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요즈음 먹고사니즘에 빠져 사느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느라,
지쳐버린 멘탈을 회복하느라 브런치에 잘 들어오지 못했다.
헌데 내 '밥그릇', AI가 뺏어가게 생겼네?!
카피 시장에 AI의 출현이라니! 시장분석, 타깃의 성향, 제품/서비스의 특징을 고려하여 장고의 고민 끝에 뽑아내던 카피를 이제는 AI가 대체한단다. 솔직히 카피,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아무리 신선하고 새롭고 개성 넘치는 카피를 쓴다고 해도 언젠가는 썼던 형태의 카피다. 이유는 하나, 우리가 너무 늦게 태어나서다. 광고 형태의 카피가 등장한지 꽤 오래됐고, 그 연혁을 열거하려고 한다면 할 말이 더 많겠지만 일단은 요약하자면, 옥외광고와 신문/지면광고에서 방송광고와 온라인 팝업 광고 그리고 SNS 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카피가 사용됐고 카피라이터가 하는 일 역시 과거의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학습한 뒤에 '감성'을 싣는 것이었다. 인간의 두뇌보다 AI가 더 빨리, 매력적으로 할 것은 이미 '자명'하다. 으르신들이 '컨펌'을 빠꾸할 때마다 머리를 쥐어짜는 우리 같은 인간들보다 더 효율적일지도? 이들은 몇 개 로직을 돌리면 '으르신'들이 좋아할 법한 카피도 금방 뽑아낼 테니까. AI가 뺏어갈 밥그릇... 너무도 많다.
과거에는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작가, 사진작가, 화가, 만화가 등과 같은 '크리에이터'들도 이제는 너무도 간단하게 대체 가능하다. 이미 작가의 경우에는 그 위험성이 더 커졌으니! AI로 쓴 SF소설이 출판 사이트에 몰리면서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일까지 발생했다는 게 아닌가.
본래 글이라는 건, 특히 소설이라는 건 오랫동안 고민하고 캐릭터와 세계관을 세팅하여 묵묵하게 쓴 결과물이 아닌가. AI가 '난입'하면서 이 세계의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현 상황에서 작가와 작가지망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관건이다. 어떠한 영상에서 본 적 있는데 '금지'할 게 아니라 어떻게 '이용'해야할지 고민할 시점이라고. 하지만 난감하지 않나. AI는 결국 여러 데이터를 확보하여 '재조립'하는 형태의 창작을 하는 건데, '표절'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리가 없고, 이런 경우에 '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원작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 걸까. 규율과 규칙, 법칙을 만들고 난 뒤에야 '이용'이란 것도 할 수 있는 거다.
BBC 뉴스 코리아 기사에 따르면 <독일 출신 사진 작가 보리스 엘다크센은 ‘위기억: 전기기술자(Pseudomnesia: The Electrician)’라는 작품으로 지난주 ‘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의 크리에이티브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는 AI가 생성한 이미지로도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또 사진의 미래에 관한 토론의 장을 열고자 해당 이미지를 출품했다고 했으며, "AI 이미지는 (기존 사진 작품과) 별개입니다. AI 이미지는 사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상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
이 외에도 미국에서 열린 미술공모전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AI로 생성한 그림이 우승을 차지했다거나, 일본 40대 주부가 파파고를 이용하여 한국 웹툰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2022년 한국문학번역상' 시상에서 웹툰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등의 이슈가 끊이질 않는다.
허나, 이미 발전해버린 기술을 '해선 안 된다'고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인공지능한테 밥그릇 빼앗기게 생긴 크리에이터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특히 8년차 콘텐츠 작가로 카피라이팅, 스토리보드, 콘텐츠 기획/제작을 하며 밥벌어 먹어왔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하는 작가가 꿈인 내 입장에선 심각하다. 그래서 고민해 봤다.
하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건을 다룬 '극'이라는 본질을 기억한다.
