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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Feb 04. 2021

여보... 나의 멱살을 잡아!

-일 년 만의 고백..



 자기야  나 사실은... 


오늘은 아직도 신랑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년도 더 지난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즈음   직장을 구하려 이력서를 정신없이 넣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직 구해지지도 않은 직장 생활을 그리며 어떤 옷을 입고 다니나 , 어떤 스타일링을 할까 잠시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도  심각했던 적이 있었더랬다. 아이를 낳고 1년도 안된 터라 맞는 옷도 많지 않아 다시 사 입어야 하는 시기였고 , 더군다나 새로운 마음으로 리프레쉬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서울로 직장을 다니다가 둘째가 생기고 나서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력서를 넣자고 마음먹고는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며 아이들의 어린이집 동선을 따라 시간 계산도 하고 괜찮겠다 싶은 곳으로 이력서를 넣고는 연락을 기다리던 때 , 나름 스트레스를 풀고자 인터넷 여기저기를 기웃기웃 거리다가 지역 맘 카페에 들르게 됐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눈에 딱 걸려든 로고!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싶다는 악마도 입는다는 그 로고!  나도 여자 인지라 눈이 멈춰졌다. ( 의지가 아니고 그렇게 됐다.)


30대 중반의 직장인 여자라면 지적이면서 차분하고, 언발란스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멋스러움을 동경하게 되는 그런 게 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들었지는 모르겠으나 이 나이 때 즘엔  명품백 하나씩 가지고 다니면 연륜 있는 직장인처럼 보이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능력 있어 보이고 , 여유 있어 보이고 , 가짜를 들 거라고는 생각을 안 하게 되는 진짜 어울림이라는 생각. (어리석었지... 지금은 진짜 멋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결혼을 할 때 에도 백은 받지 않았다.  당시에는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굳이  명품에 대해서도 잘 몰랐지만  나보다 늦게 시집을 가는 친구들이 받아 오는 예물을 보니  예쁘긴 하더라..... 

'나도 받을걸 그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그 후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신랑이 면세점에서 사준 구 0 가방을 받긴 했지만...) 

명품이라 하는 것들은 어째 죄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핸드폰 하나  반지갑 하나 들어가면 끝인 그 사이즈가 몇 백씩 하는지... 


백수일 때 물욕의 간절함은 사람의 눈을 가린다. 내가 딱 그랬다.


맘 카페 속의 그 가방 판매자는 최근 선물을 받게 되었는데 같은 디자인이 있어 하나를  내놓는다며 상태가 좋아  20만 원에 무 네고 (에누리 없음)에  올렸고  댓글도 많이 달려 있었다.  지역 맘 카페를 이용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맘 카페는 이윤을 남기려는 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에 상태 좋은, 내가 안 쓰는 물건을 남에게 넘겨준다는 의미가 강하다는 것을...

이미 아기 보행기나  장난감 거래로 좋은 물건은 싸게 구한 적이 여러 번 있는지라  댓글의 빠르기가 구매 성공의 당락을 결정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이미 팔렸겠거니  했다. 

포기하는 마음에 누가 사갔나 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댓글을 읽어 내려갔는데  각자 쪽지를 했는지  자세한 내용은 나와있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판매 완료] 표시가 되어있지 않아  '팔렸나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십 분이 채 되기도 전에 온 쪽지엔

 

'아니요 , 하실래요? 상태 좋습니다. '



아.... 이것은 나의 것인가!...  



나는 그 누가 채가기 전에 얼른 입금을 한다며 계좌를 받았다. 

한 달에 만 원도 못 버는 백수 주제에!  20만 원이 싸다며  천 원 이 천 원 아끼자고 먼 마트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아줌마가 명품에 눈이 멀어 계좌를 받고 입금을 하기까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결제를 하고 그 판매자가 있는 동네로 물건을 받으러 갔다.  신랑의 퇴근 전에  일을 마쳐야 하기에  신속하고 빠르게 행동해야 했다.  차가 약속 장소에 다다르자  명품쇼핑백을 들고 서 있던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차를 몰았고  창문을 내렸다.  


" 00 님 이신가요? "


판매자는 말없이  창문으로 그 쇼핑백을 넘겨주고 돌아섰다. 

물건을 받아 옆자리에 두고 집에 오기까지 몇 번이나 그 쇼핑백을 흘끗거렸는지  집에 오는 내내  행복했다.  

집에 들어와서는 저녁 준비를 서둘러야 해서 종종 거리며 바빴지만  마음은 쇼핑백에 담긴 명품백에 가 있어 평소 잘하지도 않던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밥을 했더랬다. ( 싼 가격에 명품을 건졌다는 마음에 뿌듯하기도 했었다.)

신랑이 집에 오기 전 집으로 출발했다는 연락을 해왔고 , 대충 상차림을 끝낸 나는 불에 찌개를 올려두고  가방을 열어보았다. 


