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윰 Jul 26. 2023

숨쉬는 게 짜증나는 날엔 글이라도 써야 숨구멍이 트여

너무 갑갑하고 숨 막히는 기분으로 퇴근까지는 버텨냈고 PT수업일이라 수업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돈을 냈으니까, 당일 취소는 안 되니까 이 마음 상태로든 어떻게든 운동은 할 거고, 내일 역시 출근을 해서 해야 할 일은 할 거다. 살아 있기 때문에 별 수 없이 져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아무 것도 하기 싫어도, 숨조차 쉬기 싫어도 인생이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스물 셋, 졸업 반이던 시절에 나는 엄청나게 울었다. 내가 살아야만 한다는 걸 알아서, 내가 스스로 죽을 수 없단 걸 깨달아서. 그로부터 2년뒤쯤, 방송국에서 갈리다가 방송 개편 등의 이유로 백수가 되었을 때, 앞길이 막막하던 날에, 스물여섯에 별 하나가 죽었다.


나는 그 소식에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 방에 틀어박혀서 일주일간 화장실 갈 때 빼고는 거의 누워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남긴 노래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팬이어서가 아니었다. 호감을 갖고 보던 가수였으나 내겐 여러 연예인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저 그런 빛나던 사람도 죽는데, 살아 있는 내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저 사람도 가는데 어째서 너는 살아서 산소를 마시며 이 땅에 발 붙이고 있는 거냐는 말을 되풀이 했던 거 같다. 우습게도 그냥 요절하고 싶지는 않아서... 최연소 등단이 됐든 뭐라도 하고 스물여덟 전에 죽고 싶었는데 그때 난 직감했다. 아,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이 짧은 시간 내에 빛나는 건 어려운데 심지어 죽지도 못하며 스스로 죽지도 못해서 지질하게 명을 이어가겠구나, 하고. 그때 일주일 넘게 누워서 나는 그 별을 애도했다기보다 죽지 못하는 나 자신을 애도했다. 겁이 많아서였고, 결단력이 부족해서였다.


그러던 내가 어떻게 몸을 일으켰냐고? 단순한 이유였다. 방구석 귀신으로 살아서 밥을 축낼 순 없었다. 죽지도 못할 거면 신세는 져서는 안 되는 거였다. 적어도 내 생활비, 식비는 내 돈으로 벌어야 맞는 문제였다. 상담센터나 의사를 찾아보려고도 했으나 곧 포기했다. 돈이 많이 들었다. 먹고 살고 싶지 않은 인생을 어떻게든 민폐끼치지 않고 살려면 생활비도 벌어야 하는데 멘탈 관리하는 데까지 돈이 든다고? 게다가 맞는 상담사를 단번에 찾을 수 없는 문제기 때문에 돈과 시간을 쓰면서까지 헤매야 했다. 홀로 떠나간 그 별이 남긴 유서 내용 중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상담사든 의사든 그저 들어주는 사람일 뿐이다. 결국 뭐든 내가 해야 한다.


살아가는 걸 버티는 것만 해도 힘든데 밥 벌어먹고 살기 위해 돈 벌어야 하는 것도 빡치는데 그 돈을 써서 멘탈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또 노력이란 걸 해야 한다고? 인생이란 게 너무 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근데 나는 살아있기 때문에, 죽을 수는 또 없어서(쓰다보니 또 열받네, 누구는 그냥 살아 있는 게 날 때부터 좋다던데 나는 그게 싫어서 너무 많음 에너지가 든다 단지 하루하루 사는 것만으로... 이러니 내가 스스로와 화해가 안 되겠지만) 광고대행사에 취직했고 몇 차례 이직을 거치며 나름의 성과를 냈다.


미치게 일했고 급속도로 성장해서 큰 프로젝트를 도맡았다. 입사 3개월 만에 팀장급이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그것도 잘 성사해냈으니까. 사람들은 나한테 승진이나 무언가 욕심이 많다, 일에 미쳤다, 일을 좋아하냐 헸지만 아니었다. 나 스스로 살아 있어야 할, 존재가치를 증명할 게 그 일을 미치게 하는 거밖에 없어서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때 사람이 180도 바뀐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스위치가 켜지는 것처럼 그 순간에만 나는 살아 있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만큼 일하다가 아파서 퇴사하고 딱 이틀 쉬고 신규 프로젝트를 프리랜서로 받은 것도 그때문이다.


