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에서 피카소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내가 딱 그렇다. 개인전만 하면 소원이 없다더니, 전시를 마치고 나면 또 다른 전시가 하고 싶어졌다. 화가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1년에 한 번은 개인전을 열겠다고 결심했으니,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대관전으로 시작했고, 이후 공모전을 통해 개인전 기회를 얻었다. 이제 갤러리에서 초대받아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초대전은 단순한 전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작가로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며, 초대한 화랑과 신뢰가 형성되면 지속적인 작품 홍보도 가능해진다. 운이 좋다면 전시 없이도 갤러리를 통해 작품이 판매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신진 작가에게는 초대 자체가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아트페어와 같은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기다렸다. 어디선가 나를 불러주기를 바랐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알면서도, 핸드폰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짧은 경력이지만, 여러 공모전과 단체전을 통해 인연을 맺은 갤러리들이 있었다. 문제는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품을 꾸준히 알리고 소식을 전해야 했지만 소극적인 나는 늘 마음만 먹을 뿐이었다. 친구들에게도 좀처럼 먼저 안부를 전하지 않는 나에게 미술이란 낯선 세계에서 관계를 쌓는 일은 크나큰 난관이었다.
피카소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림을 배울 때 화가로서 추구미는 고흐였지만, 이제는 그림으로 먹고살고 싶어 졌기에 피카소의 생존 전략이 필요했다. 롤모델을 피카소로 갈아탔다.
고흐는 생전에 작품을 거의 팔지 못한 채, 외롭게 그림에 몰두했다. 나 역시 그런 고흐의 진지한 예술 세계를 사랑했다. 네덜란드로 건너가 그의 해바라기를 보며 눈물을 훔친 적도 있다.
반면, 피카소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사교적이었고, 자신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직접 미술관에 전화를 걸어 능청스럽게 피카소라는 유명화가의 작품이 있냐고 확인했다고 한다. 웬만한 마케팅 전문가도 감탄할 전략이었다. 더 기가 막힌 건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나는 그림으로 억만장자가 될 거야."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돈으로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을 사랑하며 자유롭게 그리는 일에 만족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작품 활동을 지속하려면 현실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나 역시 처음엔 그리고 보여주는 즐거움만으로 충분했다. 전시를 거듭할수록 작업량이 늘어나고, 재료비 같은 비용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판매를 의식하게 되었다. 작품이 팔리면 다시 전시할 기회가 얻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기뻤다.
언젠가 나도 그림으로 부자가 되고 싶다. 아니, 부자보다는 돈 걱정 없이 자유로운 화가의 삶을 누리고 싶다. 그게 곧 부자인 거겠지.
그러려면 피카소처럼 뻔뻔하고 적극적으로 작품을 알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
일단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했다. 피카소처럼 사교적이면 좋겠지만 나는 관계에 있어서 천상 고흐다. 화가로서 살아가려면 그림만 그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 애지중지하며 만든 창작물을 직접 소개해야 했다.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보통 갤러리는 1년 전에 일정을 확정한다. 내년에 초대전이든 대관전이든 하려면 연초부터 움직여야 했다. 갤러리 리스트를 살펴보며 망설이는 사이 계절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연말 보고서를 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어느 행사에서 명함을 주고받은 관장님이 있었다. 그 덕에 홈페이지에 작품을 소개할 수 있었다. 틈틈이 소식을 전해야 했지만, 처음 몇 번만 연락하다가 점점 뜸해졌다. 신작을 업데이트해 달라는 핑계로 전화를 걸기에 딱 좋았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그저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그는 마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응답했다.
"오! 작가님, 내년 전시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혹시 저희랑 한번 하실 수 있을까요? 개인전으로요!"
마침내 그 순간이 찾아왔다. 그토록 바라던 제안이었다.
내게 습관적인 말버릇이 있다. 상대의 요구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정말요?’하고 반응했다. 한 번은 지적받은 적이 있었는데 딱히 특별한 의도는 없았다. 그냥 부산 사람 특유의 말버릇 같다. 이번에는, 냉큼 대답했다. “네! 좋아요!”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나의 모든 대답은 예스다!
초대 개인전이라니. 정말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건가? 테헤란로가 내려다보이는 창문 앞에서 ’ 야호‘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화를 끊고도 가슴이 두근거려 복도를 서성였다. 이 소식을 누구에게 전할까 고민하다가, 누구보다도 내 기쁨에 크게 공감해 줄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매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부산에 있는 여동생이었다.
"언니야, 진짜가"
피는 못 속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