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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저씨 Aug 03. 2024

[Day 54] 곰씨의 관찰일기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 가까운 우리의 관계

아침부터 폭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머리를 깎고, 호미화방에 가서 캘리용 펜촉 C-1을 2개 구매했다. 그러고 나서 미술 수업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술 선생님에게 카톡이 왔다. “오늘 아버님 생신이라 수업을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수업 취소여서, 시간이 붕 떴지만 곧바로 망원에 있는 카페 콤마로 발길을 옮겼다. 어제 캘리 수업을 이미 받아서, 오늘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쓰게 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카페에 왔다. 밖이 너무 더워서 땀을 비 오듯 흘리다가 들어간 카페는 진짜 천국 그 자체였다. 그렇게 시원한 카페에 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구매하고, 자리에 앉아서 책 한 권을 완독 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독자분들이 궁금해하셨을지 모르지만) 내 연애세포 심폐소생기를 적어보려 한다.


독자님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가끔씩 내 글에서 언급되던 친구 A가 있다. 내가 평소 믿고 따르는 멘토형의 소개로 만나서,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 가끔씩 만나서 수다를 떠는 친구다. 현황을 말하자면, 지금도 그 친구와 잘 만나고 있다. 친구  A가 개인 사업을 하느라 시간이 자주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화로 연락을 하면서 서로 안부를 물어보며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 물론 친구 A와의 관계에 변화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이 정도까지 만났는데, 여전히 데면데면한 사이라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사귄다라고 규정하기엔 애매한 "사랑보다 멀지만, 우정보다는 가까운" 관계로 지내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이혼한 전력이 있고 친구 A가 미혼인 걸 생각하면, 당연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미혼은 그 친구는 이혼전력이 있는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고, 나는 이혼한 전력 때문에 얻게 된 PTSD에 연애시장에서 결격사유가 되는 조건을 추가로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쉽게 더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조금 더 정확히는 아직까지는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이 꺼려지는 게 더 큰 이유이긴 하다.


40 이후 중년의 연애는 10대나 20대의 열정적이고 풋풋한 연애나 30대의 전략적이지만 열정적인 연애와는 다른 것 같다. 40대의 연애는 여유롭고 아쉬울 게 없지만 나의 외로움을 충족하기 위한 여유로운 연예인 것 같다. 상대에 대한 구속이나 집착을 하지 않으며, 개인의 삶을 열정적으로 이어가면서, 남는 시간에 친구처럼 편하게 만나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그런 느낌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른 것처럼 내가 여기서 말하는 연애의 형태가 모든 중년의 연애를 대표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40대에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적어지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잘 알게 되는 성숙한 만남을 갖게 되는 게 40대의 연애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물론 친구 A와는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저 친구로서 만나는 것 이상인 것은 사실이다. 이건 친구 A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서로에게 관심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선이 있어서 그 선을 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만남이 바로 우리의 관계인 것이다. 물론 나도 이런 관계가 나쁘진 않다. 오히려 바라는 바였다. 나의 일상을 충실하게 보내면서, 동시에 다른 이와 추억을 켜켜이 쌓아가는 인연…… 난 그 인연이 참 복이라고 생각된다. 전 처와는 경험해 보지 못한 관계였다. 아니 전처뿐만이 아니라 내가 주로 만났던 이성과 여자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만남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친구 A와의 관계가 소중하면서 조심스럽다. 조급하지 않게 욕심내지 않고, 조심히 이 관계가 주는 만족감과 행복감을 누리려고 한다.


사랑보다 멀지만 우정보다 가까운 관계. 20대에는 이 관계가 저주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40대의 나에겐 축복이 되는 관계인 것 같다.



나저씨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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