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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Jun 20. 2024

얄미워!!

딱히 죄는 없습니다만...




요 근래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

영화관 못 가본 지 한참 됐는데,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를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혼자 어딘가에 빠져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누리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대는 게 맞을 거 같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혼자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실제적으로 하고 있는 것도 많다. 그렇기에 하루에 해내야 하는 일이 많은 사람인데, 사람이다 보니 제풀에 혼자 꺾여 지치는 날이 있다. 

꼴에 자존심은 뭐가 그리 센지 스스로에게 지는 기분이 들어  수긍되는 핑계가 아니면  오늘 목표로 한 일들을 해내기 전에는 잠이 안 온다. 

때문에 오늘같이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만 해야 것이 산더미 같이 밀려 있을 때에는 고개가 끄덕여 질만한 핑계를 만드는 게 최고다.


창의력 부족한 아줌마 머리에서 나온 수긍 가는 핑곗거리는 많지 않다. 

오로지 나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핑계를 대고 나서 나의 짝꿍에게 독박 육아를 씌우면서도 미안하지 않을 것, 나 스스로도 오늘은 그럴만했다고 고개가 끄덕여질 것.

그래서 고작 핑곗거리로 둘러대봐야 회사에 남은 일을 처리하고 들어가야 해서 늦는다는 연락을 하거나, 급히 처리해야 되는 일이 생긴 양 다음에 해도 될 일을 처리해 버리곤 오늘 아니면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해 버리거나 하는 일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3시간 4시간을 넘기지도 못하면서... 

딱히 잘못도 없는데 늦는다는 연락을 할 때 왜 죄인이 되는지 모르겠다.








딱히 죄는 없습니다만.....


딱히 죄는 없는데 짝꿍에게 일이 있어 좀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할 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 나 조금 늦을 거 같아. 아이들이랑 알아서 저녁 챙겨 먹고 있어'


' 아, 빨래도 조금 쌓여 있으니 세탁기도 좀 돌려줬으면 좋겠어. '


' 내일 작은 놈 어린이집 견학 가는 날이니까 간식도 좀 챙겨 줬으면 좋겠고.'


' 큰 아이는 준비물 뭐 뭐 필요한지 좀 봐줘봐.'


' 강아지 패드도 얼른 치우지 않으면 냄새나더라고 그것도 같이 봐줘.'


굳이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처리했을 거라는 것을 아는 일들이지만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으로 내버리곤 

미안해지고 만다.


" 응, 알았으니까! 일 잘 처리하고 천천히 와. "


 짝꿍은 늘 이렇게 따뜻하게 얘기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딱히 죄는 없으나 미안해진다.






그런데 말이야..



막상 OK!라는 허락이 떨어지고 신나야 하는 시간인데 

집에 돌아가기까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밥은 제대로 챙겨 먹은 건지, 아이들은 뭐랑 먹였는지, 혹시가 아이들을 봐주다가 혼내는 일은 안 생겼는지,

여러 가지 수를 놓고 생각을 하다 보면  괜한 일을 했나, 그냥 마음 편히 내려놓고 집에 가서 내 손으로 처리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라,  휴식도 필요하다. 또 나름 양심이 있어서 핑계를 대놓고 핑계가 아닌 사실인 상태로 일을 하고, 밀어두었던 일을 처리 해낸다. 

중간중간  혼자서 커피를 사 먹으며 잠시 멍을 때리는 순간을 즐기거나, 일 처리를 하며 돌아다니다 눈에 보이는 가게에 들러 액세사리며,  비싼 것도 못 사드는  배짱으로 이 옷 저 옷 만지작거리다 이내  싸구려 한 장 사들고 신나는 발걸음을 즐기는 사람이고, 뻥 뚫도로  위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드라이브 삼아 집으로 가는 길  시간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집에 돌아와 잘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예쁘고,  잘 먹이고 씻겼을 짝꿍에게 고맙다.

나보다도 애들을 끔찍이 여기는 사람이니 잘 놀아줬을 테고, 손에 한 번 잡은 일은 야무지게 해내는 사람이니  강아지 패드도 깔끔히 잘 치웠을거다.


" 고마워" 

" 고맙지? 나 같이 잘 도와주는 신랑이 어딨냐?! "


라고 말하는 짝꿍의 엉덩이를 토닥여주고 나면 보이는 게 있다.





저녁을 챙겨 먹는 건 좋다 이거야....


설거지는 안 하는 거니?

패드를 치우고 쓰레기통이 넘칠 거 같으면 쓰레기 봉지 꽉 묶어서 버려주지 그랬어..

애들 씻겨준 건 수고했는데,,, 벗긴 옷은 빨래통에 좀 넣어주지 그랬냐..

맥주 먹고 빈 통은 왜 자꾸 식탁 위에 그냥 올려두는 건지...  

먹은 반찬은 뚜껑 좀 닫아서 냉장고에 넣어주면 안 되겠니??

멍멍이가 물어다 놓은 장난감들 좀 정리해 주는 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나같이 잘 도와주는 신랑이 어딨냐고 하는데...'

왜 도와준다고 생각하냐!!

나도 너랑 하는 게 같은데  왜 너는 잘 도와주는 거고,  

나는 매일 하면서 미안해해야 하는 거지????

왜 너는 일 때문에 늦는다면 고생한다고 늦게 들어와서 힘든 티 팍팍 내는데

왜 나는 고마워해야 하는거지 ???????






짝꿍아 ... 

너  좀.. 얄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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