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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Jan 13. 2021

- 야!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나의 사수 





아줌마의 세계는 오늘도 치열하다. 

아줌마의  하루는  전쟁통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침 출근 준비시간엔   아이와 하는 씨름에서 이겨야 제시간에 출근이 가능하고,  제시간에 출근을 했다면 그때부터는 나이 어린  상사와 눈치싸움 , 기싸움, 밀려드는 업무처리 시간과의 싸움까지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해  내 감정에 말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축 쳐진 빨래와 같은 상태로 퇴근길을 맞이함과 동시에 육아 출근도 같이 해야 한다. 



29살 첫 아이를 낳고 7개월 만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었다.  나름 금융권 쪽으로 경력직이었기에  직장을 옮겼어도 괜찮은 연봉과 복리후생을 조건으로 출근을 했었다. 큰 건물 , 쾌적한 사무실 , 빵빵한 간식거리가 즐비한 탕비실 적당히 여유 있는 연봉까지 만족스러운 이직이었다. 


단  한 가지!  나보다 어린 상사의 존재만 빼고... 



나보다 2살이 어린 그 상사는 결혼이란 제도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 진흙밭이라는 말을 늘 했었다.  

때문에 자신은  자기가  모은 돈으로 자신의 커리어 발전을 위해 쓸 계획이 늘 꽉 차있는 사람이며,  앞으로 3년 안으로 어학연수 겸 여행을 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처음 입사하고 회사 시스템을 배울 시기에  내 사수의 역할을 하면서  묻지도 않은 자신의 tmi를 마구 발설해 주었다.  

말이 많은 스타일이고 나이는 어리지만  회사 대표의 신임을 받아  나름의 위치에 선점했으며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 다른 자리를 찾아 떠날 때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면서  실장으로 자리매김했단다. (본인 입으로 그랬음...)  때문에 회사가 돌아가는  생리를 잘 파악하고 있었는데 , 그의 입을 타고 나오는 말은  신입 당시 알아두면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많았다. 때문에 귀가 피곤하긴 했지만 흘려듣진 않았다.

예를 들면  대표가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으니 선물을 할 때 견과류는  피하라던지 , 대표의 징크스 , 특히나 예민하게 구는 말투나 거슬려하는 행동들 또는  몰라도 될 사생활 같은 것도  말해주었다.



한날은 그녀는 회사 전산에 대해 설명하면서 내게 만져 보라고 시켜 놓고는  내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 00 씨 아기는 있어요? , 몇 명 있어요?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 등등 기본적으로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시작으로 신입 기간이  끝나 갈 때즘에는  " 왜 결혼했어요? " 내지는 "이렇게 바쁘게 살면 안 힘들어요? 후회 안 해요?"  또는 " 00 씨  보면 좀 안쓰러워요."  그런 말이었다.  내가 한 말이라고는  당시 아직은 아이가 1명 있고 신랑은 군인이며 , 28살에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생겨 다니던 직장을 빨리 그만두었지만  이 직장을 구해서  다행이다. 집은 좀 먼 편이라 일찍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다. 정도로  그녀가 물어본 대답에만 답을 했고 감히 질문은 하지 못했다. 







나는 사수고 00 씨는 신입이잖아요!
- 쥐어박고 싶은 나의 사수-




출근을 완료하고 전산을 켜면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아는지  저 멀리서 머그컵을 들고 내 자리로 오던 그녀는 늘 피곤하다는 듯  목을 좌우로  돌리고 기지개를 켜면서 내 자리로 오곤 했는데 ,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늘 

' 매뉴얼 대로만 알려주지 입을 안 쉬니까 피곤하지...' 란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두꺼운 매뉴얼을 내 자리에 올려놓고는  읽을 시간을 주고 본인은 카톡을 들여다보며  사적인 통화를 했다.  다 읽고  궁금한 점은 질문을 하라는데  나름 매뉴얼이 잘 만들어져 있고  전산을 만지는 단계별로 캡처를 해서 책을 만든 것이라  헤맬만한 사항은 없어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입이라 어떤 걸  알아야 하고  이런 건 그냥 skip 해도 되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딱히 질문이 없자 본인이  어떻게 처리를 하는지  시범을 보였다. 

전산 확인( 신청자 정보 확인) ->첨부서류 확인 ( 미비서류나 미비사항 확인) -> 가 확정 ( 서류 통과 전 다시 확인단계) -> 확정 및 승인.

