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방문 닫고 타 다다- 자판을 치는 마누라의 꿍꿍이가 무언지 몰라도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해라' 하는 마음이 참 고마운 사람이다.
오늘 애들 방을 치우다 보니 널브러진 장난감들 속에 딸아이의 인형이며 작은 애의 뽀로로 마이크며 손이 참 많이 가네 생각했는데, 다 신랑이 사준 장난감들이었다.
자기가 어릴 땐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가져 본 적이 없어서 속상한 일이 많았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에겐 좀 과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장난감 인심이 후 한 편이다.
애들 방을 실컷 치우고 나오니 거실 한편에 널브러진 신랑의 오래된 트레이닝 복이 마음에 걸렸다.
군인 신분의 신랑은 전투복 외에는 늘 오래된 삼디다스 트레이닝 복을 입는다. 주말마다 가는 친정집 경비 아저씨는 신랑의 직업이 체육 선생님인 줄 알았다 하셨단다, 그 이야길 엄마한테 전해 들었을 땐 떠나가라 웃었었는데 벌써 4년 전 일이다.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신랑은 아직도 그 트레이닝 복을 입고 다닌다. 무릎에 구멍이 나고 보풀도 일고, 팔목 부분은 오래된 묵은 때가 앉았다. 이제 보니 색도 좀 바랜 거 같다.
2년 전 신랑을 데리고 옷을 사주겠다며 쇼핑을 갔다가 가격표를 보고는 헤엑- 너무 비싸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냥 안 사겠다고 버티는 신랑이 참 미웠던 적이 있었다. 앞으론 알아서 사 입으라고 톡- 쏘아붙였었다. 알아서 하겠다더니 그 후로도 옷을 사 입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옷을 사 주기도 하는데 아낀다며 가끔 기분전환 겸 데이트 때 빼고는 늘 트레이닝 복 차림이다.
" 어우, 뭔 궁상이여 좀 사 입어! 누가 보면 우리 되게 없는 줄 알겠어 자기야."
" 이건 내 트레이드 마크야, 이게 편해."
" 으휴."
해마다 하는 입씨름에도 변화는 없다.
아이들의 장난감은 해마다 늘어가고, 내게도 가끔 꽃 한 송이씩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연애 시절엔 멋도 잘 부리는 멋쟁이였는데... 본인 옷 사 입는 거보다, 애들 하나라도 더 좋은 거 해주는 게 남는 거라는 사람.
- 널브러져 있는 꼴이 보기 싫어 몰래 확 내다 버릴까 하다가도 꼭 신랑의 마음을 내다 버리는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
내가 아직 철이 없는 건지 멋을 좀 부리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조금씩 흘리는 말을 해도 요지부동의 그 매무새다. 그래 놓고는 최근에 노트북에 두 손을 구겨 넣고 자판을 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키보드를 선물했다.
몇 가지를 골라보라기에 저렴한 가격에 무난한 것으로 골라서 보여줬는데 이게 뭐냐며 비싸도 제대로 된걸 사라며 퇴짜를 놓았다.
"누가 누구한테 그런 소릴 하냐."
결국엔 말도 안 되는 가격대의 키보드를 일부러 찾아서 보여줬다. 키보드 가격이 비싼 것은 490만 원이나 하는 것도 있었다. (대체 가격이 왜 이런 건지 아직도 1도 모르겠다.) 결국 내가 고른 몇 가지 중에 마음에 썩 들진 않는 눈치였지만 그나마 가성비가 괜찮다 싶었는지 이것으로 초이스 해주었다.
집으로 배달되어 왔을 땐 마냥 흥분해서 촐랑촐랑 거리며 좋다고 실실 거리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어 보였다. 내 딴엔 이 정도 액션이면 선물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써 뿌듯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내가 선물해 준 것은 몇 가지 없다. 주로 생필품을 선물하는 쪽이라 비싸고 폼 나보이는 건 없는 것 같다. (비싼 선물은 결혼할 때 해 준 예물 정도...) 막상 내가 선물을 해 주려 해도, 이젠 신랑의 취향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러면 안되는데......
어렸을 때나, 아이 아빠가 된 오늘이나 여전히 다 누리고 살지 못하는 거 같아 마음이 쓰이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