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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Jan 26. 2021

군인의 아내가 궁금한가?

- 그대들이 알고 있는 것과 ,  다 알지 못한 것에 대해 말하자면...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분은 직업군인이다. 즉 나는 군인의 아내로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우리나라 전방 파주다.  신랑을 만나서 파주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고 원래 나고 자란 곳이 이곳이었다. 어릴 적부터 흔히 볼 수 있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동경심이나  호기심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시집을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친구의 아버지가 군인 이셨는데,  정작 친구는 직장인과 결혼하고  그 친구가 나와 신랑의 오작교 역할을 해주었다.(친구는 본의 아니게 오작교가 돼버림)


군인과의 연애는 조심할 것도, 지켜야 할 것도, 이해해야 할 것도 많았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연애 때의 지켜야 할 것들은  참새 눈곱만큼의 사항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나름 적응하고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에 직업군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필요해서인데 즉 휴전 국가이기 때문이고 군인이 많다는 것은 군인을 가족으로 둔 국민이 많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중 나는 신랑을 군인으로 둔 아내이다.


내가 군인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직장 사람들은 후에 연금이 나오니 좋겠다, 관사가 나와 집 걱정은 없겠다, 군인이라 세제 혜택이 많지 않으냐, 애들 학비 걱정은 없겠다는 둥 가전제품이나 이런 것도 싸게 살 수 있다더라 하는 말 , 혹은 신랑보다 높은 계급 사모한테 불려 들어가서 김치를 해주거나 잡일을 해야 한다는 둥, 2년마다 이사를 가야 한다더라의 카더라로 조언인지 모를 입방아를 찧어댔다. 막상 결혼하고 보니 맞는 말도 틀린 말도 있었는데  대부분 다 틀린 말이 많았다.


결혼 한지 8년 차가 되었지만 신랑보다 높은 계급의 선임 집에는 가본 적도 없고 , 당장 우리 옆집에 살고 있는 타부대 소속  사람들과는  잘 마주치지도 못하고 있다. (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은 BTL 사단 관사라 사단 밑 타 부대 사람들과 섞여 살고 있다.)

또한 2년마다 이사를 가야 한다는 말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데,  신랑의 하는 일(병과)에 따라 발령이 잦으면 이사를 갈 수도 있으나 가족의 의사에 따라 신랑만 근무지로 이동을 하고 남은 가족은 원래 근무하던 관사에서 살 수도 있다. 필자의 신랑은 정비 근무대 전차를 수리하는 일이라 옯겨야 한대도 전차가 있는 부대로 옮길 수 있고 전차들이 있는 부대들이 이 근처라 이사를 해도 현재 살고 있는 곳 주위이나,  현재는 운이 좋게도 이사를 안 가고 한 동네에서 잘 살고 있다. ( 우리 집 군인 아저씨는 무려 16년째 한 부대에서만 근무 중이다.)


결혼 날짜를 잡고 신혼집으로 받은 첫 관사는  오작교 역할을 했던 친구가 초등학교 때 살던 윗집이었다.

친구가 살 당시에도 새 건물은 아니었다는데  즉 시공된 지 30년이 넘은 빌라였고, 우리가 들어가 살기로 한 해로부터 3년 후 철거 예정인 빌라였다. 그럼에도 이 빌라로 이사를 들어간 이유는 당시 확실하진 않았지만 새로 짓고 있는 BTL(일반 아파트를 국방부에서 빌려 군인들에게 관사로 쓸 수 있도록 해 놓음)  아파트로 우선 입주를 시켜주는 조건이 있다는 말이 흘러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결혼을 준비하면서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면 굳이 안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처음 관사를 배정받고  구조는 어떨지 신혼살림은 무얼 준비해야 할지 궁금증 반. 설렘 반으로 첫발을 들인 순간, 왜 나오는 관사를 마다하고 굳이 대출을( 군인에게는 전세대출이라는 제도가 있어 저렴한 금리로 빌려 줌)  받아 신혼살림을 꾸리는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울어 버리면 나와 결혼할 군인 아저씨가 슬퍼할 거 같아 씩씩하게 참아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다행인 건지 평수가 작아 셀프 리모델링+도배+장판 (어차피 철거될 건물이라 하얀색 제일 저렴한 것으로 통일) 작업을 약 1달 하니 처음 배정받았던 그 모습을 싹 가릴 수 있을 만큼 괜찮아졌다. 리모델링 후   살림살이를 들여놓았을 땐 뿌듯했고, 행복했다.

