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솔직함, 그 한끝 차이

프리다칼로, 에곤쉴레, <안나카레니나>

by 서영은

“온통 그 생각뿐이야. 머리를 뽑아버리고 싶어”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아”


정신적 고통이 우리의 몸을 접수할 때 자주 입에 담는 그런 말들이 있다.


바로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 화가가 있다.

프리다칼로

짧은 머리의 자화상 (1940)

그녀의 그림은 매우 직관적이다.

그녀는 평생 그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공감과 관심을 갈구했다.

솔직했지만 병적으로 집착했고,

연애사 또한 막장드라마가 따로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그림은 나를 위로한다.


그녀의 삶이 나보다 더 기구해서 느끼는 얇팍한 위로는 아닌 것 같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의 밑바닥을 낱낱이 꺼내어 보여주는 통쾌함 때문이랄까.


그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을 훼손하고 부정하는 일도 자주 했지만

그 또한 결국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지난한 고통의 과정이었다.


처음 그녀의 그림을 만났을 때 느꼈던 거부감 또한

내가 불편해하는 내 모습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헨리포드병원 (1932)

그녀가 평생 그토록 원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아이-

그녀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더 행복했을까?


글쎄...

끝없이 갈구하는 삶은 중독이다

결혼을 했다고, 자식이 있다고 해서 결코 달라지지 않는 지독한 습관-


그녀에게 그림이 없었다면

그렇게라도 자기의 삶에 솔직해지지 못했다면

그녀는 삶을 극도로 혐오하거나 아닌척하는 위선자로 생을 마감했을지 모르겠다


톨스토이의 대작 <안나 카레니나>의 비운의 여주인공 안나는 혐오와 위선 사이에서 완전히 인생의 방향을 잃고 결국 기차역에 몸을 던진다


안나와 프리다칼로의 한끝 차이는

누가 더 불행한 일을 겪었느냐가 아니라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의 삶에서 도망치지 않고 얼마나 치열하게 솔직해지려고 노력했느냐가 아닐까?


얼마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에서 만난 에곤쉴레의 작품도 비슷한 영감을 주었다.


불이 켜진 아름다운 마을을 그린 작가들은 많았다

하지만 에곤쉴레는 불이 꺼진 삭막한 마을 그대로를 그림에 담았다

자신이 어린 시절의 느꼈던 마을의 모습 그대로를-

작은 마을(1913)


힘차고 푸르른 나무와 숲을 그린 작품들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앙상하고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에서조차 꿈틀대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림은 드물다

바람속에 가을 나무(1912)


아름답지 않은 것, 추한 것, 감추고 싶은 것 속에도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있음을 보여주는 에곤 쉴레의 작품들


에곤쉴레, 프리다칼로, <안나 카레니나>

그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힘은 아마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거다.

욕망을 느끼고, 질투하고, 분노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그 모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하는 힘


그렇게 나를 보는 연습을 하고 나서야

아이들의 맑은 욕망들이 눈에 보이고

있는 그대로의 남편의 모습도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내면의 힘 말이다.


혐오스러운 작품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작품들이

오히려 삶을 혐오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하는 아이러니라니.


온갖 아이러니로 가득해서 재밌는 인생이다.

C'est la vie!!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4화마음을 그리다 (feat. 인사이드아웃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