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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은 Jan 22. 2024

감정의 문

나혜석

한국 근현대 화가들에 대한 책을 읽다가 나혜석을 만났다.

격동의 근현대를 살아낸 한국 화가들의 삶은 그렇게 하나같이 파란만장하지만. 그중 나혜석의 인생은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만큼 먹먹했었던 기억이 난다.


당대 최고의 여성 화가이자, 최초의 여성 독립 운동가, 그 당시 당연했던 조혼의 풍습을 거부하고 자유 연예로 당당히 결혼한, 지금으로 치면 인싸 같은 화가였던 나혜석이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재기를 꿈꾸던 시기에 그린 그림 한 점을 만나 보자.

<화녕전 작약> 1930년대

힘찬 붓질로 흐드러지게 핀 작약 꽃밭, 그 뒤로는 담장이 둘러져 있고 문 하나가 굳게 닫혀 있다.

예쁜 꽃밭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문 안쪽 세상이 바깥과 너무도 다르다. 나무들은 작약 꽃들과 다른 강도와 방향으로 움직인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나무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 왜 나는 어떤 뇌구조를 떠올렸을까?


일상에서 다양한 표정을 꾸미며 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예를 들면 저렇게 커다란 대문이 있고 ‘감정‘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얼굴 뒤로 막상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감정 날씨가 사람마다 너무도 다르다. 어떤 이는 구름 한 점 없이 매우 평화롭고, 어떤 이는 폭풍우에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그 길 끝에는 ‘생각하는 뇌’라고 쓰인 초록색 버튼이 있다. 그 버튼을 눌러야 생각하는 뇌가 천천히 가동되기 시작한다. 우리들은 각자의 날씨를 뚫고 그 초록 버튼을 누르러 간다. 어떤 사람은 참 손쉽게 누를 수 있는 초록 버튼이지만, 그걸 한 번 누르는 게 참 어려운 사람도 있다.


감정의 밭에는 사람마다 다양한 씨앗이 심어져 있다. 아이였을 때 거부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마음, 작은 일로 크게 불안해하던 씨앗들. 이 씨앗들은 놀라운 기억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비슷한 상황이 되면 무서운 속도로 피어오른다.


학교에서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문제로 이성의 판단이 마비된 듯한 아이들을 만날 때면, 정말 인간에게 감정이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감정은 일종의 생존 문제다.


나혜석에겐 생존한 자녀가 셋이나 있었음에도 무연고 사망자로 생을 마감한다.


지금껏 고통을 그린 화가들은 많다. 하지만 그녀가 그린 고통의 근원은 자식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었다. 그 지점이 나를 이 그림 앞에서 멈추게 했던 것이다.




BRAVO!

나혜석은 그 시절에 네 아이를 시부모에게 맡기고 외교관 남편과 세계여행을 떠난다.


세계 여행 중 파리에서 남편은 지인인 최린에게 잠시 아내를 부탁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는데, 그 사이 혜석이 최린과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은 나비효과가 되어 혜석의 인생을 삼켜버린다. 그녀가 끝까지 믿었던 글과 그림의 진실함은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고, 그저 부정한 여자로 낙인 되어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된다.

그녀의 그림은 아무리 훌륭해도 어떤 대회에서도 수상작에 오르지 못했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녀의 글들은 메아리치듯 자신에게 돌아와 박혔다.


가족은 더욱 철저히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그저 가족 모두에게 수치심을 준 부정한 여자로 낙인찍혀 홀몸으로 집에서 쫓겨난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유식계급여자, 즉 신여성도 불쌍하외다.
아직도 봉건시대 가족제도 밑에서 자라나고
시집가고 살림하는 그들의 내용의 복잡이란
말할 수 없이 난국이외다.
마음과 뜻은 하늘에 있고
몸과 일은 땅에 있는 것 아닌가.

(삼천리 ‘이혼 고백서’, 1934년) 중


이혼 초기에는 남아있던 지성의 힘으로 <이혼 고백서>를 쓰고, 갖은 소송을 진행하였으며, 미술 아카데미도 세우는 등 재기를 꿈꾼다. 하지만 시대마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간통의 상대였던 최린에게는 그리 큰 스크래치가 아니었던 걸 보면, 그 애통함이 어느 정도였을까.

영리한 그녀는 마지막까지 최린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그 돈으로 재기를 꿈꾸지만, 무슨 짓을 해도 그녀는 간통녀였고, 갖은 애를 써도 자식을 버린 엄마였다. 



나혜석은 점점 미쳐갔다. 자녀들과의 만남은 한 번이 허락되지 않았다.

찾아간 절에서는 그녀에게 속세를 버리고 떠날 것을 요구했지만 미술에 대한 미련으로 그마저 포기하고 만다.

이도 저도 아닌 세상에서 갈팡질팡했던 그녀, 하지만 끝내 그림만은 놓지 않았다. 


<화녕전 작약>은 그나마 나혜석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뚫고 힘겹게 눌렀을 초록 버튼이 잠시나마 작동한 그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헤쳐나가야 했던 저 문 뒤의 세상은 너무 가혹했다. 그녀는 결국 초록 버튼 누르기를 포기한다. 폭풍우 속에서 절절하게 그림만 그려댔다.


그림이 생존의 수단이 되는 화가들이 있다. 돈을 벌어다 주는 생존이 아니라, 정말 숨을 쉬듯 살게 해주는 생존말이다.

죽어가는 아내의 꺼져가는 생명의 빛을 지켜보며 붓을 꺼내 들어야만 했던 모네가 그랬다.   

모네, 임종을 맞는 까미유


나혜석의 <해인사 3층 석탑>이라는 작품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살아야 해서 그린 그림이 아닐까?

해인사 3층석탑 (1938년 경)


이 그림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역경을 겪었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 휘몰아치는 별빛의 아름다움도, 이중섭의 <소>처럼 역경을 이겨내고자 하는 강인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말년에 함구증에 수전증까지 앓았던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그려낸 이 그림은 오히려 기괴하고 음침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무너질 듯한 석탑의 불완전성이 오히려 온몸을 전율케 한다. 




그녀의 아들 중 한 명인 김진 교수(전 서울법대 교수)가 죽기 전에 기증한 나혜석과 김우영의 초상화이다. 혜석의 인생이 가장 화려했던 파리 시절에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림에서 풍기는 암울함은 세상이 모르는 가족들만의 아픔을 증명하는 듯하다.

좌 나혜석 우 김우영(남편)

가족이란 관계는 참 묘한 것이다.

혜석도 젊은 시절엔 자녀들과 거리를 두며 자기 삶을 살기를 꿈꾸었지만,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자식을 딱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절절함이었다.


가족은

‘감정‘이라는 세상을 관장하고 씨앗을 뿌리는 생에 유일한 기관이다.

같이 있을 땐 떨어져 있고 싶고, 떨어지면 간절해지는 사이다.

남들에겐 별거 아닌 일들이 참 별것이 되는 곳이다.

세상 모든 것을 가져도 갈증 나게 만드는 무엇이다.


이 모순 투성이의 불완전한 가정이
내 삶의 전부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이라는 굴레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들의 운명은 참으로 가혹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부모가 되었다면, 감정의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가 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감내할 용기를 내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아마 사랑하는 내 아이들의 저 대문 뒤 세상이 더 위태로워지지 않도록 부모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용기이자 위대한 사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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