( 참, 혼수를 준비할 때 군인이라고 전자제품을 할인받을 수 있을 거라 하셨던 분들.. 그런 거 없습니다. 다 제 돈 주고 샀어요!)


- 세월을 때를 입은 노란 욕조를 가리는 중... 이 작업을 마친 군인 아저씨는 혹시나 또 타일작업을 할 거면 사람을 불러야 한다 했으나 ,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에 난 또 (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 안 생기면 좋겠지만...)  군인 아저씨를 시킬 예정이다 -




비록 신혼집 안방에서 꼽등이가 튀고 ,  한 여름에 아이가 모기에 물릴까 봐 밤을 새 가며 잡은 모기수가 40여 마리였으며 잦은 물탱크 청소로 인해 물이 끊겨 친정집으로 원정 목욕을 하러 가는 일도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3년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시작 해 손수  꾸미고 살아서 인지 아기자기한 기억으로 남은  집이다.

이곳에서 첫 아이를 낳고 아이가 뛰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BTL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일단 관사를 받을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말은 어떤 관사를 받아 살게 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안 좋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좋았다.



아비가 있으나 없는 듯....


2020년 코로나의 예고 없는 들이닥침은 나라와 나라를 넘어 우리 집에도 들이닥쳤다.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보다 4월 둘째의 돌잔치가 있던 날 , 아이 아빠의 부대는 돌잔치 불허를 내렸다. 만의 하나라도 확진되면 큰 부대 안 통째로 단 하나의 역적이 되는 상황...  

단체 생활을 하는 곳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아이의 한 번 밖에 없는 첫 돌을 아빠 없이 치루려니 눈물이 핑 돌고 마음속엔  원망이 가득했었다.

다행인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으로  코로나 탓에  오기로 한 인원은 반의 반도 못 왔고 식구들 뿐인 돌잔치 자리로 식사만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부대에선 소규모이고 밥만 먹고 끝내는 것을 약속으로 돌잔치 두어 시간 전 허가를 내주어  가까스로 아빠와 함께하는 돌잔치를 치를 수 있었다.  


꼭 코로나 탓 만은 아니고  군인이라는 신분상 아이의 아빠는 훈련을 가거나 당직을 하거나 , 교육을 하러 지방을 가거나 하는 일이 많다. 때문에  아이들 또한 아빠가 없는 날 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익숙하다.

한 번 떠나면 일주일이 기본이라  한동안 못 만나던 아빠를 반길 때의 설렘을 느끼는 일도 다른 아이들보다 많을 것이다.

아빠의 부재 때마다 군인의 아내라는 신분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 한다.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 반은 더 일찍 일어나 나의 출근 준비와 아이 둘의 등원 준비를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아이를 하나씩 캐어하기 때문에 각각 등원을 시키는데 , 아빠의 부재가 있는 시간은 오로지 내가 다 해야만 하는 일이 된다. 아이 둘을 씻기고 , 입히고 , 먹이고 준비물까지 챙겨서 제시간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마치면 이미 체력의 반은 동이 난 상태지만  회사일은 그제야 시작이 되고 , 퇴근을 하면  정신없이 달려서 아이 둘의 하원을 함과 동시에  저녁식사 준비를 하며 그날의 정리도 같이 해야 한다.  이런 생활은  기본 일주일, 아이의 스케줄상 행사가 있어도 그 시간은 오롯이 군인의 아내가 감당한다.

 

군인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 가끔 아내가 남편의 역할까지 모두 할 수 있어야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일 년에 운전대를 몇 번 잡지 않던 장롱면허가 군인의 아내가 되면 순식간에 베테랑급 실력으로  늘게 된다. (군인 관사 , 내지 군인이 일하는 곳은  차가 없으면 교통이 불편한 외딴 지역이 대부분이다.)

