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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Jul 14. 2022

죽을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서른 하나부터는 "덤"의 인생


나는 내가 20대에 성공하고 일찍 죽을 거라 생각했다.
"굵고 짧게"가 인생 모토였고
그 시절 문창과생 사이에는 "요절간지"라는 말이 유행했다. 
간지나는 예술가들은 20대 후반을 채 넘기지 못하고 죽었으니
요절해야 간지가 난단 웃긴 말이었는데 나는 "그" 타이밍을 놓쳤다. 
나는 죽지 못하고, 서른 하나가 되었다. 
이제 내년이면 김광석과 동갑이 된다. 


기이할 만큼 밝고 해맑은 자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거라, 굳건하게 믿었던 세계가 잔혹하게 무너져 본 적 있는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었는데... 간만의 여유를 만끽하며 종현의 <놓아줘>를 듣고 있다. 그의 죽음을 나는 이마트 안에서 들었고 믿을 수 없었다. 2017년 겨울이었고, 내 생일 이후 얼마간의 시간만이 흘렀을 때였다. 돌아보건대 인생에서 가장 크게 흔들렸던 때였다. 


소설을 내려놓았고, 작가가 되는 길을 포기하는 대신 생업을 택했으나 고통스러웠다. 미친 듯 일을 배우다가 몸이 너무 아파서 그만뒀고 앞길이 보이질 않았다. 무얼 해야 하나,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걸까, 내가 걸어가는 길이 대체 제대로 된 걸까... 이 암흑은 언제쯤 끝날까 뭐 그런 생각의 단상들. 암암한 어둠 속을, 그 어둑한 터널 속을 심지어 눈을 감고 벽을 더듬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무언가를 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포기할 힘도 없어서 하루하루 감내할 뿐이었던 그 순간 내 기준 찬란하게 빛나던 별이 떨어진 거였다. 딱히 팬도 아니었으면서, 노래를 좋아했으니까 괜히 찾아 들으면서 그가 남긴 몇몇 노트들을 읽으며 당시의 나는 울지도 못했다. 지금의 나도 사실 울지 못한다. 울 타이밍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으니까. 


이상하지. 요절한 천재들은, 찬란하게 빛나던 별들은 왜 꼭 20대 후반에 죽는지 고민해본 적 있다. 지금 들어도 탁월한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는 스물 일곱에 불의의 사고로, 이상으로 널리 알려진 김해경은 스물 여섯에 병으로, 스물 여덟을 채 넘기지 못하였거나 서른 초반대에 사라져간 무수한 인명을 굳이 거론하진 않겠다.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단숨에 사그라져버린 이들은 너무도 많고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죽은 자들을 열렬히 사모했다. 


어쩌면 서른을 목전에 둔 그 시기에 많은 것들이 무너져내리기 때문이 아닐까. 혹은, 서른을 딱 넘긴 이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내 세상이 붕괴되는 것을 목도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리 오랜 세월을 산 것도 아니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뭐, 이 시기에나 아는 척하면서 할 수 있다면 글으로라도 남겨둬야 한다. 지금의 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꽤나 예민하고 민감하며 다소 되바라졌던 아이는 스스로를 억압하여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택했고 글을 쓰기 전까지 그 세상에 갇혀 살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 가장 먼저 그 세계가 부서졌다. 다만, 내게는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고정관념, 삭막한 나만의 세계가 남아 있었다.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야지, 최선을 다한다는 건 이 수준 정도는 되어야지.. 나를 억압하고 몰아세우고 채찍질하면서 단 한번도 스스로 만족해본 적 없는 채로 2017년, 스물 여섯의 겨울을 맞이했었다. 


놓아줘. 이상하지, 놓아줘를 타자로 치는데 자꾸만 놀아줘로 오타가 나서 몇 번을 고쳤다. 


가사가 참 서글픈데 내겐 이미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판자 위에서 겨우겨우 균형을 잡고 있던 때가 있었다. 누구의 손이든 필요했고, 눈물을 닦아줄 누군가를 기대하면서도 모든 기대를 포기했다고 스스로 체념했던 나를 지금의 나는 가만히 바라본다. 퇴색되어버린 거울을 보듯이 애잔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영원히 지속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내 세계가 무너지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자유해진다. 나를 지탱하던 세계는 두 개의 기둥을 갖고 있었는데 애저녁에 하나의 기둥은 부서졌고 하나만이 남아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스트레스 역치를 넘어서고 드디어 그 기둥이 부서져버렸다. 이제야 보인다. 두 개의 기둥이 부서지고 내가 지금껏 믿어왔던 세상이 깡그리 부서져버리고 난 뒤에야,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당신을 떠나보내고 6개월이 지나서야 나는 자유롭다. 자유로워서 이제야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 무엇도 나를 막아 설 수 없어서, 어차피 지금부터의 생은 보너스처럼 "덤"처럼 내게 주어진 거니까, 아무런 압박 없이 하고픈 대로 생긴 대로 살 수 있다. 무너져버린 세상에서, 그 잔해를 딛고 이제야 완벽이라는 성에 억눌려 신음했던 나에게 악수를 건넨다. 지금 당장 안아주지 않아도 좋다. 끝없이 화해를 청해보겠다. 어느 날 어느 때 빛이 환히 드는 테라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더없이 해맑아지겠지. 지금의 나는 그 순간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열두살 때부터 무기력했고, 열여덟엔 우울증이 폭발해서 이따금 자살 충동에 시달렸으며, 스물셋에는 기이할 만큼 살이 빠질 정도로 365일 내내 가위에 시달렸고, 스물 일곱에는 조증 삽화를 겪었고, 스물 여덟에는 공항증세를 겪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서른 하나, 이제야 "덤"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조금은 해맑게 살아간다. 이전의 내가 전생처럼 느껴질 만큼... 이제 와서야 나는 "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죽을 타이밍을 놓쳐버려서, 나는 "덤"이라는 인생을 살아간다. 공부를 포기한 자리에서, 살려고 미친 듯이 썼던 소설마저 내팽개치고 생활인으로써 7년간 직장생활을 했으니 이제 다시 작가 지망생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는 "나이브"한 지망생이 아니라, 직장인 상태로 글을 쓸 것이고 결국엔 "데뷔"할 것이다. 허니 별로 재미 없을지도 모를 이 에세이는 죽을 타이밍을 놓친 작가 지망생의 "작가 데뷔 도전기"다.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1년 이내 소설가 데뷔, 2-3년 이내 OTT 플랫폼을 통하여 작가 데뷔한다. 나는 한다면 하고 말거든- 두고보자. 그 도전기를 브런치에 매일매일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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