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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작가 Sep 03. 2020

새아빠 호중이

엄마에게 남자가 생겼다.

엄마가 혼자가 된 지는 20년이 넘었지만, 본격적으로 엄마 혼자서 살게 된 것은 작년 가을부터다. 2천만 원 주고 산 아파트에서 5명으로 시작한 우리 가족은 아빠가 먼저, 병으로 떠나고 내가 서울로 독립을 하고, 둘째 동생이 시집을 가면서 엄마와 막내동생,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 사이 아파트는 2억이 되었고, 엄마는 막내동생마저 장가를 보내면서 자신의 집에 비로소 혼자 살 수 있게 되었다.  


 지난 9월, 나는 동생 결혼식에 맞춰 1주일간 연차를 냈었다. 팀에서는 네가 신혼여행 가는 것이냐며 놀려댔다. 시집도 안 간 큰 누나가 막내 동생 결혼식에 길게 휴가를 쓰는 이유는 하나였다. 가족 모두가 떠난 빈집에 엄마를 혼자 두고 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어두운 집에 들어오는 쓸쓸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엄마에게 적응 시간을 주고 싶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다음 날, 엄마는 여느 때처럼 다시 출근을 했다. 나는 빈 집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퇴근하고 와서는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 세탁기를 돌렸다가 이모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 옆에서 나는 엄마의 시간을 방해했다. 오늘 저녁은 외식하자고 했고, 산책하러 나가자고 꼬셨다. 하지만 엄마는 피곤하다고 했고, 빨래를 널었다.


 1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혼자서 대충 저녁을 차려 먹을 엄마가 자꾸만 눈에 밟혀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남편도 없고 친구도 없는 엄마가 고독할까 봐 마음이 저몄다. 내 신세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이렇게 글을 쓰는 취미라도 있지 않은가.


 한동안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녁 먹고 바로 눕지 말고 산책 좀 해라.", "엄마도 수영 배울래?", "엄마, 우리 한 달에 한 번씩 서로 손편지 써주기 할까? 어떤노?" 나는 엄마에게 수년간 몸소 터득한 '우울증을 피하는 독거생활' 루틴을 전파했다. 엄마는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귀찮아 하는 눈치였고, 결국 나는 신경질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어쩐지 외로운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내가 아닌지 모르겠다.


 거의 두 달 넘게 넘게 삐져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도 딱히 나를 찾지 않았다. 서로 전화를 먼저 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녀의 신경전이었다. 그러다 아무 일도 없었다 듯 "밥은?" 하고 먼저 걸려 오는 엄마의 전화로 다툼은 끝이 났다. 매번 내가 이겨도 진 것만 같다. 이번에도 역시 엄마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딸, 이거 투표하고 싶은데 못하겠다. 좀 해줘" 엄마가 보낸 문자에는 TV 화면을 그대로 찍은 사진 한 장이 있었다.

당신의 마음속 트롯맨에게 투표하세요.

"이게 뭔데? 송가인?" 그랬더니 엄마는 김호중이란다.


 미스트롯 남자 버전이 인기라는 이야기를 듣긴 들었는데, 우리 엄마가 거기에 빠져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엄마는 건강프로그램이나 주말연속극이나 챙겨 봤지, 노래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았다. 전국 노래자랑도 시끄럽다며 채널을 돌리는 사람이었는데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니! 엄마를 놀리면서 엄마 대신 김호중 씨에게 한 표를 던졌다. 이때만 해도 나는 엄마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재밌게 본 정도라 생각했었다.


    부산 집을 다시 찾았을 , 김호중을 향한 엄마의 팬심이 진지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소  10시가 되기도 전에 잠드는 엄마가 '사랑의 콜센타'  거라며 TV 앞에서 대기했다. 일명 사콜이 시작하자마자 엄마는 내게, 소파 뒷줄 끝자리에 있는 애가 김호중이라고, 설레며 그를 소개했다.  사람이 미스터트롯이냐고 물으니, 소파에 있는 7 모두가 미스터트롯이고 김호중은 그중 4위라고 했다. 엄마는 김호중이 4등이  억울한 사연도 들려줬는데 사실  알아듣지를 못했다. 눈치로 "방송국이 문제네, 원래 방송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잖아. 그리고 엄마 저거  편집이야, 믿지 "라고 처음  김호중  편을 들자 엄마는 신이 나서, "맞제? 니가   아네." 하며 나를 대견스러워했다. 그러고는  옆으로 바짝 붙어 앉더니, 핸드폰으로 미스터 트롯에서 김호중이 노래 부른 영상들을 찾아 보여줬다. 엄마가 이렇게나 좋아하니깐 나도 미스터트롯을 제대로 보고 싶어졌다. 엄마에게 TV 다시 보기로 같이 보자고 하니, 엄마는 사실 다른 사람은 관심 없고 그냥 김호중 노래만 들으면 된다며 계속 폰으로 유튜브만 보는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사랑의 콜센타 본방송도 김호중이 나올 때만 보고, 다른 가수가 나오면 다시 유튜브를 보거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김호중 씨 첫인상은 덩치가 크고 노래를 울림 있게 잘했다. 외모는 약간 아빠나 삼촌 느낌이 났다. "엄마, 이런 스타일 좋아하는구나."라고 얼레리 꼴레리 했더니, 엄마는 그게 아니란다. 호중이가 부모 없이 힘들게 자랐는데 반듯하게 잘 큰 것이 짠하고 기특하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스터 트롯 출연진 대부분이 어렸을 때 혹은 젊어서 고생하고 저마다 사연이 있었다. 엄마들은 팬심에도 모성애가 작용하나 보다.  