아이가 아픈데 아빠가 없으면 그 상황은 엄마가 오로지 캐어해야 하기 때문에 , 혹은  신랑의 부재가 많은데  장을 보거나 , 장거리 일을 봐야 할 일이 생기면 답이 없다.  때문에 대부분  군인의 아내들은 운전을 한다.

뿐만 아니라 언제까지 군인인 신랑에게만 의존을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 오는데  주변 군인의 아내들에게는 누가 먼저 오고 늦게 오느냐의 차이일 뿐  대다수가 의존적인 성향에서 벗어나는 시점이 있었다. 때문에 군인의 아내들은  전구를 갈거나 , 가구를 옮기거나 , 혼자 이사를 하거나 ,  간단한 수리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가족 동반 모임에서 신랑의 부재가 서운하거나 속상하거나 , 기가 죽어 있던 모습에서 점점  자연스러워 지거나  신랑의 부재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정도의 멘털로 성장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군인의 아내로서 10년 차가 못 되는 중닭의 수준이라  아직 그 정도의 멘털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작년에 있었던 아버지의 환갑 자리에  군인인 신랑만 참석을 못하게 되었는데, 그날 찍은 가족사진에서 신랑의 빈자리가 나는 아직도 서운하거나 내지는 마음이 괜찮지 않다. ( 괜찮아질 날이 오고야 말겠지만...)


군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에 대해 친구들과 떠들다 보면 친구들은 그래도 노후 준비는 끝나지 않았냐 , 아이들 키우기에는  군인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고들 하는데,  아마도 군인 부부들이  다른 직군을 가진 부부들에 비해 아이를 많이 낳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 하자면 군인들이 아이들 많이 낳는다고 해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주말에 추가 근무를 조금 덜 서거나 , 훈련 순서를 바꾸어 주는 것 정도지  양육비를 더 받거나  학자금을 더 받을 수 있다거나 하는 혜택은 없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까지 의무제이고 , 자녀가 대학을 간다고 해서 학자금이 더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는 있으나  이제도는 우리나라 대학생이면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또 한 가지 노후 준비 (연금!)에 관한 말을 하자면 일단 20년 군생활을 하신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혜택이다.

직업 군인이 되면 무조건 연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단 직업군인이 되고도 장기(장기간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조건)로 발탁이 되어야 하고(오늘날 장기가 되는 일은 치열하고 어렵다....) 장기가 되고도 무탈하여  사고 없이 진급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머지않은 관계에서만 보아도 20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직업군인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겨난다.  군인들은 때에 따라 발령을 받게 되는데  운이 좋지 않을 경우 발령을 받고도 적응을 못하거나 , 발령받아 움직여야 할 자리에 T.O 가 없거나 , 예기치 않은 사고로 책임을 대신해 전역을 해야 하는 일들이 생겨난다.

 군대라는 특수하고도 대단히 큰  집단에서 무탈하게 1년을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필자의 집에 같이 사시는 분은 아직 16년 차 군생활에  아이들도 어리고 한창 일을 하는데 바빠 연금을 받는 시간이 오긴 오는 건지 와 닿지 않는 현실에 살고 있다. (설령 20년 차 연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근속에 따라 금액이 나뉘기 때문에 금액이 크지 않다 , 부사관 기준 20년 근무 전역 시 120만 원 정도 된다.) 타 직군에 비해  높아 보이는 금액의 연금이라는 제도에 이 직업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군인의 월급에는 기여금(군 복무 기간을 호봉으로 인정해줌으로 인해 그 기간만큼 내야 하는 연금 납 부분)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집 군인은 이번 달 32만 5천 원 공제 (여기에 군인공제회에서 5만 원 더 떼감) 매달 35만 이상씩 매달 공제하여 연금을 받을 때 돌려받는 것이다. ( 즉 내 돈 내고 내 돈 먹기다. /  20년 미만 근무하고 전역 시는 퇴직금으로 받는다.)


매달 월급명세서를 받아 본 군인들의 아내는 확 와 닿을 것이다. 당장 연금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연금을 받기 전까지  아주 많이 귀여운 월급으로 많은 식구들을 부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오늘이라는 것을...!  