절차를 보여 주는데 기존에도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 회사의 전산만 익히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에 익은 일이라는 듯  휘리릭- 서류를 처리했고 , 미비 사항 확인 시 이러이러한  신청자는 이런 게 미비하다며 딱딱 집어내는 사항마다 첨부해야 할 사항들이 걸려 나왔다, 


나름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고 신입의 입장에서는 천천히 자세히 설명해주는 사수가 더 끌리는 법이라 그다지 동경의 마음으로 우러러볼 만큼은 아니었으나 일 처리가 빨랐던 것은 인정하는 바였다. 내가 느낀 바로는 천천히 세세히 알려주고픈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중고 신입에  나이도 본인보다 많으니 눈치껏 알아서 하겠지(?)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신입 기간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업무량이 배정되었다. 나름 신입시절 적당히 봐주었으니 이제 경력직의 구력을 발휘해보라는 뜻인지 신입이 끝남과 동시에 제 시간 퇴근도 자연스레 반납되었다. 여섯 시가 퇴근시간이었으나 나의 사수가 퇴근 준비를 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퇴근을 하려고 하지 못했다. 나와 같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엄마들도 있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일에 중독된 미스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려 일을 하려면 회사 밖에선 나 또한 그들처럼 행해야 했다.



한 날은 유독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었는데  미혼 선배(나이는 나랑 동갑이다)가 내가 처리한 서류를 보다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서류를 보다가 확인 누락 사항이 있어 보충을 했는데  내가 본 서류가 모두 그 사항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빠진 사항에 대해 교육을 다 받지 못한 건지 확인해야 할 것 같다며 내가 처리한 서류를 분리했다. 이미 며칠을 그렇게 일을 해왔는데... 모든 서류를 다시 들여다봐야 할 상황이 생겨버린 것이다. 


미혼 선배는 방대한 양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대표님께 말씀을 드렸고  나는 당연 대표실로 불려 들어갔다. 대표는 신입이면 당연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사수를 같이 불렀다.  사수는 대표실에 입장과 동시에 얼굴이 붉어지더니 본인은 제대로 교육을 했다며 입장을 피력했다. (얼굴엔 조금만 뭐라고 하면 울어버리겠다!...라고 쓰여있는 듯 보였다)

대표님은 아무리 경력이어도 회사를 옮기고 시스템을 익히기 전 까진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 꼼꼼히 잘 교육을 해달라고 말씀하셨으나 사수는 자신의 신임을 깎였다 생각했는지 드디어 울음이 터져선 말을 쏟아냈다.



" 대표님 00 씨는 제가 교육을 해도 질문을 안 해요,  일을 배우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일 하면서도 쓸데없는 얘기만 하느라 시간 다 가는데 뭘 배우신 건지 저도 모르겠어요."



" 네? ( 이게 무슨...?   내가 만만하니?)



그 사수는 대체 뭐가 그리 억울했는지 자신은 나에게 많은 말을 하면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워낙 말이 많은 사람이라 내가 흘렸나? 싶었지만 다행이게도 다시 신입으로 돌아가 배우는 불안한 마음에 필기를 한 메모장이 생각났다. 대뜸 메모장을 들어 소리 나게 낱장을 넘겼다 빼곡하게 정리된 메모를 본 동갑 선배는  그냥 말없이  대표님께 건넸고, 대표님은 사수에게  필기한 사항을 보니 00(사수)이 잊고 전달을 안 한 거 같으니 같이 터 진일을 수습하라고 하셨다.

대표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자마자  사수는 내게 쏘아붙였다.



" 00 씨 저는 계속 이 일을  해서 처리가 빨라요, 안 보는 거 없이 다 보고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잖아요! 아무리 경력이어도 이 회사에 왔으면 잘 배우셔야죠!"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상사고 일 가르쳐준 사람에게 예의가 아닌 거 같아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한동안 불편한 시간은 계속되었고, 잘 못 된 일처리를 하는 동안까지도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야근을 하는 내내 ' 애가 가다리는 거 아니냐, 두고 가봐라.' '내 결혼한 친구는 밥한다고 나랑 톡을 안 한다 00 씨도 가서 저녁해야 되는 거 아니냐.''맨날 퇴근이 늦어져서 신랑하고 사이가 멀어지겠다는 둥' 생각해 주는 듯하는 말에 풍기는 뉘앙스는 '결혼한 여자는 직장생활에 민폐야'라고 하는 것 같아 기를 쓰고 일을 했었다. 