 그동안 엄마의 관심사는 오로지 우리였다. 우리 말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관심을 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먹고 살기 바빠서 친구도 만나지 않고 제대로 된 여행도 못 해본 사람이다. 동네 영화관으로 영화라도 보러 나가자고, 엄마의 영원한 사랑인 남동생을 동원해 꼬셔도 절대 넘어오지 않았다. 돈 들고 피곤하다는 것이 불변의 이유였다. 대신 우리에게 많이 보고 배우고, 여행하라 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랬던 엄마가 수개월 만에 보는 딸을 곁에 두고도 좋아하는 스타만 보고 있는 것이다. 하루종일 유튜브로 김호중이 나오는 영상을 보는라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러다 거북이가 될까 봐 걱정된 나는 TV로 유튜브를 볼 수 있도록 연결해 주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내가 다녀간 빈자리의 적적함은 그새 김호중 노래로 채워질테니 말이다.  


 엄마는 밥 먹었냐는 톡 대신, 김호중이 부른 노래 영상을 보내줬다. '할머니'라는 노래를 보내주며, 자신은 이 노래를 듣다가 할머니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김호중은 성악을 전공해서 트바로티라는(트로트+파바로티) 별명이 있다. 그 덕에 엄마는 성악이며 가곡이며 편식없이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전국 노래자랑도 본다고 했다. 김호중 CD를 외할머니와 옆집 아줌마에게 선물하려고, 3개나 샀더란다. 가수를 좋아하는 일은 음악이라는 예술과도 친구가 되게 했다. 인생에서 예술을 알게 되면 일상도 예술이 된다는 것을, 엄마를 보며 다시 한번 실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엄마의 모습은 이미 예술이었다. 김호중 씨에게 감사했다. 엄마에게 음악 감상이라는 취미를 만들어 줬으니 말이다. 혼자 지내는 사람에게 취미는 사랑만큼이나 필수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의 팬심은 그의 노래를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점점 완전한 소녀팬이 되어갔다. 엄마는 이제 팬 미팅, 콘서트에도 가고 싶어 했다. 엄마는 그를 실물 영접하는 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대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워서 오는 걸까?) 남동생은 당장 실물 영접을 못하는 대신에, 그가 나오는 영화를 엄마와 보러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동생에게 진심 그 영화를 보고 싶은 것이냐고 물었더니, 새아빠는 호중이라며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결혼하더니 철이 든 모양이다.  


 얼마 되지 않아 나도 새아빠 호중이를 받아들였다. 엄마는 김호중 팬미팅 영상을 라이브로 보고 싶어 했고, 나는 3만 원이나 되는 팬미팅 관람권을 결제했다. 방탄도 아니고, 1도 관심 없는 트로트 가수에도 돈을 쓰다니! 엄마가 원하니 딸은 어쩔 수가 없다. 이런 게 효도라는 철든 동생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 엄마 모시고 KBS홀에는 가지 못할 망정 그깟 팬 미팅 영상 하나 못 보여 주나 싶었다. 비록 엄마는 내가 HOT 굿즈를 사서 모을 때 내 등짝을 후려쳤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에게 콘서트 티켓도 반드시 예매해주겠다며 약속했다. 나는 분명 좋은 엄마가 될 것이다.


  문제는 새아빠에 대한 평판이 그리 좋지가 않은 듯하다. 그와 관련된 기사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덜컹한다. 어쩐 일인지 안 좋은 기사가 연이어 터진다. 엄마가 상처 받을까 봐 괜히 내가 먼저 나서, 연예 기사는 검증되지 않은 것이 많고 기획사에서 관리를 못 해서 그런 거라며 새아빠 편을 들어줬다. 엄마는 상관없다고 했다. 올해 김호중 사주가 구설수가 많다며, 10월이나 11월 되면 다 풀어진다는 것이다. 말문이 막힌 나는, 혹시 김호중 사주를 본 거냐고 했더니, 유튜브에 그런 영상이 많다고 했다. 엄마 팬들이 스타를 좋아하는 방식은 종잡을 수가 없다. 엄마에게 그런 사주 보는 영상은 클릭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한바탕 하고서는, 전화를 끊었다.


 이후로도 그의 구설수는 끊임없이 쏟아졌고 대충 보아 군대에 가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는 듯하다. 아리스들이 괜찮다고 했다며 무조건 지지하고 믿던 엄마도, 불법 도박한 사실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속상한 나머지 입맛도 없어 저녁을 굶었다는 소리에, 나와 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하필 엄마는 7명의 트롯 맨 중에서 그를 좋아해서 사서 마음고생인지 모르겠다. 그가 군대에 가면 나는 엄마에게 BTS를 소개해 줄 생각이다. 어쨌든 새아빠 호중이가 군대를 가는 날까지 소녀보다 더 소녀 같은, 엄마팬들 마음 아프게 하지 말고, 그의 할머니 말씀대로 폐끼치지 말고 단디 활동을 했으면 한다. 내 엄마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기에, 나도 새아빠 호중이의 바르고 멋진 활동을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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