때문에 군인의 아내들은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 많은 편이다. ( 남편도 자주 집에 없고 , 엄마들이 강해지는 환경이다.) 우리 집 군인 아저씨에게 시집을 오기로 마음먹은 순간 부잣집 마나님으로 살 생각은 고이 접어 후- 불어버린 필자는 맞벌이하면서 나름 잘 지내고 있다.





내 피부의 비결은 PX 고급 화장품 FLEXE!!


나는  고가의 화장품을 사 본 적이 없다.  하나 값싼 화장품을 쓰지도 않는다. 자고로 기초가 탄탄해야 피부는 무너지지 않는 법!  때문에 여자들은 기초만큼은 좋은 것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필자도 동의하는 바이다.

내 피부 비결  플렉스는 바로 PX표 화장품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 PX좀 가봤다 하시는 남성분들은 알 거다. PX는 별천지라는 것을...

군 밖의 시중에서 사려면 어마어마한 가격의 제품들이 PX 안에선 착한 가격으로 죽 늘어서 있다.  군인 아저씨와 결혼하고서 피부에 확 와 닿은 혜택은 PX 뿐이다.  시중에선 비싸서 못 사서 쓴 제품을  나름 가정적인 성향을 가진 군인분 덕에 싼 가격으로 ,  또 여러 종류를  혜자스럽게  아끼지 않고 퍼 바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 군인 신랑 덕에 부족한 줄 모르고 쓰고 있는 화장품들 ( 늘 감사함ㅋㅋ)-



PX에 처음 갔을 때 눈 오는 날 강아지 마냥 너무 신났던 기억이 있다. 먹을 것은 물론이고 , 시중에서 비싸다는 홍삼제품 , 영양제며 , 세제 , 화장품 , PX에서 파는 제품들은 우리가 쓰는 널리 알려진 제품들이다. (EX 설화수 , A.H.C , 닥터지 , 아이오페, 참존 , 설화수 등등)  그리고 회관에 있던 치킨집과 카페까지 ( 타 부대에 비해 시설이 좀 좋다고 우리 집 군인 아저씨가 말함)  한 마리에 만원이면 시중에서 보다 양도 많은데 맛도 있다.  때문에  퇴근할 때 한 마리씩 튀겨오라고 오더를 내리지만 손님이 많은지 번번이 구매에 실패한 군인 아저씨는 치킨 대신 화장품을 한 아름 사들고 와 나를 풀어주곤 한다.


가끔 나의 친구들이게 PX표 (시중 고급 메이커) 화장품을 과감하게 선물하는 우리 집 군인 아저씨는  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또한 군인 사위를 둔 덕에  PX로 장을 보러 가게 된 엄마와 이모는 갈 적마다 양손 가득 장을 보시는 재미를 누리셨는데  작년 코로나가 번진 후 아직까지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어 가끔  사위에게 심부름을 시키시지만 찔끔찔끔 사 오는 성에 안 차는 구매력을 가진 사위를 통 성에 차지 않아 하신다. (재작년 군 PX 제품을 사재기해서 판매하는 일이 문제가 된 일이 있어  구매 제한을 걸어놓은 상품들이 몇 개 있는데 한 사람이 사 오다 보니  2개 3개 정도 구할 수 있다. ) 유일하게 확 와 닿는 혜택인데 온전히 누릴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아빠의 부재에서 오는 힘에 부침 ( 횟수가 잦긴 하지만) 말고는 군인의 아내로서 딱히 불만이나 힘든 점은 모르겠고 ,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역시 글을 쓰고 봐야 좋은 점을 다시 새기고 군인 아저씨에게 내심 서운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구나;;


군인의 아내분들!  사는데 뭐 별거 있습니까?!  우리 소소한거 누리면서 건강 합시다!!



( ※ 주의 : 막상 카톡도 안 되는 산골 오지에 군인 아저씨 훈련을 보내 놓고, 독박 육아와 워킹맘의 삶에 찌들 때면   ' 군인 와이프만큼 불쌍하고 착한 여자들이 어딨냐고 ' 답도 안 오는 카톡에 화풀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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