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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Jan 05. 2021

- 세상은 당신에게만 못되지 않았다

-  저 어린것의 못된 질문





" 나한테 꼭 그래야만 했냐!"


아줌마, 아주머니, 애기 엄마, 00 어머니, 00 보호자분!

내 나이 34살 아이 둘을 낳고 호칭은 수십 가지를 얻었다.  정확히 말하면  호칭들 속에 내 이름 세 글자는 점점 없어졌다. 요즘 시대에 누가 옛날처럼 그러고 사냐고? 내가 막상 닥쳐보니 지금도 아줌마의 사회는 옛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죽하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타이틀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고 2019년도에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저 공유가 좋아 영화를 본 내 주위 아줌마들도 영화를 보고는 공유의 얼굴보다는  내가 김지 영인지, 김지영이 나인지 너무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술이 당긴다는 반응이었다.


소설이 나오고 영화가 개봉된 그 시기에 화두에 올랐던 페미니즘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난 내 이야기를 빌어 나와 같은 아줌마들에게 들려주고 싶고,  또 말해 주고 싶다. 너무 잘난 사람만 살아남는 그런 이야기 말고 나 같은 평범한 아줌마가 참 치사하고 못되쳐먹도록 시린 세상에서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 순산 축하해요" 란 말에 가려진 퇴사 통보...

곧 다가올 5월 5일 어린이날에 첫째 아이의 선물은 뭘 사줄까 영상통화를 했고 어린이날에 맞춰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끝으로 집으로 갈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첫째를 데리고 있으면 몸조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해서 친정에 맡겨두고 몸조리를 한터라 첫째에게  얹혀있는 미안함을 곧 후련하게 내려앉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닥친 전화 한 통에  다 틀려버렸다.

"순산 축하해요, 병원이 어디라고 했죠? 화분 보낼게요, 아! 00 씨 육아휴직 낸 지 다음 주로 딱 1년 이던데  나올 수 있겠어요? 애기가 100일도 안돼서 어렵겠죠? " 


"...... 네, 그럴 것 같아요..."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입덧이 심해서 남들보다 일찍 육아 휴직에 들어갔고 , 나의 빈자리를  회사라고 언제까지 비워두고 손해 볼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 다른 누군가가 이미  내 자리에 앉아 내가 하던 업무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육아휴직이 끝나는 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애기가 토해놓은 배넷저고리를  힘도 들어가지 않는 손목으로 물에 헹구는 일,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끝날 시간에 맞춰 간식거리를 챙겨 놓는 일이 다였다. 그렇게  몸조리가 끝날 때까지 힘도 들어가지 않는 몸뚱이와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2019년 5월 2일 오후 3시 20분 조리원에서 축하전화를 가장한 퇴사 통보 전화를 받고 그동안 쌓아 놓은 스펙은 도로아미타불... 맨땅에 헤딩하듯 다시 탑을 쌓아 올리는 고군분투가 시작됐다.


집에서 가까운 직장을 구하되 지금까지 한 이력을 인정해주는 회사일 것!

연봉도 지금까지 받았던 금액과 비슷하게 주는 곳으로!

시설과 복지가 좋을 것!

주말은 마음 놓고 휴식할 수 있는 곳!

점심은 제공이 될 것!


현실은...... 내 나이 34 아이 둘의 엄마, 내가 갈 수 있는 그런 직장은 없다!  휴......

이 대한민국 땅엔  스펙 좋고 , 예쁘고 일자리 구하는 젊은이가 많으므로 나에게 까지 그런 순서가 올 틈이 없는 거다. 그래서 나도 해봤다.  어머님들이 다 한 번씩 거쳐 간다는  보험영업 ,  통신사 콜센터 , 카드 모집인 등 역시 만만치 않은 업무였다.


면접일 날,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을 모아 놓고 파견업체는  연봉을 높게 주는 직장이라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면서  면접 강도가 셀 거라고, 우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합격할 시에는 상품권을 지급해줄 거고 한 번 들어가면 일자리가 잘 나지 않는 꿈의 직장이라고 그렇게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해댔다.

