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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은 Feb 26. 2024

휴대폰과의 전쟁

백남준

82년생 김지영과 나, 마흔과 쉰 언저리의 엄마들에겐 한 때 남편보다 끈끈한 전우애를 함께 한 사이버 육아 동지들이 있었다.

모유수유, 수면교육, 이유식... 시기별로 난관이 닥칠 때마다 우리는 주변 어른들보다 각종 블로그와 카페에서 조언을 구하고 외로움을 달래고 시행착오를 함께 해 왔다.

이유식 고민이 끝나자 곧 학원 정보 커뮤니티로의 대이동과 함께 카오스가 시작되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미디어 세상에서 의기투합하여 육아를 헤쳐나간 첫 세대이다.

 

하지만 유독 아이의 휴대폰 사용 문제만큼은 여전히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허용한 휴대폰 사용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현재 진행형으로 겪어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 휴대폰은 단박에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는 기특한 기기였을 뿐이다. 점점 아이는 스스로 관심 가는 동영상을 눌러보는 재미를 알기 시작했다. 한 번씩 깜짝 놀랄 동영상들이 튀어나와 당황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미디어 노출은 연구대상이 되고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기업에서는 부랴부랴 각종 키즈 전용 어플들을 만들어냈다. 휴대폰 사용시간을 부모의 폰으로 제어하는 어플도 그쯤 등장했던 것 같다.


일단 발을 들이게 해 놓고 문제가 생기면 땜질하듯 하나씩 대책을 내어놓는 거대 기업들의 '사후약방문' 꼼수를 깨닫게 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흡연자의 질병이 담배 회사의 사회적 책임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휴대폰은 1학년만 되어도 거의 모든 아이들 손에 하나씩 들려있는 기기이다.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는 세상에 아이들을 던져두어서는 안 되었다.


아이들이 걸린 문제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


뒤늦게 "유해한 휴대폰 환경으로부터 내 아이를 지켜는 각종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이미 두 손에 쥐어준 기기 속에서 무한한 세상을 경험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각종 잠금장치를 뚫어버리는 방법쯤은 너무나 손쉬운 정보였다. 눈만 돌리면 친구의 휴대폰을 할 수도 있다.


실은 나조차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위험한 구역인지조차 알지 못했고, 휴대폰에서 취미 생활을 만들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아이를 막을 이유와 명분조차 없어 보였다.


'전쟁'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10년이었다.

이 괴물 같은 문명의 기기는 제대로 된 제도적 보호 장치도 없이, 아이가 성장한 10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조지오웰이 1948년에 발표한 소설 <1984>은 미디어 기기를 통해 인간의 생각 깊숙한 곳까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이다.


생각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고, 의문을 갖지 않고, 시키는 일만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세계.

항시 전쟁을 준비하는 마음이야말로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라 역설하는 그곳의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빅브라더 당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일종의 화상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주인공 윈스턴은 이 모든 것을 당연시하며 살아가는 당원들 중 한 명이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어린 시절의 한 사건을 떠올리게 되고, 자신에 대한 ‘혐오와 모멸감’이라는 전에 없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빅브라더의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지만, 그의 내면의 평화는 깨져버린다. 더 이상 그의 삶은 전과 같을 수 없었다.

그는 일탈을 꿈꾸고, 사랑을 꿈꾼다. 전쟁 같은 삶과 의미를 묻는 삶 모두를 선택한 윈스턴, 그는 결국 당국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게 된다.


빅브라더를 떠올리게 하는 고문관은 놀랍게도 평소 알고 지내던 오브라이언이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간에 일단 그것을 들어주고, 잘못된 생각을 파헤치고, 스스로를 책망하게 하고, 결국 존재 자체에 고통을 준다.

“당신의 생각은 잘못되었다!”

놀랍게도 윈스턴은 이런 오브라이언에게 점점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윈스턴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음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였다.


처참하게  존재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무언가를 갈구하는 한 인간의 메아리조차 없는 비명, 온 세상을 진동시키는 그 소리 없는 비명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두 가지 질문을 사유하게 한다.


나약하고, 흔들리고, 배신하는
인간성을 믿기보다는
모든 실패의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는(=당을 믿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인간이 방황한다는 것,
지루함과 모멸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희망을 꿈꾼다는 것,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 <1984> 속 세상이 현실이 될 것만 같아 뒷덜미가 서늘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다가온 1984년 1월 1일, 텔레비전으로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당돌한 작가가 (이미 작고한) 조지오웰에게 희망찬 안부인사를 건넸다.


