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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Dec 23. 2022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 위해
나를 먼저 좋아해야 하겠지

내 안에 두 사람이 산다?!

근래 힘든 시간을 보냈다. 멘탈이 터졌기 때문인데 여러모로 밥벌어먹고 살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내 안에 품고 살아가는 자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외부적 문제 보다는 내부적인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평생을 쓰고 있는데, 너무도 다른 자아를 2개나 품고 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이 2가지 자아의 존재를 인지한 것은 18살 때였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던 건 23살, 28살 때였으며 지금은 어떻게 잘 가져갈지 무수하게 고민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단, 타고난 성격을 말하자면 어렸을 때 할머니는 나를 '삘렐레'라고 불렀다. 마음이 여리고,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감정 변화도 빠르게 캐치하는 탓에 잘 울어서다. 촉이 발달해 있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자 노력하며, 평화주의자다. 탐미적인 측면이 있는데 어릴 적 미술을 배운 덕으로 색감과 구도감, 선에 민감하며 패션도 좋아한다. 몇시간이고 강물 앞에 앉아 있어도 물결, 햇볕 떨어지는 모습, 달라지는 색감,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행복해할 수 있을 만큼 욕심도 별로 없다. 기분이 나쁘면 달달한 아이스크림 하나 먹어주면 되고, 애교 부리는 걸 좋아하며, 말을 최대한 예쁘게 하려한다. 갈등 상황이 생기면 쉽사리 놀라고 겁먹는 편으로 '쫄보'에 가깝다. '좋게 좋게' 살고 싶어하며, 세상과 사람에 대하여서 호기심과 애정, 관심이 많다. 또 하나의 특징은 솔직한 편으로, 별 의도 없이 '느끼는 그대로', '생각하는 그대로' 말하는 해맑은 스타일이다. 꼬인 구석이 없어서 느낀 그대로 말하는데 그 탓에 오해를 받기도 했다. 액면 그대로 느낀 바를 말하는데 꼭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야하나... 지금도 알 수 없다. 


다음으로, 내 기억상 11살 혹은 12살 때 주 자아로 발동되기 시작한 자아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어는 '승부욕'이다. 12살로 기억하는 이유는 어떠한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인데, 어릴 적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나지만 그 순간만은 선명하다. 사랑이 고팠지만 내색하지 않는 '애늙은이'로 살아가던 나는 그 당시 세상 사람들 마음이 다 나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기 있고 싶고, 주목 받고 싶었는데 그러기에 너무 '단순하고 심플'했던 것이다. 선생님이 숙제 냈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외치던 애들 사이에서 '맞아요!' 외치던 아이였으니 초딩들 사회에선 그럴 법하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고 (말하지 않는 비언어적인 표현도 잘 읽고 상처 받는 여린 마음...) 전후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날, 그 체육실 구석에 앉아 선생님이 시킨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다 그래, 신경을 꺼야겠다"라고. 놀랍게도 그 순간 세상이 '흑백'으로 보였다. 환하던 등이 달칵 꺼진 것처럼 세상의 색이 바뀌었다. 필름을 바꿔낀 것처럼 정말 그 뒤로 무덤덤해졌다. 옆자리 친구가 긴머리에서 단발로 잘라도 일주일 뒤에나 알아차릴 만큼 '무딘' 아이로 학창시절 내내 살았다. 모든 신경을 꺼버리면서 나를 꾸미는 일에도 관심이 없어서 사춘기 시절에도 펑덩한 교복치마를 입고 머리는 질끈 묶거나 단발 혹은 숏컷으로 자른 채 살았는데 관심은 오직 '승부'에 있었다. 


최고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13살 때 나는 방학 숙제로 나온 일기를 100개 넘게 썼다. 방학 끝나고 일기 갯수를 포함한 항목에 따라 등수를 매기는데 1등을 한 친구에게는 자리와 짝 선택권을 준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자리와 짝 선택은 중요치 않았다. 1등을 해야 하는데 짝에 관심 있는 애들이 열심히 할 거란 생각에 그들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하루에 3개씩 일기를 썼다. 당시 어떤 애가 나에게 '괴물'이라고 했는데 좋았다. 난, 남들이 범접하지 못할 윗자리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괴물'이 되고 싶었다. 이쁘다, 멋있다 그런 말이 아니라... 말조차 나오지 못할 만큼 세상을 압도하고 싶었던 거다. 


