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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Jan 05. 2021

- 너에게 하고 싶은 말

-  너는 코스모스인걸!






너는 개나리 말고 코스모스야   너의 계절에 맞게 피면 돼!



최근에  꽂힌  한 구절이다.  스타트 업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였다.

봄에만 피는 꽃은 없다. 맞는 말이다.  봄에 피우는 꽃만 있다면  세상은 아름답지 못했을 것이므로.

사람도 같다. 당신이  봄에  피는 꽃이라면  나는 코스모스였으면 좋겠다. 아니 피울 수 있는 꽃이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 친구와 단둘이  캠핑에 다녀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  십 년 도 더 넘은 기억 속의 우리밖에 생각이 안 나 시끌벅적 생기가 넘치고, 밤새 술을 먹으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흉내 내거나  웃긴 얘기에 깔깔거리며 밤을 새울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우리는 불멍을 하면서 아무 말이 없이 한동안을 앉아 있었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서른을 넘긴 나이의  아줌마 둘은 조용한 침묵 속에서 오는 고요함에 힐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 나는 요즘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게 버둥버둥거리는데 , 시간은 잘만 가네."



친구는  한 달 전까지 대기업의 비서를 하고 있었다. 최근 어려워진 경기 탓인지 그 큰  기업도 지점을 정리한다며 친구가  다니던 회사를 서울 본사와  합친다고 했다. 때문에  친구는 7년간 다니던  대기업 비서에서  하루아침에  전업주부가 되어 버렸다.


처음 며칠은 휴가를 낸 것처럼 지냈고, 일주일 후부터는  실업자가 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틈을 안 주려고 이력서를 넣었다고 한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이력서를 넣은 회사들은 하나같이 연락이 없었고,  그만둔 전 회사는  다른 지점으로 출근이 괜찮으면 와 보라고 했다가  적임자가 있어  미안하게 됐다고 답을 주었다고 한다.  



아직 아이가 없는 그 친구는  일을 하지 않는 자신이 어색하다며 말을 이었다.


불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어색이라는 단어 속에  방향을 잃고 헤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위로의 말을 할까 하다 오히려 그게 더  위로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술잔을 부딪히고 입을 다물었다. ' 나는 더 들어줄 준비가 됐으니 어디 한 번 말해봐 '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  요즘 들어 내가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십 대까지만 해도 직장 옮기는 거 심각하게 생각 안 하고,  사람 눈치 보는 거 잘  안 했거든? 근데 이제는 못 그러겠더라.."



" 그거 나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니냐? '



" 그런가? '



" 나 얼마 전에 장도연 나오는  프로그램 봤거든? 근데 거기서 장도연이 자존감 낮아질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방법을 알려 주는데  뭐라 그랬는 줄 알아? "



" 뭐라 그랬는데? "



" 여기 있는 사람들  나 빼고 다 X밥이다!라고 생각하세요. "



친구는  맥주를 뿜으며 웃었다.  놀러 와서 처음 보는 진짜 속에서 올라오는 웃음이라 나도 낄낄 댔다. 이제야 우리 같았다.











조용한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소리라  예상을 못했던 건지 , 아니면  장도연이라는 개그우먼이 방송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게  안 믿어져서인지 알 수 없지만, 어디가  그 친구의 웃음 포인트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포인트는 오직 내 친구의 -빵 하고 맥주 거품과  같이 터져버린 웃음이었다.



앞으로의 전성기가 없을까 봐 미래가 불안하다 했던 내 친구에게  나 또한 그러하다고 같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직 ' 우린 너무 젊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방송에 나와  생각지도 못한 단어로 모두를 헉- 하게 만든 장도연이라는 개그우먼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나보다도 많은 나이의  그 사람은  희극인이라는 타이틀 뒤에 감춰진 불안정한 인기라는 거품에 대해 누구보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사람 아닐까?...  


아이돌이 봄에 피는 개나리 같은 느낌이라면 무명을 딛고 서른이 넘어서야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희극인들이야 말로 뒤늦게 피는 꽃을 보는 느낌이다.


갓 스무 살이  되기도 전부터 일을 해 온 내 친구는  촛불처럼 흔들리는 자신의 위치가 너무 초라하다고 했고 , 한치도 더 나을 것이 없는 나는 감히 위로하지 못한 밤이었지만  장도연이라는 희극인의 발언을 빌어 빵- 터진 웃음을 웃은 밤 이기도 했다.



웃으라고 한 말은 맞지만 살다 보면 필요한 마인드 아닐까?......


이미 나의 봄날이 지나간 것은 아닌가 스스로 작아지기보다  나의 계절은 가을이니 나의 시간에 맞춰 가면 된다는 마인드 갖기!






" 오늘만큼은 내가 니 X밥 해줄게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






 ' 너와 나의 봄이 지나갔을 수도 있지 , 그래도 너와 내가 코스모스 일 줄은 아직 모르는 거 아닐까?


나도 너 보다 한 치 앞을 걷는 사람이 못되기 때문에 위로를 해주진 못했지만 응원은 해주고 싶어.


봄에 피는 장미나 개나리가 아니면 어때! 이리저리 흔들려도 예쁜 곳을 피우는 코스모스가 되면 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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