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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Jan 11. 2021

 재미의 최고봉은 돈 쓰는 재미지!

- 난 돈 쓰는 게 좋은,  그런 여자야! 














나, 요즘 사는 게 재미가 없어.
- 내 친구 애기 엄마-








한동안 그랬다. 직장을 잡고  정신없이 적응을 하다 보니  일 년이 다 가버렸다.  일도 이젠 서툴지 않게 혼자 처리가 가능하고, 더불어 직원 한 명이 휴무를 낸다 해도 당황할 만큼의 일은 생기지 않았다 느낄 만큼 별의별 일들이 그저 조금 귀찮지만 해결할 수 있는 예삿일이 됐다.  재작년 내가 사는 곳 가까이 일을 구할 때까지만 해도  일자리만 생기면 허전한 내 마음과 자존감이 가득히 채워질 줄 알았지만  신기하리만치  연말이나 연초엔 늘 무언가 허전하다.



나만 그런 건가 싶어  톡 수다 멤버들에게 ' 난 추운 연말에 꼭 뭔가 허전해'라고 화두를 던졌다. 멤버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마음 이라며 대화를 이었다. 코로나라 여행을 못 가서 허전하다는 친구, 연말엔 늘 쪼들리는 경제상황만 생겨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친구, 연말만 되면 일 년 생활사를 트집 잡는 남편이랑 한바탕 하는 자영업자 친구,  집에 식구가 많아 연말에 집안 행사며 시댁 일에 불려 다니는 친구, 새해에 학교를 보내야 하는 애가 있는데  직장 때문에 학원을 여러 군데 알아봐야 하는 친구까지.  저마다 각각 원인과 이유가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답을 가진 문제들이었다. 



" 나 요즘 사는 게. 재미가 없어."



코로나로 재택을 하다가 그 마저도 힘들어진 회사 사정으로 그만두게 된 친구가 던진 말에 다른 친구가 답 했다.



" 나 재 왜 저러는지 알지."



다른 친구가 "나도 사는 게 재미없어"라고 하자 답을 단 친구는 그 친구 또한 왜 그런지 안다고 답을 달았다.



"너네 요즘 다 돈 쓰는 재미가 없어서 그래."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나는 직장을 옮기고 줄어든 월급 탓에 빠듯 해 졌고, 친구 하나는 직장을 그만뒀으며, 다른 친구는 집안 행사가  연말 연초에 몰려있는데 코로나 탓에  모이진 못하니 돈 봉투라도 해야 한답시고 쪼들리는 중이며, 친구 하나는 자영업자로  지금 시국에 문 안 닫고 버티는 것 만으로 미션을 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아! 역시 생이라는 것은 소비인 것을...



난 늘 연말연초에 돈이 많이 나갔다 친정식구들의 생일이 연말 연초에 몰려있고, 연말엔 인사치레 차 선물할 곳도 많아 지출이 커지는 탓에 허리띠를 나름 졸라매는 생활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연말쯤이 돼야  세일도 시작하고 이월 상품도 풀리고 안부라도 묻는 모임이 생겨나  추레한 몰골을 재정비해야 할 상황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 모두를 여유롭게 챙길만한 사정이 안되니 늘 이 시즌엔 빈곤함을 넘어서 경제적 허탈함을 느끼는 듯하다.


다들 사는 사정이 비슷하다 보니 연말연초 시즌엔 사는데 재미를 못 느끼는 거다.



엊그제 가스비를 내고, 보험료가 빠져나가고 이것저것 나갈 돈이 나간 뒤였는데 예상보다 가스비가 덜 나가서  4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 남았다. 


'올 이 정도면 저번 달은 선방했고만!' 나름 주부로써는 뿌듯했지만 썩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친구의 말대로 돈을 좀 쓰면 나아지려나 해서  ' 돈을 어떻게 써 볼까, 식구들하고 맛있는 걸 먹을까?, 아냐... 이건 식비에서 쓰고, 그럼 머리를 할까? 아냐... 괜히 갔다가 돈만 더 나올 거 같고,  애들 내복을 하나씩 살까? 에이... 내복 많은데...' 많지도 않은 꼴랑 4만 원도 안 되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고민을 하는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이왕 쓰자고 마음먹었는데 못 쓰는 나 자신이 짜증 났다.