울 시간이 없었다. 타고난 천재는 아니니 노력으로 커버할 수밖에 없었다. 반 1등은 기본이었고, 전교권 등수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스스로를 다독여본 적이 없다. 칭찬한 적도 없다. 목표를 달성하면 그 다음 목표가 기다렸고, 채찍만 쏟아질 정도였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타인이 말하는 악담이나 욕, 비난에 상처받아본 적 없었다. 내가 말하는 정도의 비난을 내게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여리디 여리고 해맑은 본 자아를 '삘렐레'라고 하고, 승부욕이 넘쳐나는 자아를 '장군'이라고 한다면 장군에게 삘렐레는 걸리적거리는 대상이었다. 울거나 상처 받을 때면 "울 시간 없다, 제 정신이냐"고 윽박질렀다. 나는 약하면 안 되고 상처 받으면 안 되었다. 우는 건 머리만 아픈 일이었고, 시간만 잡아 먹는 거였다. 사람들이랑 친해질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진심으로 대해봐야 상처받는 건 나고, 그건 효율적이지 않았다. 공부만 잘하고 있으면 필요하면 붙었다가 떨어지는 게 사람이라 신경 끄는 게 제일 좋았다. 문제는 내 안에 그 너무도 다른 두 자아가 공존하고 있었다는 거다. 단 한번의 위로도 없이 억지로 끌고 가다보니 난 공부도, 그림도, 그 무엇도 즐기지 못했다. '해야만 하는 게' 너무 많은데 하기 싫어서 미루다가 벼락치기를 한 적도 많다. 책임감과 승부욕이 강하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는 늘 냈지만 공부로 전교 1등을 해본 적은 없다. 잡생각이 너무 많았다. 


억눌린 자아가 자길 알아달라고 신음하는 탓에 순간순간 산만했고, 꽤 많이 울었다.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는데 달리 할 것도 없어서 공부를 했다. 승부욕이 발동하고, 잘 살고 싶어서 공부 잘하는 애들만 모인다는 학군으로 무리해서 이사까지 했다. 그 고등학교에서 다시 공부 잘하는 애들만 모인다는 심야자율학습실에 들어갔을 때 열두살부터 열여덟까지 육년 간 억눌려왔던 자아가 터졌다. 멘탈이 제대로 터져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책을 펴도 읽을 수가 없었고, 매일 죽고 싶었다. 어쩌면 '삘렐레'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엔 그거까지 돌아볼 정신은 없었다. 그저 도피했다. 마침 영재교육원에 뽑혀서, 글을 잘 쓴단 이야길 들으니까 공부하는 대신 글을 썼다. 당시에는 글을 즐겼던 거 같다. 마구잡이로 쓰고 싶은 대로 쓰다가 다시 '장군'이 발동했다. 문예창작과로 으뜸이라는, 실기 100프로 그 학교에 입학하지 않으면 '절필하겠다'라고 배팅한 거다. 입시 글에 맞춰 내 글을 모조리 다 바꿔버렸다. 미치게 한 덕으로 1등으로 입학했다. 그 1등, 딱 10초 행복했다. 다음부터 극도로 불안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무슨 글을 써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다. 나는 더이상 '글쓰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된 채로 문창과에 들어갔다. 


나는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을 '장군'에 기대어 살았다. 문창과에 가서는 내 글을 찾기보다 방황하며 여러 과를 돌아다녔고, '잘 해야한다'는 승부욕과 책임감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성적이 좋았다. A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A 플러스 정도는 받아야 하는 거였다.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허나 내 글은 못 찾은 상태로 졸업하고 난 뒤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장군'이 가진 승부욕과 책임감이 더 보탬이 되었다. 사회초년생 때 이후로는 어딜가나 일잘러가 되었고,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됐다. 일 처리가 꼬이고, 제대로 일이 되지 않는 꼴을 못 견딘 탓이었다. 허나 내 본 자아 '삘렐레'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아름다움을 즐기고, 사람들과 잘 지내며, 글을 쓰고 싶었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더 오래 공부하고 싶었다. 허나 여건이 되질 않았다.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이상, 밥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였으니까. 차라리 일잘하면서 사람들도 신경쓰지 않고 '개썅마이웨이'로 살았다면 나는 좀 더 빠르게 승진하고, 지금보다 돈도 많이 벌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허나 삘렐레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하고 화가 나도 꾹 눌러 참는 성격이라 모든 화는 내 내부로 축적되었다. 그 결과, 2년이 채 되기 전에 몸이 엄청나게 아프게 마련이었고, 일의 성과는 좋아서 포폴은 좋지만 근속 년수는 멸망했다.


둘 다 내 안에 있는 모습이지만 너무 다르다. 