날 돌아본다는 것, 나의 근원으로 들어가본단 건 곧 “너 왜 아직 살아 있어?”라는 질문과 마주한다는 뜻이어서다. 그 결과 나는 작년까지 회사 일, 외주 일에 뼈를 갈아가며 일해서 이력서를 채웠다. 혼자 다 한 게 맞냐, 말이 되는 스케줄이냔 말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졌느냐고? 네버다. 회사 일이나 외주 일은 뼈를 갈아 하는 게 마이너스다. 잘해봤자 회사 덕이며, 그저 일하는 기분만 내는 사람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며 실속 없이 갈린다는 뜻이다. 단 한번도 쉬웠던 적이 없는 내 일상의 현 주소가 대충 살아오면서 남탓이나 해대던 자들의 아래에 있을 뿐이라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현재를 위해 고작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서 살아왔다는 걸 알면서도 일상을 버텨내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참.


작년에는 무언가 달라질 거란 희망이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달라질 거라는 기대를 품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솔직히 나도 안다. 지금 이 버티기 위해서 쓰고 있는 막대한 에너지를 내 글이 되었건, 돈을 벌기 위해 미친 듯이 스스로를 굴리는 데 썼으면 지금 내가 적어도 돈 때문에 빡쳐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허나... 역시 나는 안다. 그 알게 모르게, 무의식 적으로 쓰고 있믄 에너지, 내가 어째서 이십대에 죽지를 못하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느냐 하는 분노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을 내게서 덜어내려면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줘야 한다.


천재가 아니며, 선두도 아니고, 입지적인 업적도 못 세웠고, 체력과 멘탈이 모두 약해서 이 모양 이 꼴로 지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나약해빠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심지어 그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토닥토닥 위로해줘야 하고 사랑까지 해주어야 한다는 게 내게 얼마나 힘든 건지, 진짜 너무 힘들다.


인정한다, 나는 나에게 엄청나게 큰 분노를 느낀다.

고작 이따위로 살아 남았다고? 고작 이따위로 이 지경에 머무르기 위해서 숨을 쉬고 있다고? 어려서부터 살아 있는 나를 버티기 위해서 벅찰 정도의 목표를 던져주고 그걸 해냈을 때만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느꼈다.


해내지 못하는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쓸모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그렇게 쓸모 없는 상태로 좀비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 와중에도 뭐라도 해보겠다며 아둥바둥하는 나를, 오늘처럼 숨조차 쉬기 힘든 날에 뭐라도 써내야만 이 하루 이 순간 이 매분매초를 견딜 수 있는 나를, 공부 스트레스가 폭발해서 난독에 시달리면서부터 1등을 내려놓고 글쓰기에 매달렸던 18살 때와 너무도 같아서 짜증이 나는 나를 내가 용서해야 하는 건가.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에 나는 몹시 분노한다. 인정하지 못하면, 이해해주지 못하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면 내가 살아있음과 돈을 벌어야 하는 것에 쓰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생산적인 쪽으로 돌리지 못한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남들 뒤치닥거리나 하면서, 미래도 없이, 희망도 없이, 더 나아지긴 커녕 떨어질 구멍만 보면서 산소를 낭비해야 한다. 물러설 구멍이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단지 버티는 것만으로는 이따위로밖에 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오늘의 내게 이다지도 화가 나는 거니까.


살아 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평범 수준이 되기 위해,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의 양도 엄청나다. 대충 사는 게 납득되지 않아서, 이왕 죽지 못할 거면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해야하는 게 아니냐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가 저릿할 수준이다. 그래, 인정하자. 나는 내게 단 한번도 제대로 따듯한 위로의 말을 건넨 적에 없다. 상처를 쉽게 받고 민감하며 예민하나 사소하게 즐겁고 사소하게 불행해지는 나를,그 모든 감정이 드러나지 않게끔 무수한 가면을 쓰고 갈무리하며 폭발의 순간마저 이성적으로 갈무리하는 나를 몹시도 마뜩찮아 했다.  


