면,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아찔한 웃음이다.




# 세상에는 이보다 더 가벼운 웃음도 있다.


이순구 작가가 그린 유명한 그림 <웃는 얼굴>을 보자. (저작권 문제로 그림은 싣지 못했습니다.)


이순구의 <웃는 얼굴> 출처 YES24


모든 것을 무장해제시키는 웃음, 해가 없어도 온 세상을 환하게 만들 것 같은 '해맑은' 웃음.

이순구 작가는 4살 즈음의 아이를 닮은 웃음을 그렸다.


자기 그림자가 웃겨서 깔깔깔

욕조에서 몸을 꿀렁대면 물이 출렁거려서 깔깔깔

목욕이 끝나고 쭈글쭈글해진 손을 보며 또 한 번 깔깔거렸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나도 깔깔깔

엄마 얼굴을 보며 아이는 다시 깔깔깔


목젖과 하얀 젖니를 다 드러낸 아이의 얼굴이 달처럼 환했다.


아이가 커가는 한 장면마다 그 시절을 닮은 아이의 웃음이 있다.

웃는 표정이 어색해지다가 그마저 사라지는 즈음이 사춘기의 시작이었고 말이다.


굳이 미술사에 빗대보자면 아이의 사춘기는 중세를 닮았다.

어둡고 경직되고,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을 갈망하는 그림들.

아이에게 농담이라도 건넬라치면 자칫 이상한 벌레 보듯 되돌아오는 비웃음.  

오, 할렐루야!!


그.때 더 많이 웃을걸!

어린아이 앞에서 별일도 아닌 일에 괜히 엄격했던 내 표정을 떠올리면 간질간질이라도 해주고픈 심정이다.






#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웃음도 있다. 


렘브란트는 꾸준히 자신의 자화상을 기록해 두었다. 덕분에 우리는 위대한 화가의 말년의 모습까지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렘브란트 자화상 (1669년)

지지직!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머릿속에 지진이 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고, 이상하게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모든 것을 잃은, 죽음을 목전에 둔 노장의 화가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가 너무 흐릿하고 처연하다.


장 주네는 <렘브란트>라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 혐오감과
그것을 상실하게 될 것임을
알아버린 자의
(후련함보다는) 약간의 슬픔…


눈물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중, 운명처럼 이 그림이 제 발로 한국땅을 찾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영국내셔널갤러리 전]

실제로 만난 그림에는 훨씬 더 많은 표정들이 담겨 있었다.


오른쪽에서 보니 슬프고,
정면에서 보니 너그럽고,
왼쪽에서 보니 아련한 표정.

눈물이 맺힌 듯한 눈가와
흰점 하나 콕 찍힌 눈동자,
꼭 부여잡은 두 손과 얼굴 외에는
모든 것이 사라져 보였다.


전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는 그림 앞에서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웃음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그런 웃음이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백제 6-7세기 경)


복잡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듯한 부처의 편안한 미소.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변하지 않는 부처의 미소와 사유의 방을 가득 채운 우주의 별들 속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마침내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고, 그걸로 충분했다.


무게 없는 인생을  
나는 얼마나 많이
손으로 달아보았던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비석에
피카소와 마티스가 적어준 묘비의 글 중

 



웃음의 의미를 찾아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문득 몇 년 전 막둥이(6살)와 나누었던 대화 한토막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터널을 타고 집에 돌아오던 차 안이었다.

코너를 돌자마자 길이 갑자기 두 갈래로 갈라지는 탓에, 길을 잘못 들어 같은 터널을 몇 번이나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아니 엄마, 우리 왜 또 여기지? 하하하"

뫼비우스의 띠 같은 터널 속에서 우리는 배꼽을 잡으며 깔깔 웃었다.


그 일이 있고 한참 지난 어느 날, 아빠가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 00야, 지난번에 엄마가 터널에서 어떻게 했어?

막둥: 어.. 엄마가 예뻤어.

아빠: 응??

막둥: 아~ 엄마가 산성터널에서 많이 웃어가지고 예뻤어.


지지직!

그때도 머릿속에서 지진이 났었다.


막둥이 머리에 남아있는 장면은 꼬불꼬불한 터널도, 실패의 기억도 아닌, 웃는 얼굴이었다. 막둥이에게 일필휘지의 재능이 있었다면 프란츠 할스 못지않은 명작이 탄생했을지도.


앙리마티스도 다른 듯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앙리마티스, 모자 쓴 여인 (1905)

“그녀가 어떤 색의 모자를 썼는지, 옷과 부채는 어떤 샥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오직 흥분되고, 설레고, 사랑이 넘치는 ‘감정의 색’만 남아 있었을 뿐 ” -앙리마티스-



어쩌면 우리 인간의 삶은
여러 가지 색깔의 웃음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지는
하나의 예술작품이 아닐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웃음일 테니.


중요한 삶의 순간마다 사진기를 꺼낼 수도, 붓을 들 수도 없는 우리들에게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웃음을 그려준 화가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웃을 수 있는 일들은 끊임없이 생긴다는 게 그보다 더 큰 축복일지 모르고 말이다.


이전 09화 일타강사의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