' 세상에!!!  왜 이렇게 예뻐?..... 근데... 좀.. 이상한데..? 원래 이런 건가?? '


겉은 그럴싸 한데, 속이  음... 뭐랄까  그 옛날  초등학교 때  가지고  다니던 실내화 가방 속 안감 같다고나 할까?!..


티브이에서 하도 요즘 명품백은 감별하는 사람도 잘 구별하기가 힘들다 하고 ,  가짜가 더 진짜 같다고들 하니까 무엇보다  나는  프 0 이다를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얼른 SNS에 들어가 그 가방을 검색해 봤다. ( 참 자세히도 나오더구먼.... )


                                                      -  잘 들고 다니고 있는 나의 짝퉁 가방-



' 하... 멍청이. '   

가방은 가짜였다.


난 가짜를 20만 원에  사 온 똥 멍청이였다.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입으로 떠 넣는지 콧구멍으로 떠 넣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신랑이 오늘 반찬이 맛있다며 칭찬을 했던 것 같은데 , 신랑이 하는 칭찬은 귓속에 남을 새도 없이 반대쪽 귓구멍으로 새 나가고 있었다.

너무 분해서  판매자에게 쪽지를 남겼다. 


' 혹시 이 물건 가짜인가요? "

'A급입니다.'

' 그럼 가짜잖아요 그렇죠? 그럼 이거 안 하고 싶습니다. '

' 거래 후 환불은 안된다고 올렸습니다.' 

'이런 건 사기 아닌가요?'

' 이미테이션 인지는 거래 전에 물어보셨어야죠. 물어보셨으면 답해 드렸을 텐데요.  마음에 안 드시면 그쪽도  카페에 올려서 물건 파세요!.'

(what?? 헐... 세상에  마음에 안 들면  팔라고?  이런 못된 것...)


하...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물욕에 눈이 멀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덜컥 구매한  나의 잘못임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맞은편에 선  신랑이  " 밥 먹다 왜 얼굴이 벌게져? 왜 그래? " 하고 물었을 때  

' 자기야 미안해 내가 미쳤나 봐 자기가 벌어온 돈으로 나 프 0이다 사겠다고 까불다가 사기당했어'라는 말이 튀어나올까 어금니를 꽉 물어야 했다.

' 명품백에 눈이 먼 내 잘못이지,  그거 든다고 사람이 명품 되는 것도 아닌데  벌 받은 거지. '


예전 평화로운 중고들의  나라에서 커피 머신을 저렴하게 구매한 적이 있었다.  신랑이란 사람은 워낙에  꼼꼼한 구석이 있어서 인터넷 상으로 개인 거래는 안 하는 사람인데  내가 그 거래를 하는 것을 보고는 한소리  한 적이 있었다.


" 자기 이제 물건 오면 봐라 , 거기 벽돌 들어 있을 걸? " 

" 내가 바보냐?  봐봐 새 상품인데  엄청 싸게 샀어! 자기  나한테 물건 구해달라고 하지나 마! "


도착한 물건은  너무나도 다행으로 새 상품이었고  새 물건 그대로 언박싱 제품이었다.  그 이후 난 신랑에게 똑순이 인터넷으로 물건 잘 사는 마누라, 똑똑이 이미지를 나름 어필하는 사람이었다. (가방을 사기 맞기 전까진...) 


너무 억울한 마음에 인터넷에 0라다 이미테이션을 검색해서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았다. 내가 구매한 가격은 20만  다행인 건지 인터넷 A급 이미테이션은  25만 대의 가격대였다.  물론 내가 가진 이  이미테이션 가방이 A급인지 조차 모르겠으나 일단 인터넷보다 싸게 샀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가며 그 가방을 든 지 1년이 넘은 지금은 진실을 글에 고백해 본다.   



' 여보 나 헛 똑똑이야....' 






막상 일을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백수 일 때 보다 물욕이 없어진 듯하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부터는 무엇을 가져야겠다는 소유욕 보다,  매주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겉모습을 꾸미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 글을 올리려 했던 날에 글을 올리지 못하면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게 온다.  다른 일을 해서 스트레스가 풀리면 좋으련만 글을 쓰지 않아 쌓인 스트레스는 글을 써야 풀린다.  조금 병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하는데 이왕 글을 쓰기로 한 이상 벗어나진 못할 것 같다. 


오늘 퇴근하면서  의식 없이 바라다본 나의 시선에 꽂힌 가방을  보니 일 년도 더 넘은 일이 생각이나 글을 쓴다.

짝퉁에 속아 분한 화풀이로 꿎꿎이  열심히도 들고 다녔다.  지금은 짝퉁이니 뭐니,  그저 가방일 뿐이다.

오늘 훈련이라고 새벽 출근을 하신 신랑님은  또 새벽에 퇴근을 하신다니,  오래된 나의 사실을 밝히는 이 글은

신랑님의 눈에 띄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 과연 나는 신랑에게 쭉- 물건 잘 구입하는 똑순이로 남을 것인지,  똑순이 인 척했던 똥 멍청이로 정체가 드러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이전 03화 " 자기야 내 눈 좀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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