회사라는 곳은 결혼을 한 여자와 미혼인 여자가 동등하게 역량을 겨루길 원하므로 내 상황을 봐달라 말하기가 자존심 꺾는 것 같아 말하기 싫었다.


그렇게 2년 이란 시간을 보냈고 나의 사수였던 그녀와는 끝내 친해지지 못하고 그저 출근하면 인사치레로 눈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로  지내다  나의 이사로 인해  퇴사를 해야만 했다.








"야 됐고! 우리 계급장 떼고 한 판 하자!"





며칠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점심시간에  삶은 달걀과. 방울토마토를 먹었더니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할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남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잡아드는 순간 팔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 00 씨! 오랜만이에요! 여기 어디서 일하나 보다 무슨  일해요? "



나의 사수였던 그녀였다.

내가 알던 모습과는 많이 변해 있었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지만  스타일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요기 산업단지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실장님은요? "



" 아, 저는 지금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쉬고 있어요 ,  한 달 전에 요 근처로 이사 왔거든요!. "



이런저런 형식적인 안부를 몇 가지 묻고  가던 길을 계속 가려는데   그녀는  나를 붙잡고 폰 번호를 물었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얼른 알려주고 자리를 떴다.  회사에 돌아와 업무를 시작할 때쯤 톡 이 왔다. 


' 00 씨 오랜만에 얼굴 봐서 반가웠어요,  요 근처 사니까 종종 마주칠 수도 있겠다.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를  시작으로 수다쟁이 그녀는 톡에서도  자신의 그동안의 행적(?)과 흐름을 마구 발설했다.  흐름을 적당히 끊으려 답을 하지 말까 했는데  나름 직장 상사였다는 그 시절의 군기(?)가  생각났는지 모질게 끊어내진 못했다.  


그 후로  종종 카페에서나 편의점에서 마주치는 일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긴 톡은 계속됐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난 뒤  편하지만은 않지만 미워했던 마음은 많이 녹아들었다. 그녀의  톡 프로필엔  신랑과 함께 찍은 사진 ,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진,  종종 본인의 얼굴을 찍은 프로필을 돌려가며 바꾸다.  어느 날  아기집 초음파 사진으로 배경이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결혼은 진흙밭이라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던 그녀가 , 자기 계발로 해외로 나간다 했던 그녀가,  결혼을 하고  일을 쉰다,  아기를 안 좋아한다던 그녀가 초음파 사진을 올리고 '찰떡이'라는 태명으로 본인의 프로필을 소개한다. 


참나... 피식 웃음이 났다.  ' 나나 , 너나... 다를게 뭐냐고'



참 불편했던 관계였지만 회사 밖이니 만큼 이제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  않은가... 하는 마음으로 , 또 인생에선 내가 선배지하는 마음으로  이제 막 줌마의 세계로 뛰어든 그녀가  앞으로 겪을 일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해서  전보다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들고 친해진다 싶으니  슬슬 본색이 나왔다. 

결혼을 해서 일하는 여자 따로 있고 , 본인처럼 실속 챙겨서 결혼하는 여자들은  고생길 굳이  안 걸어 들어간다는 말을  시작으로 한참 자기 자랑을 한다.  



" 00 씨  둘째 낳고 얼마 만에 일 나갔다고 했죠? 아... 그렇구나 ,  난  워낙에 신랑이 일 나가는 거 안쓰러워해서 집에 있으래요,  가져다주는 생활비로  아기 키우고 ,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사람이  일하는 게 돈 때문만은 아닌데 그렇죠?  근데 또,  지금  굳이  추운 날  출퇴근하는 게 싫기도 하고 뭐 그래서 쉬고 있어요. "   



" 아 부럽네요,  추운 날 일하고 싶어서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



" 그러게요,  그러고  보면  울 신랑 같은 사람  만난 게  복이죠 뭐 ,  여자는  여우짓을 해야  시집 잘 간다는 말이 맞나 봐요." 



이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별로였다.

 '  나  나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는데 그녀의 눈엔 어떻게 보인 걸까?..'

좀 친해졌다 생각해서 요즘 나의 삶은 이러저러해서 힘들다는 넋두리 좀 했는데  이야기의 결말은  그녀의 자랑 라이프라... 

역시 사람은  안 변한다. 속 뒤집는 말을  뒤집게로 뒤집듯 쏙쏙  잘도 뒤집는다. 


예전보다 밉지는 않은데 ,  더 친해지기 전에 한마디 하고 싶다. 







야!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아줌마 #직장 #워킹맘 #현실세계 #육아 #직장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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