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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은 Jul 22. 2024

마음을 그리다 (feat. 인사이드아웃2)

어린 빨강머리 앤은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실망하지 않는 것보다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나빠요!



매일 아이들과 함께 사는 나에게도 비슷한 신념이 있다.

"아이들은 즐거워야 한다"

“아이들은 꿈꿀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좋은 것을 보고 예쁜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라야 한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2에서 점점 사춘기 소녀가 되어가는 라일리의 기쁨이는 이렇게 절망한다.  

어른이 된다는건 기쁨이 줄어드는 일인가봐


라일리에게 쉴새없이 일어나는

불안하고, 따분하고, 질투나고, 당황스러운 일들은

마치 기쁨의 절대량이 줄어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니까.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집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이 그림이 떠올랐다.

앙리마티스, <마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반된 마음


사람은

사랑하면서도 증오할 수 있고

존경하면서도 경멸할 수 있으며

친밀하면서도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상반된 마음들이 매우 균형잡힌 크기와 구도와 색깔로 자리잡고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안정적이며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된다는건
불편할지 모르는 이 모든 감정들이
똑같이 중요한 크기를 갖는다는걸
알아가는 일인 것 같아.


.

나도 아직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고

마음은 여전히 이렇게 제멋대로다

잭슨폴록, <가을의 리듬>


어떤 분노들은 제때 알아채지 못해

이렇게 점점 커지기도 하고

CY TWOMBLY, <Untitled> 출처: brettgorvy 인스타그램

이성의 뇌로 무수히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점점 과감해지고 사나워진 마음들이

스프링처럼 튕겨나올 것만 같을 때도 있다


제법 어른스러운 척 하는 내가

저편에 웅크린 어린 나에게 묻는다.


정말 네 모든 감정들을
동등한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어?


어린 시절 어디쯤에선가 이해받고 이해하길 멈춰버린 내 감정들이 답한다.


여전히 나는 해피엔딩을 꿈꾸고,
기쁨으로 가득하길 바라

나는 아직 용기가 없다.



인사이드아웃2 마지막 장면

폭주하던 불안이와 5개의 감정들이

라일리의 핵심 기억들을 둘러싸고 지켜주는 장면에선

당황스럽게도 오열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 모든게 너야!

라고 위로해주는 그 장면을 나도 오랫동안 꿈꾸고 있었나보다.


이제 행복에 대한 오랜 집착을 버려야할 때가 되었다면

멈춰버린 어린시절 어디쯤에서 걸어나와야 한다면

정호승 시인과 같은 용기를 내고 싶다.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중략)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남탓은 그만하고

누가 감히 내 마음을 쥐고 흔들도록 내버려두지말고

슬픔을 수여받는 저 당당한 말투처럼

내 마음의 주인이 되고 싶다.


외눈박이 괴물조차 이렇게 고운 시선으로 그려낸  화가 오딜롱 르동(1840-1916)

오딜롱 르동, <키클롬스>

인생 대부분이 어둠과 슬픔으로 가득했던 그가

인생 말년에 그려낸 이 신비로운 그림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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