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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Jul 20. 2022

혈중 알콜 농도 0.01%,  술 부족사태!

인간은 엉망진창이야, 술만이 마음을 위로하지.

그렇다, 오늘 나는 폭주했다. 발바닥에 난 사마귀 2개를 뺀 대가로,
그 사마귀가 너무도 깊어 살 차오르는 데 오래 걸리는 탓에
1달 가까이 술을 제대로 먹질 못해서다.


 

아, 물론... 완전 금주는 아니다. 술 없이 어떻게 인생사 똑바로 살아가나. 하루쯤은 뇌의 절반즈음 알코올에 절여놓고, 이 밤의 끝을 잡고 마셔줘야 사는 법이지. 바야흐로 달다구리는 순간을 잊게 하고, 술이야 말로 유일하게 마음을 달래는 '안식처'인 셈이다. 고로 나는 현재 술 안 마시고 만취 상태다. 너무 술을 마시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알코올 양산 중이라고 해두자.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처음부터 내가 이정도의 술 예찬론자는 아니었다. 7년 간의 사회생활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 (난동)


1. 카톡 혹은 메신저 혹은 메일로 내용을 보냈다 → 안 읽고 딴소리

2. 열심히 설명해줬다→ 못 알아듣고 알아 듣는 '척' → 나중에 딴소리

3. 일을 의뢰할 때 기본정보를 전혀 주지 않고 냅다까라 던진다 → 한땀한땀 모아다가 다시 물어봐야 한다 → 나중에 딴소리

4. 목적어, 서술어가 부족하다 → 스무고개를 해야만 한다 →  다 말해주고 오케이했는데 또 딴소리


딴소리하면 죽여버린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는데도 별 수 없어 그들을 대할 땐 이성을 잠시 포기해야 한다.


나는 말을 꽤 잘하는 편이다. 내가 말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무뇌'는 없다. 붙잡고 이해할 때까지 설명도 해준다. 처음엔 대체 왜 까먹고 왜 안 읽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서 (1) 달려가서 설명 or 전화 (2) 문서화 작업: 메신저 혹은 메일로 내용 정리해서 공유 (3)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 단계를 다 거쳤다가 몸에 탈이 났다. 스트레스를 몸이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말해주면 무엇하나, 정리해서 공유해주면 무엇하나, 친절하게 또 다시 설명하면 무엇하나. 대체 왜 기억을 못하는 건가! 물어보면 내가 다 정리해주니까 또 안 해주면 난리다.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니잖아? 니가 멍청해서 내가 해주기 시작한 거지, 안 그런가.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는 편인데 또 인간애가 투철하고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이라 삭히는 편이라 꽤나 골치 아프다.


정말 '딥빡'하면 내게 꼭 필요한 처방은 1대 1 비율로 만 소맥 한잔을 스트레이트로 원샷에 들이키는 것이다. 아, 1대 1이 아니라더라- 친구 말로는 소주가 6 혹은 7이고 맥주가 3이라는데 아무렴 어떤가. 이 잔을 원샷 하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 화병이 좀 있는 편이라 가슴팍이 콱 막히고, 열 받으면 두통이 와서 머릿골이 울리는데 술을 딱- 때려주면 어쩜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고로, 인간은 엉망진창이다. 세상은 멍청이들 투성이고, 예전에 나는 무뇌가 80퍼센트라 생각했는데 90퍼센트 이상이며 그들은 실제로 자기가 똑똑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똑똑하지 않은 이유를 대라면 정말 많다. 일을 할 때 우선순위를 체킹하고 목적성과 파급효과, 실무의 과정 및 예산을 체크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할 능력치가 안 된다면 겸허한 겸손의 자세라도 취해야 하는데 아니, 갑질 혹은 을질을 해대는 것이다.


어쩌면 일을 그딴 식으로 넘기지- 처음에 일을 어떻게 배운 거야! 분노했지만 겪어보다 보니까 대체로 그렇게 머리 하나쯤 빼놓고 살아간다. 허니, 이따금 말이 통하고 일을 할 줄 아는 두뇌를 가진 이를 만나면 반갑고 서글프다. 서로는 동족을 기깔나게 알아보고 짠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협업할 때는 세상 이렇게 회사 일이 아름다웠던가... 미소 지을 수밖에 없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등을 토닥토닥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일을 못하는 자들은 대체로 인간에 대한 배려도 없어서 최선을 다해 해준 것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못 알아보고 더 한 것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오로지 일을 제대로 쳐본 적 있는 이들만이 얼마나 공수가 많이 드는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아보고 이해하며 윗선에 어필도 잘하는 편이니 일 못하는 자들에게 '인정', '어필', '동료의식'을 바라면 안 되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일평생 그것을 하지 못하며, YES 맨으로 살아간다.


협업의식이 없으며 "그냥 하면 되지" 마인드로 일은 다 받는데 종국엔 스스로 하지 못하여 옆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만, 자기들은 "일잘러"라는 착각 속에 평생 살아간다. 지금껏 마주한 대다수의 그러한 유형들은 자기 객관화가 이뤄지지 않는 편이라 내 잘못은 적고 남 잘못은 크며 뭐든 남탓이다. 하기야 남 탓만 하고 내 탓은 없으니 성장할래야 성장할 수 없겠지, 당연하다.