5명이 1조로 주르륵 줄을 서서 면접을 보러 들어갔고  한눈에 봐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  남직원과 여직원이 앉아서 형식적인 면접을 질문을 던져댔다. 그 들의 눈에 보기에도 말발이 안 밀리거나 기가 좀 세 보이는 사람은 형식적인 질문을 , 이 직장 말고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을 법한 사람에게는  좀 센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대답을 못하거나 우물쭈물거리면 탈락시키려고 한 듯싶었다. (그런데 그 센 질문을  나한테 하더라... 참나...)


" 00 씨는  대기업 다니다가  여기 지원한 이유가 뭐예요? 연봉 보고 오셨어요? 보험 영업을... 아... 법인 영업을 하셨네.. 좀 험한 일 하셨구나.. 돈 많이 받다가 일반 직장 못 다니겠죠? "


질문을 듣고 좀 놀랐지만 (what? 이게 미쳤..ㄴ? 묻고 싶었...)   내색하지 않고 잘 앉아 있었나 보다.

면접은 무슨 정신으로 본 건지 모르겠지만 첫 출근은 했었다.  일이 너무 힘들어 입사와 동시에 퇴사하는 분이 있는 지점도 있다는데 내가 간 곳이 그러했던 모양이다. 연봉이 높았는데  그 이율 입사하고 1시간 만에 알 거 같았다.


가족 친지에게 전화해서 영업하기!

하루 3명 이상 판매 달성하기!  

가족 지인 전화번호 적은 리스트 팀별로 교환해서 영업하기!


그 안에서 실적 높은 사람은 직급이 팀 내 실적을 채찍질하는 사람의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잘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나의 시선으론 피라미드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입사와 동시에 퇴사했다.

(그리고 첫 출근 하고 알았는데 나와 같은 날 면접 봤던 아줌마들은  다 앉아 있더라... 떨어진 사람은 없는 거지...)


내가 짐을 싸는 순간에도 나를 처다 보거나 관심을 같은 사람은 없었다.

그저 ,  '또 한 명 나가네.'  익숙한 일인 듯 각자의 모니터를 쳐다보고 다음 다이얼을 돌릴 뿐이다.

다가와서 왜 나가는지 더 다녀보라든지 말을 붙일 사람도 틈도 없어 보였다.  높은 파티션 사이로 콩나물시루같이 붙어 앉아 오늘 들어온 사람, 어제 들어온 사람 , 그제 들어왔다. 나간 사람 그런 구분은 중요치 않은 듯했다.


솔직히 쌀 짐이라는 것도 없었지만  자리에 앉아 조용히 생각은 좀 했다.

' 내가 지금 나가면 후회하게 될까?' ' 지금 내가 나가서 다른 일을 구한다면 구할 수 있나? ' ' 오늘 하루 이렇게 나가버린다면 내가 너무 끊기 없는 사람이 되는 건가?"

하지만 한 가지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겠음에  벌떡 일어나 나왔다.

' 이 일을 몇 년 동안 해낼 수 있을까?  일 년에  집안 친지 식구들에게 안부 전화하는 것도 심호흡을 하고 해야 했던 소심이가? "


난 이 회사에 남을지 말지 고민조차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한낮에 회사 건물을 나서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회사 건물 밖을 다 나오고 나서야  든 생각인데,  이렇게 나올 줄 알았으면 그 면접을 봤던 어린 젊은이 면접관 보고 떨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지작 거리던 폰 케이스 겉면에 수지 사진이 왜 자꾸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한마디만 할걸....


" 야!  수지가 널 쳐다나 볼 거 같냐?  나한테 꼭 그렇게 질문을 해야만 했냐? "



 상처가 되는 하루보다는  그저 맥주 한잔에 잊을 수 있는 아줌마의 하루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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