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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저씨 Oct 12. 2023

엄마와 칠순 여행

40대 아들도 밖에 내놓으면 불안하다

어머니(이 뒤로는 엄마라 칭하겠다)가 칠순을 맞이하여 우리 가족 4명이 전부 모였다. 엄마가 계신 고향에 모였고 다음날 전주 한옥마을에 갔다. 한옥마을은 몇 번 갔지만, 가족과 함께 간 건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모이는 가족모임에 설레는 기분으로 한옥마을에 갔고, 그곳에서 가족들과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우리 가족이 모두 모인 건 막내 동생이 결혼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함께였지만, 그때는 서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기보다, 서로를 위로하고 부축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거라 그걸 제외하고 가족이 모인건 14년 만이었다. 


원래 계획은 한옥마을에 가서 한복으로 갈아입고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하지만 한복을 입으러 간 곳에서 엄마의 눈은 다른 곳에 머물렀다. 바로 옛날 교복. 엄마는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싶다 하셨고, 우린 한복이 아니라 옛날 교복을 입고 한옥마을을 돌아다녔다. 엄마와 함께 생전 처음으로 4컷 사진도 찍고 캐리커처 도 해봤다.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고 항상 자기 아이의 엄마로 살아야 했던 막내도 이때만큼은 우리 앞에서 어리광을 피우면서 함께 추억을 만들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문득 드는 생각......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에 함께 많은 추억을 남겨야겠다는 생각...... 


엄마는 24살에 결혼하시고 우리 삼 남매를 키우시면서 그 시절 다른 어르신들처럼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 이제 자식들을 다 키우고, 좀 쉬시나 했더니 남편(나에겐 아버지)이 일찍 하늘로 떠나고 외로운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들의 이혼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으셨고, 둘째의 비혼 선언에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제대로 효도를 해보지 못한 우리에 대해 언제나 걱정하시는 어머니...... 


칠순여행을 함께 떠나면서 우리는 엄마에게 서프라이즈 용돈을 드렸다. 올해 초부터 엄마 몰래 우리 삼 남매가 매달 돈을 모았고, 그렇게 모인 돈을 엄마에게 드렸다. 그런데 용돈을 드리고 난 다음날 엄마는 둘째 동생이 잠깐 자리 비운사이에 내 옆에 조용히 오시더니 10만 원을 주셨다. "동생들 모르게 주는 것이니 어서 받아." 난 잘 알고 있었다. 동생들에게도 나에게 말한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용돈을 주셨을 것임을 말이다. 이미 40대 중반을 넘어서 50대를 바라보는 아들이지만, 엄마는 이런 아들에게도 용돈을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추스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1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용돈을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난 그 10만 원을 은행에 입금하지도 쓰지도 못했다. 그저 그 돈을 고이 접어서 내 지갑 한편에 넣어뒀다. 도저히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짧은 칠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나에게 한 말에 그만 (내면적으로) 무너져 버렸다. "차 조심하고, 집에 도착하면 연락혀라. 알겠지?" 엄마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어 버릴 것 같아서, 앞만 보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 가족이 내 가족이어서 고맙고,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행운아다.


엄마 칠순 여행 기념으로...(작가 GRIDA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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