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터지는 새우는 나 일뿐이니...
똑같은 하루를 시작해도 매일 같은 날이 아니듯,
어제와 같은 루틴으로 시작한 오늘의 분위기는 어제와 다르다.
꼭꼭 숨어라! 눈에도 띄지 마라! 숨도 쉬지 마라!
출근과 동시에 사건이 터졌다.
나와 동갑인 유일한 동료의 실수...
물건 2개 세트 (4개) 중 주소지를 엇갈려 잘못 보내는 배송사고...
물건의 덩치가 커서 보내는 편도 비만 개당 3만 원 배송사에 따라 6만까지 달라지는 가격을 가진 그 제품...
엇갈려 보냈으니 제 주소지로 제대로 배송되려면 적어도 12만 원... 그에 비해 수리 비용은 절반 수준...
수리는 수리대로 해놓고 배송사고로 인한 배송비는 회사의 부담이기 때문에 손해 보는 장사가 됐다.
엎친 데 덮친다고 수리이력이며 통화 메모며 같이 쓰는 프로그램을 열자마자 첫 번째 장에 열린 페이지는
시간 순서가 엉망인 상태의 메모가 떡하니 열린다.
동료는 정리하려고 따로 메모를 해놓게 있다고 했지만, 이미 일은 터졌다.
그 페이지 위로 표정이 굳은 부장님의 얼굴이 겹친다.
이렇게 일이 정리되지 않은 때 사고가 터지면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해결 방법을 알 수가 없다.
특히 오늘과 같은 오배송 사고에 고객이 화가 치밀어 오를 대로 오른 경우에 전화를 당겨 받게 되는 날이면 회사 사람들 모두가 날이 선 상태가 되기 때문에...
본인도, 사무실도 분위가 싸늘하다.
상사의 질책을 듣는 당사자의 축 늘어진 모습은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럽지만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
특히 동갑내기는 그 친구와 나 둘뿐이라 어떤 건수(?)만 생기면 둘이 같이 묶여서 입에 오르내리곤 하기 때문에, 오늘은 특히나 조용히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지 않는 먼지처럼.
벽에 그냥 붙어있는 벽지처럼.
어제는 분명 평화로운 하루였는데, 시시콜콜한 잡담이 왔다 갔다 하는 조금도 다르지 않은 여느 날이었는데,
같은 날을 보내도 그 안에서 사건이 터진다.
평소 "00야 "부르시던 그 목소리가
"00씨 정신 안 차려?"
로 바뀌는 순간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
'이곳은 회사다.'
근무실이 1층인 동료는 사무실 식구가 모여있는 2층의 싸늘한 분위기를 벗어나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회사 단독방에 업무용 대화만 하는 상사들의 분위기를 보며 눈치를 볼 법도 한데
~ 다녀 오겠습니당!
~ 전화 돌려주세융!
~ 맞나염?
과 같은 말투를 쓰는 동료...
평소 밝고 싹싹한 성격이 참 좋다고 느끼게 했던 사람.
오늘만큼 만은,
'하.... 안 그랬으면 좋겠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옆 파티션 넘어 상사의 한숨 소리와 날선 질책의 소리가 들린다.
" 00씨는 지금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나 봐. 이게 개인적인 일이야? 일은 일대로 해주고 손해는 손해대로 나고 하루 허투루 일했는데 뭐라고 보고하려고... 참 밝다 밝어. "
당사자 없는 질책에 파티션 너머엔 얼어붙는 내가 있다.
당사자 없는 질책은 나보고 동료에게 가서 눈치 챙기라는 주의를 주라는 건지, 아니면 나도 조심을 하라고 하는 건지 생각 회로가 여러 방향으로 돌아간다. 한편으로는 사람이 밝은 건 나쁜 게 아닌데, 분위기가 너무 험악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가
" 저 내일 휴가 쓸게융! "
이라고 말하는 동료를 보는 순간 허업;; 입이 다물어졌다.
평소같이 "00야"라고 나긋이 대화를 건네주지 않는 상사의 태도를 보면 이렇게는 절대 말하지 못할 텐데,
이미 터져버린 사고를 수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3일은 걸릴 거라는 걸 잘 알 텐데,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말투와 모습으로 휴가를 말하는 그녀...
눈치를 보지 않는 모습이 멋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모르는 걸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 자기가 사고 쳐놓고 휴가 간다고 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처리하라는 거야 뭐야. 하... "
파티션 너머로 들려오는 한숨 소리
숨이 막힌다.
오늘은 조용히 벽지처럼 있다가 퇴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