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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Feb 23. 2023

모르겠습니다, 다시 '악'해질 때입니까?

내 안의 '분노 에너지'와 만나기 

나는 부단히도 '안정적'이게 되려고 애썼다. 당연했다. 열두살 이후로 지금껏 거의 20여년 간 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끝없이 싸워왔으니까. 
헌데 '안정'되고야 마니까 '무료'하고 '무망'하다
다시금 '너'를 불러와야 하는걸까?


누군가에게 '분노'란 참 어렵겠지만 내겐 쉽다. 단순하다. 나는 잘 빡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향한 화가 아니다. 다름 아닌 나 자신을 향한 화다. 이딴 식으로 살아선 안 되잖아, 나란 사람이? 뭐 그런 거다. 


어렸을 때 나는 '괴물'이란 말이 좋았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서, 저 윗동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손 한번 휘두르면 세상을 휩쓸어버릴 수 있지만 딱히 '귀찮아서' 하지 않는 그런 괴물이 좋았다. 아름답거나 멋지다거나 그런 칭찬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 괴물이지, 괴물 같다"라는 말, 나를 희열케 했다. 


13살 여름이었나 겨울이었나 방학이 끝난 뒤 내 손에는 109개의 일기가 있었다. 매일 3-4개씩을 쓴 결과 나는 한달 남짓한 방학 기간 동안 100개 넘는 일기를 쓴 '괴물'이 되어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1등 하고 싶어서다. 당시 선생님은 순위권에 드는 아이들에게 자리와 짝 선택권을 준다고 했고, 한창 좋아하는 애들이 있던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실제로 일기 제출률이라던가, 일기의 수가 다른 때에 비해 월등이 많았다. 바로 그거다. 애들이 딱 그렇게 움직일 거 같아서 나는 두 발짝 앞서 나가기로 했다. 매일 3-4개씩의 일기를 쓰는 건 계획만 짜면 그리 어렵지 않다. 하나는 독서일기, 하나는 신문을 토대로 한 시사일기, 하나는 개인일상 일기, 나머지 하나는 반성/감사 일기 뭐 그정도면 되는 거다. 


문제는, 나의 또 다른 자아가 '괴물'을 버티기엔 약하고, 한량 같았다는 데 있다. 나에게 '남'들이 경쟁자가 된 적은 없다. 내 경쟁자는 바로 나였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1등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공부가 되었거나 내가 한때 홀릭했던 미술이 되었거나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올려도 만족한 적이 없었다. '그래, 여기까진 올라왔네, 더 가야지?'하면서 채찍질 하다 보니까 어느새 나는 정신적으로 '극'에 몰려 있었다. 


- 난 아무것도 아니야 

- 이것밖에 안 되는데 살아서 되겠어? 

- 넌 존재 가치가 없어 


그런 따가운 말들을 쏟아내면서 나는 피를 토해내며 하루하루 살았다. 18살에 환각/환청을 겪기 이전까지 나는 힘들어하는 것, 혼란스러워하는 것, 아파하는 것은 '나약한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성적으로 사고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따지자면 나의 '본 자아'는 풀꽃이나 '아름답되 무망한 것들'을 사랑하는 아이임에도 월도를 든 장군 같은 이성이 그 아이의 목줄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자!'라고 휘둘렀달까. 이성의 통제 아래서 낑낑거리던 자아가 대폭발하면서 나는 책을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속독과 암기가 재능이었는데, 한 문장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고 토할 거 같았고, 순간순간 어디든 뛰어내리거나 뛰어들고 싶었다. 그 순간에도 '아픈 건 싫다'라는 한 줄기 이성이 일상을 영위하게 만들었지만. 


문제가 터진 뒤엔 '사이클'의 영역이었다. 


감정적으로 대폭발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우울하고, 다시 한 걸음씩 올라와서 할 일을 해보다가 또 다시 "이딴 식으로 살려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게 아니야! 다 마음에 안 들어!"가 발동하면서 미치게 내달려서 어떠한 성과를 얻어내고 나면, 다시 우울의 모드로 들어가는... 허나 하나 인정할 건 "나에게 그, 내가 이딴 취급을 받으려고 이렇게 산 줄 알아!"하는 나로 향하는 분노의 에너지가 있었기에, 발동되는 순간에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더 높은 성과를 냈다는 데 있다. 