헤이! 이봐! 조지오웰!
우리 인간들은  아직 지구에서 잘 살고 있다네!
미디어에서는
이렇게 신나고 즐거운 일도 일어난다구!!


인공위성 생중계로 무려 전 세계 2500만 명이 이 작품을 시청했다.


이 놀라운 발상을 생각해 낸 작가는, 그 이름도 유명한 백남준이다.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오웰> (1984)  

(실제 영상 작품과 지식백과  참고)



90년대 아이들도 (텔레비전 시청시간이 부모님들의 주된 관리 대상이긴 했지만) 여전히 빅브라더에게 점령당하지는 않았다.


TV유치원 뽀뽀뽀를 시작으로, 일본 명작 애니메이션들과 일요일 아침의 디즈니 만화들도 아이들을 텔레비전 앞에 붙잡아 두긴 했었다.

영원히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바람과는 달리 방영시간은 끝나기 마련이었고, 어린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부모님께 리모컨을 내주어야 하는 미덕도 함께 배웠다.

텔레비전은 가족과 공유하는 물건이었고, 나가면 언제든 함께 놀 친구가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로부터 또다시 40년.

2024년 휴대폰 속 SNS와 각종 미디어들의 세상에는 더 강력한 빅브라더가 존재한다.

아이들은 유행하는 Shorts의 미션들을 임무인양 따라 하고,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다이어트를 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재미를 떠먹여 주는 영상을 보는 취미생활을 즐긴다.  

보고 또 봐도 방영 종료 시간은 없다.


하지만 미디어 속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신나고 의미 있고 새로운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미디어는 소중하고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그 어떤 수단보다 빠르게 전파하고 나눌 수 있으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디어는 인간이 가진 모순된 속성 그대로를 닮아 있다.


인간만이 지닌 상상과 소통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탄생한 기기들이, 인간들을 더 이상 상상하지 않게 만든다.


세계도 점점 양극화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한 개인의 영향력은 점점 어마어마해지고, 그것을 끝없이 소비하고 조종하는 대로 생각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세계가 극명하게 나뉘어 가는 듯하다.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잘 사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근본적인 목표라고 믿고 가르치지만, 결국 길러지는 건 나의 인내심이라는 이 아이러니.


빅브라더와 백남준의 팽팽한 기싸움도 여전하고

나도 여전히 아이들과 팽팽한 기싸움을 하고 있다.





평소 백남준은 경계를 허무는 일을 즐겼다.

음악에는 있지만 미술에는 없는 전자 기술을 처음으로 미술에 도입하게 된 발상은 그가 평소 예찬했던 한국의 비빔밥 정신이었다.  


두손 갤러리 <백남준 개인전, I never read 1984> 중


그는 몇 년의 연구 끝에 TV 내부 회로를 조작하여 관객이 밟고 만질 때 화면이 변하도록 만들었다.


시청자도 자유롭게 TV에 개입해
메시지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TV가 가진 일방향성과, 권력의 수단과 자유를 억압할 소지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예술적 행위였다.

그는 조지오웰의  <1984>의 현실화에 끝까지 맞서고자 했다.


백남준, <TV 부처>


백남준은 미디어를 전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나의 걱정 어린 시각과는 달리  백남준의 시선은 언제나 긍정과 소통으로 일관되어 있다.


결국 그의 낙관론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미디어 아트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으며, 한국의 비빔밥 정신과 K-문화는 1인 미디어 시대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으니까.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말했던 그의 낙관론은 어쩌면 그렇게 되길 바라는 일종의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2500만의 시청자들과 함께 우주의 기운을 빚어 만들어낸 현실일지도.


휴대폰을 사용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비관하고
적대적으로 보려고 할 때마다
우리도 함께 몇 가지 마법의 주문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그거 참 재미있겠구나!

엄마는 너를 믿어. 하지만 휴대폰 세상을 다 믿을 순 없단다.

네가 그것을 내려놓았을 때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한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길 바란다.

스스로 재미를 만드는 기쁨,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면 휴대폰 속에서도 전 세계 사람들과 기쁘게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텔레비전을 제대로 알고자 누구보다 철저히 공부하고 분석했던 백남준처럼, 아이들이 사용하는 휴대폰의 즐거움을 공감하고 공유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떤 바람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빅브라더와 백남준의 세상은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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