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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Oct 18. 2022

그냥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나는 안녕하신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텨낸 나 자신 용하다!

욕 좀 먹고,  구박도 좀 당하고 , 지적을 좀 당했어도 " 저 오늘 퇴사하겠습니다! " 라고 내지르지 않은 나 자신 꼭 끌어안아주고 싶다.

설령 내가 실수를 하거나,  남들의 기대치에 못 닿았어도 그건 그냥 오늘 하루 일뿐이지  내가 그동안 이루어낸 그간 시간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니  나는 기분 나쁜 오늘을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지나가듯 그렇게 흐르도록  이 기분에 머무르지 않겠다!

내일이면 칭찬을 하는 사람도,  내가 자신 있는 일도, 내게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다시 마주치는 시간이 오겠지.



" 저 그만 퇴사하겠습니다!"


불과 2년 3년 전만 하더라도 일단 질렀을 급한성격 (지금도 그 성격 어디 간 건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 정도의 성질들은 있다는 거 나도 잘 안다.) 그래놓고 이력서 여기저기 참 많이도 찔러 넣었드랬다. 다행히도 아직은 여성의 커트라인이라는 34세 미만이었기에 어디든 들어가서 밥은 벌어먹고 살 만큼은 다녔었다. 

그러다가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 그만둔 적도 , ' 이곳에서 나의 발전된 미래가 있는가' 하는 고민에 빠져 그만둔 적도,  ' 지금 하는 일이 급여에 맞는 업무량인가 급여 가성비 업무의 강도가 너무 나를 부려먹는 것은 아닌가' 재고 따지는 계산을 하느라 그만두었던 탓에  이제는 만 34세가 지나버렸고 이제 더이상 청년지원금이 나오지 않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즉 이제는 취업이 쉽지 않은 나이다. ( 덤으로 여러 군데 들락날락하느라 길게 쳐주지 않는 비루한 경력도 생겼다 _ 한 곳에 오래 다니신 분들 존경하고 부럽습니다.) 

더 이상은 마음에 스크래치 정도 났다고,  업무적으로나 평소 결이 달라 나와 참 더럽게 안 맞는 사람 때문에 마음속에서 불덩이가 불쑥불쑥 올라온다고 해도 함부로 '퇴.사'라는 단어를 올리지 않게 되더라 (자동으로 철이 듦)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상상을 해본다. 

" 저 그만 퇴사하겠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쿨하게 문밖을 나와서 지바겐을 끌고 떠나는 나를.... ( 로또 맞으면 한 번 해볼까?) 



" 안녕하세요! " 


모두가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인사하는 아침은 평소대로 돌아온다. 내 기분은 어제와는 상관없이 괜찮다는 (괜찮은 척하는 것) 것을 누가 묻지 않아도 일부러 보여준다. ( 이미 마음이 안 괜찮음)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일이니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다시 업무에 집중한다.

" 나도 그런 적 있었어." 

선배가 들려주는  그 말이 꽤나 위로가 됐다. ( 하지만 나도 선배처럼 그 일을 굳이 겪고 지나갈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이 공존하기도..)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크게 한 아침 인사에  내가 혼자 자존심 상해 버렸다. 

이곳에 오래 다닐 수  없겠구나,라는 마음이 생겨날 즈음 머릿속으로  내가 진 빚이 얼마인가 계산을 해봤다. (아... 오래 다녀야만 하겠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사업 아이템을 짜 보자는 톡을 반나절 하고는  이렇다 할 위로도 아닌데  피식- 웃음이 나는 퇴근 시간을 맞이한다.

그렇게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이 흐른다.



" 지금처럼만 해주세요."


'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진심인 건가?'  

"지금처럼만 해주면 좋을 거 같아요" 

한 입으로 참 여러 말을 할 수 있는 게 사람이 맞지, 사람만이 그렇게 하지.

지적도 했다가, 몰아붙이기도 했다가, 지금 아주 잘 해주고 있다고, 수고했다는 말로  술 한잔 따라주는 손목에 시선이 멈춘 채  멍 해졌다.

나는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란 건지, 부족한 사람이란 건지.....

어쨌든 나는 잘 버티고 있었구나......

술 한 잔이 위로가 되는 자리에  나는 또 있게 되겠지.

돌고 도네.

내가 취한 건지 세상이 취한 건지, 

오늘은 술 한 잔에 나 자신 잘 버텼다고 혼자 등 쓸어주는 귀가길이 되어야겠다.



' 그럼 그렇지 '


어제의 술 한 잔은 이 자리에서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나가지 못하게 잡아 둘 장치였던 것이다.

'당장 이 자리에서 내가 박차고 나간다면?' 

그래, 당장 부려먹을 누군가를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 많은 일을 언제 인수인계하고, 설명하고 이해시킬 것이며, 손발 맞게 써먹을 때 까진 적어도 1년 이상 걸려야 할 테니...

나 또한 당장 다음 달에 숨 가쁘게 날아들 카드 명세서 탓에 꼼짝 마라 해야 할 상태임에 수긍하고 앉아 있는 것이고...

나도 이곳도 어떻게 보면 일맥상통하는 이유로 인해 고달픈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과는 다르게 업무 메일에 날아든 내용을 이해하느라 모니터를 뚫고 들어갈 기세로 허리를 숙인다. 애정이 넘치지는 않지만 책임자에 내 이름 석 자가 박히는 이유로 일을 엉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조금 더 바라자면 그래도 어느덧 입사 차수가 지난 후로 다음 요구 사항이 다시 찾아들지 않도록 한 번에 깔끔하게 처리해낸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결국에는 메일에서 요구한 사항을 해내고야 마느라 해가 떨어진다.

드디어 퇴근이다. 

'수고했어요 '라는 말 때문인지  다음 달에 날아들 카드값 때문인지 오늘도 나는 이 자리를 하루 종일 지켜냈다. 

 


' 능력자야 ! 능력자.' 


좋아서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못하면 안되겠기에 한 일인데 결과가 잘 된 모양이다. 

'기분이 좋다.' (나 좀 하는 듯)

좋아서 한 일은 아니었지만 내 딴에는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매해 진행하는 일인데, 매해 최선을 다 하지만 보이는 결과가 다르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치가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이 늘었다. 내가 봐도 작년보다 나은 내가 보인다.  늘 같은 시간을 보내는 하루인데,  1년이라는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작년과는 천지차이처럼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잘 했다는 감탄사 섞인 칭찬이 나온다. '능력자'라는 단어가 맘에 든다.

'그래, 그래서 내가 일을 하지!' 

커피 한 잔을 내려서 자리에 앉았다. 칭찬으로 들뜬 마음을 계속 이어가고 싶지만 업무 메일은 준비도 안된 새에 날아든다. 

' 일정 확인해 주세요 ' ' 견적서 보내주세요 ' ' 단가 협의 부탁드립니다 ' ' 담당자가 바뀌어.... ' ' 필요서류 요청합니다.' ' 오늘까지 부탁드립니다.'


'역시 회사란.... ' ( 염병...)


나는 오늘도 역시 상상만 해본다.

로또 맞고 부자 돼서 지바겐 타고 떠나는 나를...


현실은 그냥 월 화 수 목 금 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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