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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은 Mar 04. 2024

한 팀이 되는 가족

까미유 피사로

까미유 피사로는 이름만 익숙한 화가였다.


모네, 세잔, 르누아르, 고갱, 고흐 등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들을 책에서 만날 때마다 언급되는 이름이었고, 아름다운 사계절의 풍경을 대표하는 그림들에도 꼭 그의 이름이 있었다.


한 점의 인생작이 아닌 수많은 풍경으로 만날 수 있는 작가이자, 대가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라니.


그는 어떤 사람일까?

Harvest in Montfoucault (1876)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는 아버지이자 스승이라 불릴 만큼 존경받았고, 프랑스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까미유 피사로.


그는 73여 년 (1830~1903) 동안 성실함을 무기로 그림에 인생을 바쳤다.

모네와 함께한 첫 인상주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마지막 전시회까지 모두 작품을 출품한 유일한 작가이기도 하다.


적절한 보상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나이 60이 될 때까지도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 만큼의 명성은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평생을 그림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면 셋 중 하나일 거다.

부유한 집안이거나, 그리지 않고서는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가족 중 생계를 책임져 줄 사람이 있거나.


까미유 피사로의 경우는 세 번째로, 집안의 하녀로 들어와 아내가 되었던 줄리아 벨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쯤 되면 둘 사이의 관계에 온갖 상상과 억측을 불러일으킬 만도 하지만, 결국 이 가정에서 ‘다름’은 ‘축복'이 되었다.




미술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까미유 피사로의 어린 시절은 부유했다. 어린 시절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다니며 4개 국어에 능통했고, 풍부한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했다.

반면 줄리아 벨레는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도맡아왔고 까미유 피사로 집안의 가정부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결혼이라 어떤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한 까미유 피사로를 대신하여 아내는 기꺼이 생계를 책임졌고, 자식들(5남매)의 배를 한 번도 굶기지 않았다.

까미유 피사로 역시 아내 덕분에 마음껏 실패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부부의 선한 마음도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까미유 피사로는 자신과 예술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를 평생 존중하고 아이들을 사랑했다.


그는 직접 자녀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자녀들이 만든 가족 신문의 일화는 유명하다.


[어느 날 분노한 줄리(엄마)가 피사로(아빠)에게 왕펀치를 날린다.]

돈 좀 벌어와!



어떤 심각한 일도 웃음의 소재가 되는 편안한 가정의 분위기를 알 것 같다.


까미유 피사로는 너무 바쁜 아내를 함부로 모델로 세우지 않았는데, 간혹 그녀를 그린 그의 그림들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편안하고 따뜻한 공기가 감싸고 있는 듯한 특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내의 고단한 일상을 미화하지 않으면서, 따뜻한 위로를 담고자 했던 걸까?


육아에 지친 아내의 뾰로통한 표정과 정신없이 흐트러진 옷과 머리에도 이런 따뜻한 시선을 그림에(혹은 사진에) 담을 줄 아는 이런 남편이라면 나머지는 조금 젬병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


미화되지 않고 연출되지 않은 그림은 오히려 생생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 놀랍도록 성실하고 따뜻하고 가정에 충실했던 화가는 평생 무려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까미유 피사로가 그린 아내의 그림을 보면, 모네의 작품이 오버랩된다.


모네의 이 유명한 작품 속 모델은 그의 아내인 까미유 동시외.

모네 <파라솔을 든 여인> (1875)


그녀도 미천한 신분의 여인이었고, 역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평생 빛을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모네는 당시 생계는커녕 모델을 구할 돈도 넉넉지 못했는데, 그런 그에게 그녀는 최고의 모델이 되어주었다.

모네 <정원의 여인들> (1966년경)

이 작품 속 4명의 아름다운 여인은 모두 까미유 동시외다.

이 사실을 알고는 더 이상 작품이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았다.


눈부신 빛과 색채가 넘실대는 아름다운 한 장면을 남긴 위대한 화가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던 그녀는 가사와 육아와 모델일까지 병행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모네가 결혼생활 중반에 뜬금없이 이혼한 귀족 여인과 아이들을 집안에 들이기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들의 관계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까미유 동시외가 그 여인과 자식들까지 수발하며 감내했을 고통을 생각하면 그림 속 여인과 무슨 대화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림은 말이 없다.


정작 모네는 참으로 오래 살았고, 까미유 동시외는 병에 걸려 일찍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까미유 피사로는 말년이 되어 드디어 화가로서 세상의 인정받는다.


아내에게 방문 판매까지 시키며 팔고자 했던 그의 작품들은 나날이 가치가 올라갔다.

정작 본인은 그 후 몇 년이 안되어 생을 마감하지만, 그보다 10여 년을 더 산 아내와 아이들의 삶은 매우 여유롭고 편안했다.


가족들에게 선물이 된 작품들을 참 많이도 남기고 간 까미유 피사로도 하늘에서 매우 행복해했을 것 같다.




까미유 피사로의 가족을 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한 팀이 되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본다. 결국은 다 괜찮을 거라는 다독임이 있는 가정을 꿈꿔본다.


사소한 일도 곧 전쟁이 되는 일상은 가족의 고단한 하루를 얼마나 더 지치게 하는가?

탓하고, 비난하고, 이기려는 마음, 너무 잘하려는 마음도 전쟁 같은 하루를 만든다.


전쟁을 하려는 마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튀어나와서, 끊임없이 되뇌고 마음을 다독이지 않으면 곧 될 대로 돼라 마인드가 되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앉는 책상 한쪽 벽면 잘 보이는 곳에 까미유 피사로의 그림 한 점을 붙여놓아야겠다

.

아이가 틀린 문제에 주눅 들 때 한 번 더 생각할 있도록 응원하기, 아이의 작은 성공을 함께하고 기뻐해주기, 결국은 잘할 수 있을 거라 격려하기.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팽팽해질 때면 그가 그린 선하고 느슨한 공기를  자주 눈에 담아야겠다.


세상은 참 공평해서 쉬우면서도 빠르게 가는 길을 잘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느리고 그리 어렵지 않은 방법을 택하겠다.

가족이 함께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에 그 답이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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