채색에 재능이 없단 평가를 받던 내가 크고 작은 미술대회를 휩쓸었고, 전교 70-100등 사이를 오가다가 10위권(전교 상위 5퍼센트) 안에 들었으며, 글을 못 쓴다는 평가를 받던 내가 문창과에 수석입학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마케팅을 시작해서 KPI 달성률을 크게 상위하는 성과를 냈다. 뭐든 하면 되는 거였다. 상품개발자가 갑자기 퇴사한 어느 신사업 팀에서는 미친 듯한 습득력으로 1주일 만에 문제 원인을 파악하고 2주차에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미팅을 하고, 그바닥에서 10년 넘게 굴렀을 사람들과 1대 1로 '딜'을 치고 있었다. 


모두 다, 분노의 에너지다. 빡치는 순간 내가 갖고 있는 파워의 200%, 300%를 내고 성과를 내는 순간 나는 나가 떨어진다. 바로 '번아웃'의 상태에 접어들어 허우적대다가 나오는데 그때는 이미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이후다. 너무 빠르게, 많이, 과하게, 억압적으로 '나'를 갈았기 때문에 특히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2년을 채 넘기기 힘들었던 게 각종 병에 시달리다가 아파서 그만뒀고, 그것은 내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재 나의 테마는 '마음수양'이라서 회사 일에 예전만큼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빡'돌아도 참았다. 그 결과 몸은 많이 안정되었지만 문제는 '내 본업(내가 하고자 하는 글쓰기)에 그 에너지를 단 한번도 쓰지 않으려 한다'라는 데 있다. 공부를 하다가 온갖 문제가 터지고서 도피성으로 선택한 '글쓰기'가 업이 된 순간, 나는 참 우울했다. 허나, 글을 17살에 쓰기 시작한 뒤로 15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뭐든 쉽게 질리는 내가 질리지 않고 홀릭해 있다는 건 이걸 끝까지 해야 한다는 의미일 테다. 


나는 이제 분노와 화의 에너지를 다시 불러와야 할 때라는 걸 안다. 


오래 쉬었다. 나는 나 자신의 멘탈,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내가 진짜 바라는 일(글쓰기)을 피해왔다. 한마디로 밥벌이용 일을 할 때만큼 치열한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았다. 미치게 붓고 또 부웠을 때 내가 '이뤄낼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오히려 피했다. 미치게 좋아서 '욕'마저 나오는 소설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읽기를 '중도포기'했고, 심장을 뛰게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보다 말고 '멈춤'을 누른 채 한동안 보지 않았다. '화'를, 분노를 불러올 것 같아서다. 분노하는 순간 내가 어디까지 타오를지 알고, 그 타오름 끝에 찾아오게 될 균열과 번뇌와 파멸과 '번아웃'이 싫었다. 


환각과 환청, 극도의 우울에 시달리던 청소년기에 나를 구원해준 건 '글쓰기'였다. 글을 쓸 때만은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판단하지 않았다. 규격화하지도, 계획짜지도 않고 지껄여지는 대로 말하는 바보인형마냥 쓰여지는 대로 미친 듯이 쓰고 또 썼다. 완결성이 없어도, 어그러져 있어도 좋았다. 그 '도피처'에 분노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가는 내가 더 이상 도피할 곳이 없잖아. 그러한 고로, 나는 졸업 이후 8년간 내 글이 아닌 타인을 위한 글만 썼다. 광고, 홍보영상 시나리오부터 홍보문, SNS 콘텐츠 기획안, 마케팅 원고 등등 나의 '글' 에너지는 타인을 위하여 쏟아부어졌고 일견 성과도 거뒀으나, 결국엔 근근히 살아가는 '월급쟁이'가 현실이다. 아무리 잘해봐야 그것은 회사를 위한 것일 뿐, 아파서 나가 떨어지는 나는 병든 '메뚜기'에 불과핟.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가, 하는 생각이 재작년, 작년, 올해 점점 더 크게 머릿속을 잠식한다. 이딴 골짜기에서 나는 이딴 취급밖에 받을 수 없는데, 평생을 이지경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악'의 에너지로 가득한 내가 내 안에서 다시금 머리를 내밀고 있다. 다시 태어난 신생아마냥 앙앙대고 울려고 하는 '그'것을 나는 억지로 억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발동되는 순간, 내가 어디까지 올라갔다가 얼마나 아래까지 내던져질지 알기 때문이다. 허나, 분노하지 않고는 애쓰지 않고는 노력하지 않고는 이 환경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피해왔던 나를 똑바로 마주하려 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하지 않을 욕과 비난과 뼈아픈 말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내어 내 내면 자아를 피쏟게 만들었던 그 '폭군'을, 내 안으로 다시 불러 들였을 때 감당하기 위한 몸을 만들려고 최근엔 검도와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래도 필라테스는 1년 가까이 했더니 '맷집'이 좀 생겼다. 최근엔 막막할 때마다 절에 가서 절도 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버텨낼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다. 