최근에 넷플릭스 <퀸메이커>, <길복순>을 보면서 화가 났다. 소재와 설정은 재치 있는 것으로 가져왔는데 정작 '알맹이'가 없어서다. 화려한 설정과 여러 이야기들을 한번에 다 집어 넣다 보니 정작 인물 간의 '감정선' 구축에는 집중하지 않은 눈치였다. 비단 두 작품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작품들을 보며 '감동'을 느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설정은 '산뜻'하고, 팔릴 것 같은 서사를 가져왔는데 인물간의 '감정선'을 구축하지 못한다는 건 그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만들어가는 '관계'에 천착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터.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대하여, 인간들 사이의 관계성에 대하여, 매혹하는 자와 매혹 당하는 자 사이의 미묘한 긴장에 대하여, 사건이나 소재에 집착하지 않고 '본질'에 돌아갈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클래식, 히트작, 망작 가리지 않고 보면서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 "나"라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에 대하여 생각한다.
AI(인공지능)은 완전하다. 컴퓨터로 설계했기에 '오차'가 있어선 안 된다. 허나 인간은 너무도 불안정하고 실수하기 마련인 존재다. 우리는 '인간'이며 '인간'적인,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골방이나 사무실 안에 틀어박혀서 컴퓨터인 상태로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것만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겠다.
걷고, 맡고, 손을 뻗고, 먹고, 마시며... 감각하겠다. 감각을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지. (물론 이 마저도 다 따라하겠지만, 따라한다면 이들이 할 수 없는 '찐 감각'에 대해서 생각하겠다) 결국 디지털화 될 수록 인간들은 아날로그를 동경하며 그리워한다. 아이패드 그림 어플 기능 중에서 '유화'를 선택했을 때 '말리기' 기능이 있다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눈으로 그 질감을 볼 수 있고, 말리는 행위를 할 수야 있겠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직접 그렸을 때 맡는 진한 향, 손에 꾸덕하게 묻는 물감의 질감, 붓터치를 할 때마다 손가락에 전해지는 끈적한 물감의 떨림만은 재현해낼 수 없다. 허니 "감각적인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하나. "나" 그리고 "우리"가 진정 '욕망'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뉴진스의 <Ditto>가 많은 이들의 플레이리스트에 자리한다. 약 15-20년 전에,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 흥했던 무드의 일본 밴드음악이 다시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기 시작했다. 아이묭 <사랑을 전하고 싶다던가>나, EGO APARTMENT의 < NEXT 2 U> 같은 음악들에 나 역시 중독되어 있는 요즘이다.
SF와 액션물, 판타지가 지겹다는, 조금 더 살랑거리고 담백하며 감성적인 콘텐츠를 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가끔 들려온다. 나 역시 갑자기 청춘물이 보고 싶어서 <아름다웠던 그대에게>를 다시 보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최근 하는 작품 중에는 이러한 감성의 작품이 없더라. 그 말인즉, 유행은 돌고 돌다지만 결국에 사람들은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의미와 통한다. 그것도 '감성적인', '살랑거리는' 콘텐츠에 대한 니즈는 끊기질 않는다. 팡팡 터지는 것은 그 나름의 쾌감이 있지만, '남는 게' 없다면 금세 까먹어버린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길었던 코로나19 시기를 지나오며 많은 게 '언택트'(비대면화)되었는데 오히려 '살롱문화'에 대한 니즈가 늘어난 것을 보았다. 코로나19를 벗어나고 있는 지금에 특히 독서모임, 문화모임 같은 소셜링이 뜨고 있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나 역시 그게 궁금해서 소셜모임을 많이 다녀왔고, 아직 그 소셜모임에 대한 글을 쓰진 못했지만 다음에는 써볼 테다.
사람은 사람의 감촉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결국 손이 맞닿고 얼굴을 마주보고 부대끼고 싶은 게 아닐까. 욕망에 대한 생각을, 경험을, 감각을 길러야만 하겠다.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시대가 도래한다. 뭐, 생이 처음인데 매 순간의 '경험'이 '처음'인 것은 당연한가. 그렇대도 챗GPT와 같은 AI와 공생하는 시대는 SF 콘텐츠들에서 보여주었던 것보다 더 급속도로, 현실이 되고 있다. 이제 SF가 미래 같지가 않으니까.
아직은 젊으니까, 내 밥그릇은 내가 찾아야 하니까, 언제까지 회사에서 먹고 살 순 없으니까! 나는 앞서의 3가지를 중심으로 내 작품을 써보겠다. AI가 내 밥그릇을 다 앗아가기 전에 내 입지를 구축하여 날아오르련다. 그래도 요즈음엔 다시 멘탈이 회복되었다. 올해의 '목표'는 멘탈 회복(기분관리)과 소식(천천히 먹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