어쩌면 사랑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근데 잠깐 따듯하고 말 거면 언제나 차갑고 냉혹한 얼음장 같은 세상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실은 모르겠다. 참고 버티기만 해서는 능사가 아니다. 채찍질을 해서 될 거였으면 열여덟에 한번, 스물여섯에 한번, 스물여덟에 한번, 스물아홉에 한번, 서른 하나에 한번, 서른 둘에 또 한번.. 이렇게 주기적으로 폭발하지도 않는다.


나는 분에 차서 울다가 숨이 넘어가 과호흡증에 시달릴 때도 응급차 부를 값이 아까워서 겨우겨우 옷을 갈아 입고 꾸역꾸역 걸어서 집에서 15분 남짓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간 적 있고, 과로로 네번 정도 원인불명으로 한쪽 귀가 안 들려서 퇴사 할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됐으면서 이틀 만에 일을 또 받아서 새벽까지 일해야만 하는 구렁텅이로 다시 들어갔다. 하루는 지하철을 탈 수가 없을 만큼 패닉에 빠진 채로 공황증세를 겪고 울면서 한시간쯤 거리를 배회하다 겨우 집으로 갔으면서 다음 날엔 또 돈 벌어야 하기 때문에 출근했다.


책임감과 오기로 점철된 인생, 노력과 성실이란 단어는 토나올 만큼 지긋지긋하다. 계단을 오른다던가 스텝 바이 스텝? 너무 싫다. 공부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심지어 글을 쓸 때도 나는 밑바닥에서 미치게 해서 상위권을 찍었다. 넌 절대 그 학교에 못 갈 거란 말을 듣고 6개월 간 빡세게 해서 바로 그 학교 문창과에 수석 입학했다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그 시간 동안에 나는 글에 대한 흥미, 쾌락을 대다수 잃었고 내가 진짜 쓰고 싶은 유형의 글을 찾는 데 4년이 걸렸으며 밥벌이 하느라 8년을 보낸 탓에 지금도 작가 데뷔하지 못했다.


이런 실속 없는 단거리 경주는 그만 해야지... 이를 악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천천히 즐기면서 나를 그 일에 내맡겨야만 글이란 게 된다는 걸 이제 안다. 글로 한 가락 하는 사람들은 다 그 이야길 하니까... 살아야 해서, 암것도 없는 내가 입학장이라도 따야 살 수 있는 거 같아서 유일한 숨구멍이었던 글마저 단거리 달리기의 소잿거리로 써버리고 글로 밥 벌어 먹으며 지금까지 살아가는 나는 참...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온갖 휘몰아치는 분노를 지면에 털어놓고, 글 쓰면서 울다 보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다.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숨이라도 쓰고 싶어서 글을 썼던 열여덟에 그대로 묶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은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는 열둘이다. 어릴 적의 기억은 거의 없지만 그냥 그 순간 인생이란 게 쇠창살에 갇힌 감옥같단 생각을 해서 인 거 같다. 그 순간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한 걸 기억하고 있어서다.


용서든 화해든 사랑이든 당장은 어렵다. 다만 오늘 글 쓰다 보니 그거 하나는 할 수 있겠다. 인정... 그래 너, 고생했다. 그다지 영위하기 싫은 하루하루를 버텨내느라, 살아 있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남보다 미치게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시간들을 버텨내느라... 멘탈이 약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살아온 시간들을 돌이켜 보니 어떤 순간에도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느라 고생했다. 고생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할 때마다 <자 이제 쉴 시간 없어, 갈 길이 멀어>라며 채찍을 휘두르기 바빴지만 오늘만은 이렇게 하고 싶다. 운동 하고 집에 가면 노래 틀어놓고 쉬자... 써야 하는 글 말고 쓰고 싶은 글을 생각해보자, 고.

작가의 이전글 스터디에 1천만원 쓰고 얻어낸 유혹하는 살롱의 특징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