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피카소
대망의 초대전을 준비하는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초대받은 만큼 더 성숙한 결과물을 선보이고 싶었고, 작품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했다. 전시는 1년 뒤였고, 그 기간이면 여유롭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작업 방식을 바꾸려던 즈음, 선생님이 개인 작업실을 마련하며 화실을 떠나셨다. 이제 스스로 방향을 모색하고 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변화의 시기마다 선생님에게 의지했던 터라, 갑작스러운 부재에 혼란스러웠다. 언젠가는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하필 선생님의 조언이 절실할 때라니 마음이 더욱 불안해졌다.
그럴 때 꼭 회사 일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칼퇴근이 가장 큰 장점이었는데, 새해가 되면서 자주 없던 외근에 잦은 야근이 연이어 생겼다. 거기에 우리 팀은 왜 이렇게 회식을 좋아하는지, 하필이면 올해는 워크숍까지 가자고 하는지, 눈치 없이 단합이 잘되는 팀이 원망스러웠다. 퇴근 후 그리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 주말에도 이어갔고, 결국 새벽까지 붓을 놓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 와중에 출장까지 다녀와야 하니,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말이 절로 나왔다.
선생님도, 시간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를 달래는 일이었다. 해낼 수 있을까? 의심에 가득 찬 물음표는 매일매일 나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당연한 소리는 그만하고, 그림에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응원했다. 그리고 나는 피카소라고 주문을 외웠다.
주문의 효과일까? 정신없이 준비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갤러리 관장님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사실, 관장님이 먼저 문자를 보내주셨다. 힘들면 삼겹살을 사주겠다며 파이팅을 외쳐주셨다. 열작 중이니, 전시 끝난 후에 냉면까지 풀코스로 부탁드린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바쁠수록 고기를 먹어줘야 한다는 친구의 유혹은 못 이기는 척 넘어갔다. 잘 먹고 힘내겠다고, 그림이 팔리면 한턱 내겠다고 허풍을 떨었다. 넉살도 하다 보니 점점 늘어가는 듯했다.
진도가 막히면, 함께 작업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선생님 찬스를 활용했다.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며 그래도 색감은 괜찮지 않나며 은근히 칭찬을 강요했다. 동료 작가들은 이런저런 의견을 보태주었다. 어떤 이는 달라진 스타일이 다소 어둡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예전 스타일이 더 좋았다고 했다. 하나하나 새겨들었지만, 이미 시작한 만큼 흔들리지 않으려 했다. (물론, 좀 흔들리긴 했다.) 그럴수록 더 단단해지려 했다.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고흐 못지않게 고독하고 초조했지만, 작업실 밖에서는 피카소처럼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되었다.
연말에 개인전 초대를 받고 다음 해 12월에 초대전을 열었다. 거의 1년을 준비한 셈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피곤했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체중은 5kg이 줄었고 전시작은 신작으로 갤러리를 가득 채웠다. 퇴근과 출근 사이의 모든 순간을 창작에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도 새롭게 시도한 작품들도 만족스러웠고, 회사 송년회에서 예상치 못한 팀 리더상을 받기도 했다. 꿈을 좇다 보니 이기적인 순간도 많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응원해 준 친구들과 내게 힘을 실어 준 팀원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물결쳤다.
작업에 파묻혀 고립된 줄 알았는데, 변화와 불안 속에서 오히려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다. 웬일인지 나는 더 이상 숨지 않고 도움이 필요하면 주저 없이 SOS를 외쳤다. 혼자가 익숙했던 내가 힘이 들면 누군가의 응원을 찾았다. 그림은 내게 혼자 있을 용기를 주었고 이제는 함께하는 지혜를 선물했다. 그리고 불안은 나를 성장시켰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