'  왜 이래 정말 언제부터 이런 캐릭터였다고!'



당장 핸드폰 어플을 켜고 *팡에 들어갔다. (그럼 그렇지 나는 없어서 못 쓰는 사람이었던 것을...)

겨울이라 그런지 옷 종류도 니트 하나만 골라도 5만 원 돈, 싸다 느껴지는 것도 3만 후반대였다.

그나마 저렴한 노란색 니트 하나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니트를 보고 나니 니트랑 입으면 잘 어울릴만한 청바지가 보였다. 가격은 2만 6천 원 이 정도면 뭐.. (하나 사입을 수 있지...) 장바구니에 담았다. 계산을 할까 하다가  바지 안에 입을 밍크 레깅스를 추천받았다. 가격은 1+1에 9900원 (오! 이건 사야 해!) 레깅스까지 담자 이어서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털로 감싸진 내피로 된 부츠를 추천, 가격은 2만 5천 원(이건 필요한 거잖아!) 부츠를 신고 포인트를 줄 덧신 양말세트 1만 2천 원 = 십만이천 원;;;


'내가 이 정도도 못 쓰는 바보는 아니었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결제.....






결제를 해놓고 보니, 돈이 더 나올 까 봐 못하던 머리도,  식구들과 맛있는 걸 먹을까 고민하던 나도,  내 새끼들 내복을 살까 고민하던 모습도 부질없이 허상에 후- 하고 바람 불듯 사라졌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지만 또 '쓸데없는 것을 산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리 큰돈을 쓴 것도, 사치를 부리는 명품을 산 것도 아닌데 나는 지금 생(生)의 재미를 위해 결단을 한 거라며 위로했다.



예전에 엄마가 홈쇼핑에서 샀다며 속옷을 박스로 꺼내서 보여 준 적이 있었다. 


" 엥? 엄마가 이런 걸 입는다고? " 


 핫핑크 레이스에 망사, 형광 호피무늬가 들어간 브래지어....  낄낄 대며 웃었더니 엄마는 머쓱했는지



" 나는 마음에 드는 게 몇 개 밖에 없었는데 꼭 세트로 팔더라 홈쇼핑은.. 난 이런 거 안 입으니까 너 입으면 가져가라고."



" 아, 이런 걸 어떻게 입어! 사이즈도 다르고!"



" 안 입으면 말어!"



주섬주섬 속옷을 다시 챙겨서 박스를 슥- 밀어 넣던 엄마의 모습을 꼭 내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꼭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여자라면 입고 싶을 수도 있는 건데.... 엄마도 사는 게 재미가 없었을 때가 있었을 테지, 엄마도 일탈이랍시고 이런 속옷을 사 봤겠지... 엄마도  나처럼 이랬겠지...' 싶었다. 


' 일 년 열두 달 일하면서 이 정도도 못 쓰고 살면  무슨 재미로 살았겠어....'



그냥, 나는 배송되어 오기 전까지 설레기로 다짐했다. 

돈이 많아  걱정 없이 막 쓰면 좋았겠다마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 생(生)의 재미를 잃어 간 것이 맞는지 확인도 하고, 맞다면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재미를 느껴서 나의 일상에 활력이 좀 돌아야 나도 오래도록 지치지 않는 워킹맘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택배를 기다리는 동안은 내내 기분이 좋았다. 오늘 올는지 내일쯤 받아 볼는지,  지금쯤 어디쯤 오고 있을지  틈틈이 들여다보는 내내 소소한 설렘도 느꼈다. ' 아 나는  돈 쓰는 재미를 느껴야 힘이 나는 사람이구나... '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다음 주엔  엄마가 가지고 싶은 것도 하나 선물해야지!



이런 게 돈 쓰는 재미고 맛이지!





#일상 #돈쓰는맛 #줌마라이프 #엄마 #워킹맘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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