하나는 여리고, 부드럽게 말하고 싶어한다면 다른 하나는 아닌 건 아니라고 곧 죽어도 말해야 하고, 승부욕이 강력하며, 성취욕구도 강하다.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장군 자아만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결국에는 '글'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회사에, 일에 별다른 야망이 없다. 멘탈이 여러번 터지고 공황도 겪었고, 많이 아픈 이후로 장군에게서도 '야망'과 '승부욕'이라는 글자가 떠났다. 그냥... 번아웃된 상태로 '기본값'이 성실하게, 꼼꼼하게 하는 거니까. 내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으니까 일을 하는 거뿐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인간에 대한 기대는 이제 마이너스에 수렴한다. 여지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며, 자기가 가장 불쌍하고,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열심'은 아닌 상태로 살아간다. 나와 기본값이 다른 거뿐이니 그러려니 하기엔 협업을 많이 하는 직종이라, 일을 내가 더 하는 게 당연해졌다. 그러려니 하지만 갑갑한 건 사실이다. 


어쩌겠나, 장군이 바라던 나는 이게 아니었다. 그의 입장에서 지금 내 레벨은 저지경 수준이다. 열여덟에 멘탈이 터지며 진로를 틀기 전까지 나는 검사가 꿈이었다. 명예롭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직업을 원했던 모양이다. 삘렐레가 바라던 나도 내가 아니다. 글 쓰며 탐미에 젖어 공부 계속하는 대학원생을 거쳐, 선생님이 되건 그냥 자유분방한 여행자로 살아가고 싶었을 테니까. 너무도 다른 두 자아가 안에 있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배려를 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고, 결단을 빠르게 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다만... 여전히 조율 중이다. 


최근에 또 한번 멘탈과 컨디션이 엉망이 되면서 힘들었다. 스위치 온 오프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장군 자아가 필요한 순간엔 장군 자아가 나오고, 그 외의 순간에는 삘렐레, 본 자아가 주축이 되어서 글을 미치게 쓰지 않으면 이 거지 같은 인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소모되는 느낌이 들며, 딱히 답도 없다. 나 혼자서 할 수 있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 결국엔 글쓰는 것밖에 없다. 글을 쓰자, 책을 읽자... 제발 '즐김'을 회복하자. 장군은 힘을 참 많이 잃었지만, 여전히 기본값은 남아 있어서 순간순간 빡치고 미치게 일한다. 하지만 지쳤다. 이 승부욕과 강렬한 에너지를 '글쓰기'에 쏟았다면 데뷔하고도 남았을 거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니, 회복이 우선이다. 원래 이 글은 '현실에서 내가 얻고 싶은 캐릭터, 연기하고 싶은 퍼소나'에 대해서 고민해보기 위하여 쓰기 시작했는데 결국엔 두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너무도 다른 자아가 충돌했던 탓에, 나는 꽤 오래 앓고 있다. 지랄 맞은 성격대로 살 수가 없어서, 순하고 여린 성격대로만 또 살 수가 없어서다. 둘의 교집합은 '단순'하다는 거고, 그 덕에 몇 가지 스트레스 푸는 법 정도는 알고 있다. 지금처럼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일기를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어찌할 수 없음을 어찌하려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정해주어야 할 거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도 없고, 어차피 사람들은 자기가 제일 중요하다. 기대를 내려놓았는데 여기서 더 내려놓아야 하겠다. 그렇대도 너무 극단적으로 사람들을 다 없는 셈 칠 필요는 없고, 적당하게... 내 할 일에만 올인할 수 있는 뇌구조로 바꾸는 게 신년 목표다. 적당하게 대해주고, 적당하게 할 일을 하고 나머지의 시간은 글과 내 현재와 미래에 할애하자. 그러기 위해서 먼저 '즐겨야'만 한다. 글 쓰기보다 '책 읽기'를 즐기도록, 요샌 덕질할 대상 없다고 찡찡거렸는데 글을, 작가를 덕질하도록 하자. 그리하여 내년엔 꼭 데뷔하겠다. 즐기면서 나의 목표의식과 승부욕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허니, 두 자아가 싸우지 않게... 서로를 미워하거나 무시하거나 하지 않게 내 마음돌봄을 하는 것도 숙제가 되겠다. 갈등이야 없을 수 없지만 잘 풀어나가기만 하면 공존하기 좋을 테니 말이다. 삘렐레의 여린 마음과 호기심, 따스한 시선, 관찰력 덕에 글을 쓰게 되었고, 장군 덕에 지금 밥 벌어 먹고 살고 있으며 이제는 장군의 빛나는 승부욕과 책임감을 '내 글 쓰는 데' 쓸 차례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사소한 취향부터 회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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