문제는 직장, 즉 회사라는 공간에 그러한 자들이 수두룩 빽빽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그렇잖아- 예민하고 민감한 이들이 더 배려심이 높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듯 일도 마찬가지다. 자기객관화가 되며 부끄러움을 잘 느끼고 일을 잘 되게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프로젝트에 매진하는 동안 스트레스는 쌓이고, 일이 되게 하고자 개소리 하는 윗사람 혹은 클라이언트와 맞서 싸운다.


그동안 그들은 YES! 외치며 윗사람 혹은 클라이언트에 좋은 이미지를 만든다. 물론, 일은 예민하고 일을 잘되게 하고픈 실무자들이 쳐내다가 아파서 나가 떨어진다. 대체로 그들은 병증에 시달리며, 커리어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워한다. 일을 잘하면서 동시에 커리어도 잘 이룩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며 나는 그들을 '용자' 혹은 'CEO감'이라고 명명하겠다.


나는 한 회사를 2년까지 다닌 일이 극히 드물었는데 꼭 몸이 탈나서 앓다가 그만뒀다. 자랑이라기에 그렇지만, (아니다 사실 자랑이다) 인정 받는 편이었고, 이직까지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소개로 옮기는 경우도 많았고, 다만 몸이 채 회복되기 전에 옮길 때도 있었다. 나는 "모른 척 하지 못하고", "일을 되게 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 탓에 몸을 갈아서 일을 했고, 안 될 일을 쓰레기통에서 건져서 원 궤도로 올려 놓고 아파서 나가 떨어졌는데... 내가 나간 뒤에 그 부서 자체가 폭파된 경우도 있었다.


이젠 그렇게까지 온 힘을 다해 전력질주 하지 않으려 부단히 마음수양한다. 최근에 이렇게까지 '딥빡' 한 적 거의 없었는데 실로 오랜만이다. 이게, 다- 술 때문이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너무 낮아서다. 바보들이 낭자한 바다에서 떠도는 외딴 섬의 입장으로 포류하는 와중에 알코올에라도 가끔 취해줘야, 이따금은 이 밤의 끝을 고이 접어 나빌레라! 하고 미치게 마셔줘야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데 지금 나는 자가증식되는 알코올을 느끼고 있다.


취해야 취할 수 있는, 마음의 안정. 취하질 못해서 취한 척이라도 해본다. 근래 나는 전에 없이 평온한 편인데 모든 기대감을 내려놓아서이고 같은 말을 10번까지도 할 수 있다. 10번만에 알아 듣기라도 하면 오! 통제라, 너 이 친구 뇌가 있긴 했구나? 하고 진심을 다해 박수쳐줄 수 있다. 많이 내려놨고 지금도 내려놓고 있는데 이따금 빡친다는 것은 내가 아직 '성자'의 경지엔 이르지 못했단 의미겠지. 잘됐다, 난 성자가 될 마음 따위 없고 사실 나는 성격이 지랄 맞다.


타고 나길 지랄인 성격으로 아름답게 살아가기 세상은 어지럽다. 허니 술을 마셔 비틀거리는 걸음, 걸음으로라도 걸어야하겠지. 빌어먹을 사마귀가 가라앉길 바라 마지 않는다. 글라스 가득 소주를 따르고 맥주를 살짝 얹어 8대 2 정도의 비율로 원샷 때리고 안주를 하나 집어 먹었을 때, 혀에 알코올의 감촉이 남아 있는데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msg의 맛! 밤은 길고, 주위는 왁자하고, 몽롱하게 내려 앉는 조명 밑에서 원샷, 투샷, 쓰리샷을 들이키다 보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아진다.


붉어진 볼을 하고서 술잔을 연신 기울여대는 것이다. 그게 삶이지, 그게 사랑이지. 세상은, 인간은 위로가 되질 못해도 술을 못하는 낮엔 달다구리한 초코 우유로 순간을 잊고 이따금의 밤엔 술 한 잔에 마음을 씻어낸다. 누군가가 술 권하는 사회라고 했던가- 그는 그야 말로 진리의 음유 시인이다. 세상이 달라질 리 없으니 나는 취하련다. 근래 나는 마음이 인자하여 예전 같으면 불 같이 화낼 일도 웃어넘긴다. 웃으며 해학적으로 욕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너 정말 각설이 같구나, 죽지도 않고 똑같은 몰골로 돌아오는 꼴을 보아하니- 뭐 그렇게. 쌍욕을 하면 너무 젠틀하지 않잖아. 돌려서 날카롭게 벼린 날로 찍어 버려도 멍청이들은 알아채질 못하고, 나는 웃으며 술잔에 알코올에 너라는 자들을 웃어넘긴다. 어차피 내가 무얼 배려하는지, 무얼 해줬는지, 얼마나 공을 들여서했는지 일평생 가야 알아먹지 못할 텐데 이 글도 못 알아 먹겠지. 바로 너야, 네 자신을 알았으면 좋겠어. 널 한 번 돌아볼래? 혹시 알아, 술 한잔에 그날 하루만은 잔을 맞부딪혀 줄지도. 아, 아니다. 그냥 니 잔은 알아서 채워 마시도록 해. 웃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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