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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Jan 05. 2021

별거 아닌 일상에서 별거 찾기

- 단 한순간도 위로받지 않은 적은 없었다.


요즘 나의 머릿속엔  뒤엉켜 풀리지 않는 실뭉치가 하루 종일 굴러 다닌다.

엄마의 당뇨 판정 ,  외가 식구의 코로나 판정  , 언제  휴원 할지 모르는 아이들의 어린이집 문제 , 할머니의 혈액암 판정, 꼬박꼬박 나가는 생활비,  당장 이번 주 내로 보고해야 하는 회사 제품의 재고 파악 ,  연말에 인수받게 되는 아마존 셀링의 책임자 역할,  새 상품 광고 마케팅 ,  점심을 굶어가며 통화를 해도 답이 없는 문제들....



퇴근을 하고 손을 씻음으로 시작하는 육아 출근,   가방을 내려놓고 얼른 쌀을 씻어 밥통에 밥을 안쳤다. 소파에 잠시 기댈 틈도 없고,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아이들의 입에 간식을 물리고 밥상 차릴 시간을 번다. 아직 말도 못 하는 20개월 막둥이 녀석이 엄마의  부엌에서 알짱거린다.  콧물을 훌쩍이며  내가 차려놓은 반찬통을 들었다 놨다. 가지런히 놓은 수저를 들어서 흩뿌리고  일부 흘린 음식을 주워 먹으며 주위 소파와  담요에 음식이 뭍은 손을 비벼 놓았다.


"안돼! "


단호히 힘을 주어 말하는 엄마의 톤은 이제  먹히지 않는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만큼  사고를 쳐야 직성이 풀린다.

순간 욱 하는 마음에  소리를 치지만  엄마가 욱하는 마음에서 뱉었다 이내 삼키는 뒷 말을 20개월짜리 아이가 알아줄 리 없다. 순간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퇴근하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 것도 신랑이 아이들을 케어하지 않으면 문을 열어놓고 일을 보거나  아니면 참아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같이 사는 양반도 쉽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은 같은 일일 테니  굳이 붙잡고 앉아서 나 이렇게 힘드니까 호강시켜달라고 하는 것도 웃기단 생각에 그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히 임하는 자세로 이건 너 저건 내가  각자 분담으로 육아를 해낸다.


몸은 하루 종일이 짧은 사람처럼 종종 거리고 있는데 머릿속은 왜  물속에 잠긴 돌덩이 같은지  한참이 지난 시간에도 조금도 변화가 없이 무겁다.


" 자기야 요즘 왜 그래 , 어머님 때문에 그래?  당뇨는 관리만 잘해주면 건강히 지낼 수 있어  어머님 이제 그럴 수도 있는 연세야. "


"알아, 엄마 때문 아니야. "


" 그럼,  왜  삼촌이랑 외숙모 판정 때문에?  한규 볼 사람 없을 까 봐 그래? 아님 할머니 때문에? "


" 아니  "


" 그럼, 아.. 오늘 일이 힘들어서 그렇구나 그렇지  맥주 한잔 할까?"


" 아니 그냥 , 나 오늘 일찍 잘게."


신랑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다 맞는 이유였다.  한꺼번에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 몰아쳐서 너무너무 도망가고 싶은데  인정해버리면 그냥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바보가 되어 버릴까 봐  제일 가까운 신랑에게 조차 아니라고 대답해 버렸다.

'나는 어른이고 , 나는 엄마고 , 나는 해야 할 일들이 있고 , 해내야만  오늘 같은 하루를 이어갈 수 있으니 버텨야 한다.'

 

씻고  멍하니  침대 끝에 걸터앉아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만 마음이 머리의 속도를 못 따라가니 머리가 마음이 따라올 때까지 꿈쩍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누르고 있었다.


6살 큰 아이가  안방 문을 조금 열고 내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내  다리 위에  슬쩍 올려놓는 그림이 보였다. 어린이집 종일반을 다니고 있는 큰 아이는 4시가 넘어 시작하는 통합 보육시간에 꼼짝 않고 그림을 그렸단다. 늘 그림의 주제는 엄마, 아빠, 동생이다.  아빠는 트레이닝 복에 웃는 얼굴 ,  동생은 숟가락을 들고 무언가를 먹는 그림 , 엄마는 늘 구두를 신고 가방을 메고 있다. 생각해 보니 큰 아이가  3살 무렵 엄마 흉내를 낸 적이 있는데 그때도 가방을 메고 귀걸이를 하고 구두를 신고 늘 현관에 서서 인사하는 모습만  흉내를 냈었다.

 

"엄마 그린 거야? 엄마는 왜 맨날   가방 메고 구두 신고 있는 것만 그려 , 엄마도 운동화 신고  다른 옷도 입고 그러는데."


" 엄마는 이게 엄마지!."


"......... 코로나 끝나면 우리 놀러 가자.  동물원도 가고 , 키즈카페도 가고 , 물놀이도 가자."


" 엄마 갈 수 있어? "


"............. "


" 엄마 일 다 끝나고 안 바빠지면 그때 가도 돼! "


쉽게  '그럼' 하고 대답하지 못하는 나다.  열심히 산다는 핑계를 대고 주말엔  평일에 처리하지 못한 일처리를 하고 관계를 위한 약속을 하며 평일 퇴근 후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놀아준 적이 없이 살림만 하는 엄마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 나 진짜 뭐 하는 사람이지?... 6살 이면 이제 뭘 해도 기억이 날 나인데 , 우리 아이한테 나는 해준 게 없다... 우리 엄마 아빠 젊고 건강하던 그때,  이곳저곳 많이 놀러 다녔던 기억 ,  사진이 그렇게도 많은데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


눈물이 날 거 같아 큰 아이에게  세수를 하고 오라며 내보냈다. 자리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신랑은 푹 자라며  불을 꺼주고 방문을 닫아 주었다.  한참을 눈 감고 있었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잠시 뒤 안방 문이  조금 열리더니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  엄마! "


뒤집어쓴 이불 사이로 불쑥 작은 손이 들어왔다. 그리곤 이불을 제치더니  씩 웃는 작은 아이가  손바닥을 보여준다.


" 아"


귤이었다.  내  입으로 불쑥 귤을 밀어 넣더니  만족했다는 얼굴로  날 쳐다본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눈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아직 귤껍질을 까지 못하는 아이가  이렇게  깔끔하게  깔 리 없는 귤의  낱알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 이거 누가 줬어?  아빠가 줬어?  왜 귤이 반 밖에 없어?  애기가 먹었어?"


" ^___^  네! "


위로받지 못하는 하루를 보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고  몇 날 며칠을 보냈었다. 어른이니까 이 정도의  상황은 누구나 겪는 거다 , 당연히 이겨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나는 한순간도 위로받지 못하는 순간이 없었고 ,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머릿속  돌덩이도 , 풀리지 않는 실뭉치 들도 그저 지나 보내면 되는 거였다.


꼭 안아주지 않아도 ,  술에 취해 깊은 속을 드러내 놓는 자리가 아니어도 ,  투박하고 건조하게 방 불을 꺼주는 배려가 ,  못하는 대답에도 웃어주던  아이의 웃음이 , 작은 손에 쥐어진 귤  몇 알이  오늘 내가 받은 최고의 따뜻함이다.







< 수고했어 오늘도 >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 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라랄라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

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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