나는 힘이 좋고, 파괴력이 있으며, 분노의 에너지가 강력한 편이다. 그 분노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하고, 미치게 제련해서 정상에 오른 뒤에도 '허기'가 충족되지 않아서 내가 세운 목표를 다 이행하고 나서야 그 불꽃이 꺼진다. 극심하게 아팠던 열여덟, 스물일곱, 스물아홉 이후 나는 나의 목표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부단히 애를 썼다. 회사의 프로젝트에만 총력을 다했던 것도 한 건이 끝나면 마무리되는 거여서 일 테다. 


이제는 다르다. 나는 '데뷔'해야 하겠다. 그냥 '데뷔'가 아니다. 나는 잘 나가야겠다. 글을 써서 단순하게 밥벌어 먹는 것 그 이상을 원한다. 명품백이 아닌 명품옷을 사고 싶고, 샤넬이나 디올보다 고야드, 고야드보다도 에르메스다. 근근이 먹고 사는 정도로는 내 야망이 채워지질 않는다. 내 안에 잔존되어 있는 불꽃을 불사지를 때가 왔다는 걸 이제는 안다. 허나, 살아야 한다. 작년에 처음으로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꽤 울었다. 처음 우울이란 게 찾아온 열두살 이후로 나는 늘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제목에는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쓰다보니 알겠다. 이제 다시 '악'을 쓰면서 일어날 때다. 나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때 작가가 꿈이었지 운운대며 빌빌대는 꼬라지도 싫고, 매달 생활비에 허덕이는 것도 잡스러우며, 글을 쓰고 싶다하면서 매일매일 글쓰기를 회피하고, 좋아하는 글을 읽으면 열받아하면서 그 열받음이 상대가 아닌 나로 향해서 나를 괴롭히느라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는 나의 '꼴'도 싫기는 마찬가지다. 아낌없이 빼앗어야지, 한 톨도 남김없이 모조리 앗아서 날 위해 불태워야지. 금붙이로 보이는 글감이란 글감은 모조리 다 끌어 모아서 내 에너지로 녹여서 찬란한 금괴로 재탄생시켜야지, 아니 그러한가. 


잘 벼려진 칼을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거리 달리기 말고 장거리 달리기를 꾸준히 '이어나갈 힘'으로 분노의 에너지를 바꾸자. 한번 불사지르고 꺼져버리는 그런 거 말고,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용광로와 같은 불꽃에너지가 내겐 필요하다. 나의 멘탈, 정신, 신체 사이클을 따라서 내 에너지를 조율할 수 있는 게 올해 목표기도 하다. 더 이상 물러설 때가 없으니 나아가자.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 이 책 소개글을 보면서부터다. 


<하루 14알 정신과 약 먹으며 자본주의에서 상위 0.1%가 된 악인의 쿠데타!> 라는 소개글을 읽으며 나는 과거의 나를 생각했다. 책 소개글을 읽으며 떠올린 것 역시 과거의 나다. 


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미치게 올라가며 나를 죽여가던, 하나의 정상에 오르면 다음 산 봉우리를 쳐다보며 돌진하던, 우울한 것도 '나약한 시간'이라 생각하며 허용하지 않던 18살 이전의 '나'. 나는 여린 내면자아가 대폭주하면서 '멈춰'섰다. 


공부를 내려놓고, '글쓰기'로 도피해서 내 도전정신을 불태우던 '명문대'가 아닌, 예대(물론 문창과 중에서는 탑급이었고, 나는 이곳에 합격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각오였다)로 갔다. 정신과에 가는 대신 심리학 도서를 읽고, 자기 수양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것에 힘썼다. 허나, 과 내에서도 수석 자리를 얻기 위해서 분투하다가 결국 글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로 졸업했고 8년간 헤맸다. 


나는 분노의 에너지를 갈무리하지 않고 미치게 불태웠을 때의 부작용을 안다. 그렇기에 가능한 욕심을 내려놓으려고 애썼다. 헌데, 욕심을 내려놓지 않고- 정신과 신세를 지지 않고도 나 그 자체의 에너지를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일단 이 책을 읽어볼 거다. 이 저자에게서 뺏어올 수 있는 게 있다면 아낌없이 뺏어오고, 내게 맞는 방법으로 디벨롭해서 나 역시 상위 0.1%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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